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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February, 2024

Wind Blowing East part 6

 <동쪽으로 부는 바람 (6)> 1948년 4월19일 한국서울 "총통 각하! 다시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소?" 나는 90도 폴더 인사를 하는 손기정, 남승룡을 웃으며 맞이했다. 과거에 들이 나를 만난 것을 기억하는 김구가 이들을 데려은 것이었다. "해방된 대한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총통 각하와 만나다니....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점은 양반이 벌써부터 그런 소리를 해서야 되나. 아무튼, 반갑소. 올림픽 때 만나고 12년 만이군. 시간 참 빠르지 않소?" 베를린 올림픽 방문 당시에는 돌과 만났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비밀이었기에 따로 기념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손기정과 남승룡도 이것울 무척 아쉬워했고 그 대신에 나는 들에게 내 사진을 가져와 사인해서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의 눈치도 몰 필요가 없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처음엔 세 명이 한데 모여 찍었고 그다음엔 한 명씩 따로, 마지막엔 선수들 가족들과도 한데 모여 찍어줬다. "부대 차컷!" 이송만은 여전히 내가 영 신경이 쓰이는 듯 경계 섞인 시선을 보냈지만 그래도 내가 독일 총통의 신분임을 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따라은 총통 관저 식구틀과 함께 신생 한국 군대의 사열을 받았다. 명색이 특일 총통 앞에서 하는 사열식이니 다틀 침이 바짝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저 완벽한 오와 열을 보라. 비록 국방군의 제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독립한 지 4년밖에 안 된 신생 국가의 군대가 이 정도 수준이면 규율이 잘 잡혀 있는 거라고 봐도 좋으리다. 그런데.... 넘치는 기합과 별개로 장비는 그리 좋지 못했다. 기갑, 공군이 하나도 없고 생 보병들만 있는 티베트군보다야 났지만. 한국군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일본 패망 후, 미국은 한국을 3년 동안 신탁통치하다가 작년인 1947년에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게 별로 없는지 사열식에 ...

Wind Blowing East part 5

 <동쪽으로 부는 바람 (5) > 이승만 외에도 히틀러의 방문을 탐탁지 않은 이는 여럿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내무부 장관인 신성모. 이승만의 최측근이자 이승만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던 신성모는 상선사관의 신분으로 영국 해군에서 복무한 전적이 있었다. 자연히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히틀러의 독일은 대한과 결코 가까워질 수도 없고, 가까워져서도 안 되는 국가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방한을 꺼리는 이들보다 반기는 이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이범석과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이었다. 독일에서 유학한 경험 덕에 나치와 히틀러에 우호적인 안호상은 말할 것도 없고, 히틀러 치하 독일을 방문해 깊은 인상을 받은 적 있는 이범석도 히틀러의 방한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전에 히틀러는 손기정과 남승룡을 만나 친히 격려하고, 수재로 고통받는 조선 민중을 위해 금일봉을 하사한 적이 있다. 조선과 그 어떤 인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슨 이유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한국에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이 먼 땅을 방문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히틀러의 군국주의적 정책과는 거리를 두던 김구 또한 히틀러의 방한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한국에 방문한 것일지라도 한국에 좋은 일이면 좋은 일이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좋게 좋게 생각합시다. 우남이 형. 이번 일로 말미암아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다면 분명 좋은 일이 아니겠소? “맞습니다. 각하! 히틀러 총통의 방문은 세계에 대한의 이름과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구의 말에 이범석이 강력한 지지를 표하자, 이승만은 내심 못마땅한 듯 툴툴거리면서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히틀러의 방한 날짜가 되었다. “세상에, 저것 좀 보소.” “뭔 배가 저리 크냐?” “배가 아니라 궁궐을 보는 것 같네.” “저 큰 배에 히틀러가 타고 있다고?” 인천...

Wind Blowing East part 4

 < 동쪽으로 부는 바람 (4) >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장제스와는 3번 정도 더 만났다. 지나가는 말로 장제스에게 몽골 침공에 대해 떠봤더니 장제스는 확고한 목소리로 몽골은 중국의 영토라 소련에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니 확실해졌다. 장제스는 정말로 몽골을 침공할 생각이다. 워낙 의지가 확고하니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뭐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중국 일은 중국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원수의 생각은 어떻소이까?” 그래도 내심 불안한 느낌이 들어 팔켄하우젠과 단둘이 있을 때 그에게 장제스의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팔켄하우젠도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안경을 고쳐 쓰며 나지막한 한숨을 토했다. “솔직히… 장제스 총통이 다소 성급한 판단을 하고 있지 않나 우려됩니다.” “역시 그렇군․ 설득은 시도해보셨소?” “저 역시 당장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만류했습니다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대업을 이루겠느냐고 말하더군요.” 팔켄하우젠도 알고 있다. 소련군이 결코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과 국민혁명군이 소련군에 대적할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장제스 총통이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원수 말은 듣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할 정도면 묻지 않아도 뻔하겠군.” "중국이 몽골을 공격한다면 총통께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가만히 있어야 하지 않겠소. 독일에 더 이상의 전쟁은 필요 없으니.” 장제스는 우리가 자기네를 지원해주거나 우랄산맥 일대에서 분쟁을 일으켜 소련의 시선을 붙잡아두길 원할지 몰라도 나는 무조건 중립을 지킬 생각이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다. 중국이 몽골 먹는 것과 우리가 뭔 상관이라고. 만약 우리가 움직였다간 바로 미국이 움직일 거다. 이미 워싱턴에서 서로 남의 구역 넘보지 말자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걸 독일이 먼저 어긴다? 앞으로 독일이 하는 말을 미국이 귀담아듣기나 할까? 장제스가 몽골 침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

Wind Blowing East part 3

 <동쪽으로 부는 바람 (3) > 1948년 3월 1일 중국 난징 카자흐, 인도, 티베트에서도 나는 나의 방문을 환영하는 인파와 마주쳐왔다. 하지만 이곳, 난징에 들어서자, 이제까지의 환영 인파는 초등학교 운동회 인파로 여겨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독일 총통을 보기 위해서.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베를린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나를 보기 위해 몰려든 베를린 시민들의 인파를 본 적이 있다. 거리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고, 저러다 압사 사고라도 일어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은 인파가 총통관저로 몰려들어 경찰과 SS가 진땀을 뺐지. 그런데 난징에서는, 베를린에서 마주쳤던 시민들의 환영 인파의 몇 배나 됨직한 사람들이 있었다. 거리는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빼곡했고, 심지어 가로수와 전봇대에도 사람들이 올라가 있었다. 건물 옥상과 창문마다 사람들로 미어터졌고, 차가 지나갈 도로에는 난징 시민들이 던진 꽃이 수북하게 싸여 도로가 아니라 꽃밭 위를 지나가는 착각마저 들었다. “히틀러! 히틀러! 히틀러!” “하일 히틀러!!?” “여러분! 히틀러 총통께서 난징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연신 내 이름을 연호하며 목청껏 환호성을 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가 다 얼얼할 지경이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군. 난징 시민 전체가 다 튀어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요.” 입이 떡 벌어지는 인파에 내가 혀를 내두르자 동석한 브라우히치도 공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이게 바로 대륙의 기상이로군요. 허어…………” “이러다 중국도 오스트리아처럼 독일에 합병 요청을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롬멜의 말에 브라우히치와 라이헤나우의 입에서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롬멜 본인은 자기가 한 농담에 자기가 웃긴지 박장대소했고, 차에 중국인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어휴, 진짜. “어떻소이까, 선생? 다시 난징에 돌아온 기분이?” “예………… 아주 감개무량합니다.” 난징의 부처 욘 라베. 10년 만...

Wind Blowing East part 2

 <동쪽으로 부는 바람 (2) > 영국에서 독일군에게 피를 본 건 지상군만이 아니었다. “저 새끼 뭐야! 뭐가 저렇게 빨라!” “씨발! 뒤, 뒤에 제리다!” “추락한다!!” 영국을 도우러 온 미 육군항공대는 압도적인 성능의 독일기와의 전투에서 크나큰 피해를 보았다. 폭격기는 미제가 독일제보다 우수했지만, 전투기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독일 전투기들은 전반적으로 미국에서 제작된 전투기들을 상회하는 성능을 가졌고, 이는 곧 실전에서 무수히 많은 조종사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프롭기인 Ta152, Do335도 머스탱, 라이트닝 입장에선 버거운 상대인데 제트기인 Me262와 Ho229로 넘어오면 그 격차는 더욱 커졌다. 미군 조종사들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수년에 걸친 실전으로 다져진 실력과 우수한 성능의 기체를 모는 독일군 조종사들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제리들이 저토록 뛰어난 전투기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비행기는 분명 우리 미국이 최초로 만들지 않았나? 그런데 어째서 제리들이 우리보다 더 좋은 전투기를 가지고 있는 거지?” “우리 기술자들은 대체 뭘 한 거야?!" “우리도 제트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독일 공군에게 크게 데인 미국은 이를 악물고 신형 전투기 개발에 들어갔다. 최소한 제리들이 가진 전투기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전투기가 필요했다. 그래야 다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일이 없을 테니. 독일보다 늦긴 했지만, 미국 역시 독일처럼 제트기를 연구하고 있었고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쏟아부은 결과 미국은 P-80 슈팅스타를 개발해냈다. 비록 배치가 늦어 실전에서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독일의 제트기와 싸울 수 있는 기체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었다. 허나 아놀드는 여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제리들은 지금도 새 전투기를 만들고 있을 텐데 여기서 만족해서야 되겠어?” 부정맥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은퇴를 권고받았지만, 아놀드는 미합중국이 독일보다 뛰어난 전투기를 만들기 전까...

Wind Blowing East part 1

 < 동쪽으로 부는 바람 (1) > “저는 이게 정말로 필요한 일인가 싶습니다.” “이번에는 또 뭐 때문에 그러나, 리벤트로프?” 이 말만 벌써 몇 번째인지 원. 뒷머리가 땡겨오는 것이 스멀스멀 느껴졌지만 일단 설명이나 듣자 싶어 말해보라고 손짓했다. "중국은 티베트를 자국에 종속시키고자 하는데 우리가 티베트를 독립국으로 인정한다면 중국에서 내심 불쾌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아아, 그 얘기였군. 하기야 리벤트로프 말대로 티베트 지배를 계획 중인 장제스가 독일이 티베트를 정식 국가로 승인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예?"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중국이 독일의 우방이기는 하나, 그 관계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우위에 있네. 우리가 겨우 티베트 문제를 두고 중국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있나?" 내가 아는 21세기라면 정확히 반대가 되었겠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지금은 1945년이고, 땅덩어리는 중국이 더 넓지만, 국력 자체로는 독일이 중국보다 몇 배는 더 크다. 중국이 독일의 눈치를 볼지언정, 독일이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다. 독일이 티베트를 정식 국가로 승인한 게 불만이어도, 뭐 어떻게 할 건데? 중국이 뭐라고 하든 간에 쌩 까버리면 그만인데. 그리고, 장제스에게 생각이 있으면 '겨우' 티베트 때문에 독일에 안 좋은 소리를 할까? 장제스는 중화주의자이긴 하나 티베트 문제로 독일과 척을 질 정도로 멍청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 아쉬운 건 어디까지나 장제스지 내가 아니기 때문에 속으로 불만이 좀 쌓일지라도 겉으론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일본과 전쟁이 끝나고 공산당도 진작에 박멸되었다고 한들 독일과 관계가 틀어져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20년이나 30년이 지나서 중국 시장이 커지면 독일도 중국에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 눈치를 슬슬 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중국이 독일의 눈치를 더 봤으면 더 봤지 이 관계가 뒤집힐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최소...

Legacy of the Empire part 13

 <제국의 유산 (13) > 194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 독일에 부역하는 썩어빠진 정부를 뒤엎고 프랑스인들을 위한 새 정부를 구성하고자 했던 자칭 애국자들의 모임은 이렇다 할 시도조차 해보기도 전에 독일에 의해 분쇄되었다. 쿠데타에 가담한 이들 중 숨이 붙은 자들은 모조리 체포되어 게슈타포와 1:1 면담을 하게 되었고, 숨이 끊어진 자들. 그러니까 자살 혹은 교전 및 도주 과정에서 사살된 이들은 소각로 속에서 불태워져 재가 되었다. 페탱의 얼굴에는 허망함이 가득했다. 쿠데타를 사전에 차단했으니, 최악의 경우는 피했지만 이를 계기로 독일의 간섭이 전보다 더욱 강화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에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블롬베르크는 페탱에게 위대한 총통 각하의 혜안이 없었다면 프랑스는 5년 전처럼 다시 불바다가 될 뻔했다며 열심히 떠벌였지만 노원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몰라서 묻소? 당연히 독일로 데려가서 재판에 넘길 것이오." 블롬베르크가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프랑스인 아니오. 비록 독일의 도움을 받긴 했으나 프랑스 땅에서 벌어진 일이고 범인들도 프랑스인들이니 프랑스에서 재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오만?” 발끈한 페탱이 제 나름의 반론을 펼쳤지만, 블롬베르크는 이러한 반론도 예상했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원수. 쿠데타 세력의 계획 중에는 파리 주둔 독일군에 대한 테러도 있었소. 그리고 쿠데타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우리 군 사상자들도 발생했고, 무엇보다 프랑스 정부보다 독일 정부에서 먼저 쿠데타 계획을 알아차리고 대응했으니 쿠데타 세력에 대한 처벌 역시 독일의 몫이오. 만약 독일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프랑스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었을 거로 생각하시오??? 노골적으로 프랑스를 무시하는 발언에 페탱은 손발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블롬베르크의 말은 사실이었다. 독일이 알려주기 전까지 페탱은 뒤에서 그런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줄 상상도 못 했다. 블롬베르크의...

Legacy of the Empire part 12

 <제국의 유산 (12)> 1945년 10월 29일 특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머저리 같은 놈들. 이놈들은 벌써 자기들이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도 까먹은 모양입니다." 카이텔의 말에 괴링이 얼씨구나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병신 같은 개구리 놈들. 놈들에게 학습능력이 아예 없는 것 같으니, 이참에 우리가 대갈통에 새겨주는 게 어떨겠습니까?" "찬성합니다!" 나 또한 어이가 없었다. 이놈들, 대체 대가리에 워가 든 거지? '쿠데타라니. 허 참. 역사에서도 프량스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머리가 안 틀아가는 작자들이 있을 줄이야. 식민지를 해방해 준 것도 아니고, 단순히 식민지인들을 달래기 위해 유화책을 제시한 것조차 불만이어서 쿠데타를 계획하다니. 이거 순 또라이들 아냐? 물른 쿠데타의 이유가 단순히 이것 때문만이 아닐 터. 분명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테지만 암만 그래도 쿠데타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놈들은 후환이 안 무섭나? 그게 무서웠다면 애당초 이런 일을 꾸미지도 암겠지만. 성공하면 돌라도 실패하면 그대로 인생 종 치는 건데? 성공해도 문제인 게 새 내각, 새 정부를 꾸렸다고 한들 우리가 도좋에 개입해서 옆어버리면 그결로 끝이다. 자기들 딴에는 나름 우리에게 의심 안 받으려고 열심히 사바사바하려던 모양이지만 누굴 바보로 아나 +자기들 딴에는 나름 완벽한 계획이라고 자부했겠지? 나 원. 어떨게 패전하고도 배운 게 없는지 모르겠군.: "사실 그럴 만도 합니다. 겨우 4주 만에 당했으니 월 배우고 그럴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와하하하하!! 카이텔의 능담에 회의 참석자들은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그렇긴 하지. 아무튼. 우리 페탱 원수께선 이 건을 알고 있소? "아직 프랑스 정부는 모르는 것으로 압니다." 카이텔이 말했다. '페령에게 전해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게끔 할까...

Legacy of the Empire part 11

<제국의 유산 (11) > 프랑스 공산당은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위기에 몰려 있었다. 믿었던 소련은 처참하게 망해버렸고 유럽 대륙 전체가 독일에 점령당했다. 소련의 선전을 기대하며, 언젠가 붉은 군대가 베를린을 넘어 파리에까지 밀어닥치리라 믿었던 프랑스 공산당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우랄산맥 너머로 밀려난 소련은 복수는 고사하고 언제 독일이 재침공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바빴다. 소련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프랑스 공산당은 절망했다. 소련 하나만 믿고 무력투쟁을 이어오다가 소련이 완전히 망해버렸으니, 이제 프랑스를 해방하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일부 조직원들은 공산당에서 서서히 발을 빼려고 했다. 하루가 멀다고 연락이 끊긴 동지들이 빠르게 늘었다. 경찰이나 국가헌병대에게 체포된 것인지 더는 가망이 없음을 알고 이제부터라도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인지 당사자들에게서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다. “후우..…..… 빌어먹을." 프랑스 공산당의 이인자 자크 뒤클로는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줄담배를 피웠다. 소련에서 오는 지원은 끊어진 지 오래고, 유럽 대륙은 하켄크로이츠의 물결에 뒤덮였다. 그중에서도 독일과 맞닿아 있는 프랑스는 히틀러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상태. 연락이 두절되는 조직원들은 늘고 있고 남아있는 당원들조차 흔들리는 상황. 2차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공산당 당수 모리스 토레즈는 뒤클로에게 당을 맡기고 자신은 모스크바로 도망쳤다. 2차대전이 발발하고 독일군이 소련 영토로 진군하자 토레즈는 우랄산맥 너머 시베리아로 도망쳤고, 지금도 소련에 있었다. 토레즈는 희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파쇼들에 맞서 투쟁하라고 지시했지만, 저 혼자 안전한 소련에서 머물며 호의호식하는 그의 말에 더 이상 귀 기울이는 당원들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군부 내에 심어둔 첩자로부터 프랑스군 내부의 은밀한 움직임에 대해 알게 되었다. 현 정부의 방침에 불만을 가진...

Legacy of the Empire part 10

 <제국의 유산 (10) > 식민지 욕심으론 영국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프랑스. 그런 프랑스가 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들을 점령하는 것을 포기하고 철수한 것에는 식민지 주둔 영국군의 강한 저항도 컸지만, 자기네 식민지 내부에 불고 있는 독립 열기에 위기를 느낀 게 더 컸다. 이미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잃었다. 그랬기에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의 상실을 메꾸기 위해 아프리카 정복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영국군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잃은 것처럼 영국은 인도를 잃었다. 그랬기에 영국은 아프리카 식민지들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자 했다. 듀이도 애틀리와의 약속대로 영국군에 막대한 지원을 퍼주었고 영국군은 프랑스군을 어렵지 않게 물리쳤다. 독일도 동맹 프랑스에 각종 무기를 팔아줬지만, 미국과 달리 무상은 아니었다. 돈은 확실하게 받아가는 독일에 프랑스는 치를 떨었지만, 제 코가 석 자였으므로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기존에 있던 식민지들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이대로면 안 된다. 기껏 가지고 있는 식민지들까지 모두 잃으면 프랑스는 영원히 이류, 삼류 국가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페탱은 눈물을 머금고 철군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식민지인들을 달래기 위해 급히 당근을 꺼내 들었다. “식민지인들의 독립과 저항 의지를 잠재우려면 그들에게도 프랑스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하네.” 페탱의 ‘폭탄 발언'에 각료들은 화들짝 놀랐다. 미개인 아랍인, 흑인들을 위대한 프랑스인들과 평등하게 대우한다니. 그런 발상은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왜?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나?” “그건 아닙니다만………….” 라발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놀라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가장 확실한 정책이었다. “평등하게 대우한다면, 어디까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프랑스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 이 말이네. 더 이상 출신지, 피부색, 종교 따위로 차별하지 않고 완...

Legacy of the Empire part 9

 <제국의 유산 (9) > 압제자에 맞서 힘을 합쳐 싸웠던 동지들이 압제자가 물러난 후 네 편 내 편으로 나뉘어 집안싸움에 열중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리스,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인도, 핀란드 등등. 어렵사리 압제자들로부터 독립을 허가하겠다는 대답을 얻어낸 간디에겐 축배를 들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독립을 약속받은 그가 다음으로 한 일은 힌두교와 무슬림 간의 대립과 증오를 어떻게든 중재하는 것. “우리는 형제요, 자매이며, 친구이자 이웃입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동고동락해 온 우리들이 우리의 숙원이 이루어지려는 지금에서야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해서야 되겠습니까?” “인도는 하나여야만 합니다. 인도는 곧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여러분. 증오를 내려놓으시고 진실된 마음으로 서로를 쳐다보십시오.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서로 도우며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종교를 떠나 전 인도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간디의 진심 어린 호소는 과연 효과를 보이는 듯 보였다. 그 이면에는 독립만 하지 않으면 자치권이고 뭐고 다 내주겠다는 현실적인 제안이 있었지만. 허나 통일된 인도를 바라는 간디의 호소는 진심이었고, 그는 인도 전역을 순례하며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무슬림들과의 협상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당신들은 언제나 통합을 외치면서 언제나 힌두교 중심의 정책만 내놓았소. 우리 무슬림들이 어떻게 당신들이 하는 말을 믿겠습니까?” 대표적인 분리독립주의자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간디, 네루의 끊임없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힌두교 중심의 인도에서 분리된 무슬림들만의 이슬람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그에게 간디의 말은 허상으로 느껴질 뿐. “분열은 또 다른 비극을 낳을 뿐이며, 같은 인도인들끼리 서로 증오하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영국이 원하던 것이오. 이제까지 ...

Legacy of the Empire part 8

 <제국의 유산 (8) > 밥을 먹을 때가 됐기에 우선 배부터 좀 채우고 그다음 남은 안건에 대해 토의하기로 했다. 어차피 총통관저에서도 온갖 진귀한 요리를 배불리 먹으며 지내던 터라 백악관에서의 만찬이 특별히 와닿지는 않았다. 평소에 자주 먹던 것들이기도 하고. “듣자 하니 총통께선 미국 요리를 특히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거이거, 1급 비밀이었는데 언제 들켰는지 모르겠군요." 엄밀히 말하자면 미국 요리를 특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 미국 요리도 좋아하는 거지만. “하하하. 입맛에 좀 맞으시는지요?" “너무 맞아서 살찔 것 같습니다.” 백악관 요리사들의 음식 만드는 솜씨는 뛰어났다. 총통관저의 요리사들 솜씨와 견줄만한 정도로. 그래도 본고장 요리들이라 독일에서 먹던 것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더 기름지고 덜 맵다고 해야 할까(그런데 이건 내가 맵게 먹어서 그런 것도 있다). 독일에서 먹은 적 없는 요리들도 많았다. 칠면조 구이라던가 클램차우더, 캐비어를 올린 아이스크림 등등. 그런데 이런 것들은 독일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 굳이 흥미가 안 생겨서 안 먹어본 것들이다. 칠면조 구이는 따뜻했지만, 너무 뻑뻑했고, 클램차우더는 무난한 맛이었다. 캐비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리고, 짰다. 왜 아이스크림에 올린 건지 이해가 갔다. 화려하고 기름진 요리들과 더불어 백악관만의 특별한 레시피로 만든 칵테일(이게 진짜인지는 모르겠다)도 제공되었는데 맛은……… 솔직하게 말해서 레모네이드가 훨씬 나았다. 그렇게 괴악한 맛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만찬이 끝나고 잠시 소화를 시키면서 시간을 보낸 뒤 회담이 재개되었다. 우리는 조금 전 회담에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남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듀이의 질문. 알다시피 남미는 미국의 안마당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이미 미국은 1823년에 먼로 독트린을 선언해 남미가 자신들의 나와바리임을 공개적으로 못 박았다. 다만 이 당시 미국은 국력이 삼류 수준에 불과한 ...

Legacy of the Empire part 7

 <제국의 유산 (7) > 1945년 5월 7일 미국 워싱턴 D.C. “내 살다 살다 이런 날이 다 올 줄은 몰랐군.” “총통 각하. 저도 그렇습니다.” 나와 괴링은 워싱턴 거리를 수놓은 셀 수 없이 많은 성조기와 하켄크로이츠 물결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미합중국의 수도에서 하켄크로이츠를 보게 되는 날이 오다니. 미국으로 오는 길에 대서양에서 내가 탑승한 Ju352를 P-51 머스탱 편대가 호위하는 것을 보고 새삼 신기하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했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래서 전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아차차. 조심하자고. 우리야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지만, 미국인들이 듣기엔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으니 말이네.” “하기야 자기들을 놀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거리에는 족히 수십만 명은 됨직한 인파가 우리의 행렬을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구경꾼들 다수는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구경거리를 보러 나온 평범한 시민들이었지만 평범이라는 단어와 조금 거리가 있는 친구들도 꽤 보였다. 저기 저, 돌격대 제복을 흉내 낸 게 분명해 보이는 갈색의 제복을 입고 로마식 경례를 올리는 친구들 말이지. 미국 은색군단 친구들에게 나는 일부러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이들의 입에서 지크 하일과 하일 히틀러가 터져 나왔다. 미국 은색군단은 미국의 대독 선전포고와 함께 해산된 줄 알았는데, 제복을 입고 깃발까지 들고나온 걸 보니 다시 재창단한 모양이다. 아니면 이제껏 조용히 지내다가 오늘만 입고 나온 것이라던가. 저기 보이는 저 깃발은 독일계 미국인 동맹 깃발이고.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오기 전에 걱정을 좀 했거든요.” 우리를 보러 나온 구경꾼들을 곁눈질로 구경하던 괴링이 말했다. 많은 미국인이 독일과 전쟁을 하는 것에 반대했고, 실질적으로 싸운 기간이 몇 개월 되지 않는다곤 하나 아직 그 앙금이 어느 정도 남아있을 터. 그런데 분위기 자체는 생각 외로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