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 Blowing East part 6
<동쪽으로 부는 바람 (6)>
1948년 4월19일
한국서울
"총통 각하! 다시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소?"
나는 90도 폴더 인사를 하는 손기정, 남승룡을 웃으며 맞이했다. 과거에 들이 나를 만난 것을 기억하는 김구가 이들을 데려은 것이었다.
"해방된 대한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총통 각하와 만나다니....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점은 양반이 벌써부터 그런 소리를 해서야 되나. 아무튼, 반갑소. 올림픽 때 만나고 12년 만이군. 시간 참 빠르지 않소?"
베를린 올림픽 방문 당시에는 돌과 만났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비밀이었기에 따로 기념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손기정과 남승룡도 이것울 무척 아쉬워했고 그 대신에 나는 들에게 내 사진을 가져와 사인해서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누구의 눈치도 몰 필요가 없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처음엔 세 명이 한데 모여 찍었고 그다음엔 한 명씩 따로, 마지막엔 선수들 가족들과도 한데 모여 찍어줬다.
"부대 차컷!"
이송만은 여전히 내가 영 신경이 쓰이는 듯 경계 섞인 시선을 보냈지만 그래도 내가 독일 총통의 신분임을 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따라은 총통 관저 식구틀과 함께 신생 한국 군대의 사열을 받았다. 명색이 특일 총통 앞에서 하는 사열식이니 다틀 침이 바짝 들어가 있는 게 보였다.
저 완벽한 오와 열을 보라. 비록 국방군의 제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독립한 지 4년밖에 안 된 신생 국가의 군대가 이 정도 수준이면 규율이 잘 잡혀 있는 거라고 봐도 좋으리다.
그런데.... 넘치는 기합과 별개로 장비는 그리 좋지 못했다. 기갑, 공군이 하나도 없고 생 보병들만 있는 티베트군보다야 났지만. 한국군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일본 패망 후, 미국은 한국을 3년 동안 신탁통치하다가 작년인 1947년에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게 별로 없는지 사열식에 등장한 미제 장비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병사들이 머리에 쓴 철모는 일제 90식 철모와 국민혁명군에게서 지원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슈탈헬름이 섞여 있었고, 총은 99식 소총과 M1 개런드의 혼성에 전차는 89식과 치하였다.
"이건 뭐 거의 민병대나 다름없는 수준이군요."
치하의 포탑 족면에 그려진 태극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롱멜이 굿속말로 소감을 밝쳤다.
"한국군과 비교하면 인도군과 종국군은 정예였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LSSAH나 다스 라이히만으로도 이 나라 군대의 전 병력을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힘러도 작은 목소리로 롱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무장친위대까지 같 것도 없이 국방군 2,3선급 사단만 데려와도 대한민국 육군 전체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었다.
그만큼 1948년의 국군은 상태가 참으로 말이 아니었다.
"독립한 지 4년밖에 안 된 신생 약소국에 월 더 바라겠나. 그래도 규율은 잘 잡힌 것 갈네만."
나까지 합세하면 독일인들 사이에서 국군의 위치는 더욱 나락으로 추락할 게 변했기에 나름의 쉴드를 쳐줬다.
그래도 실제 역사의 국군에는 없었던 전차도 있으니 아주 바닥은 아닌 셈이다.
성능이 거지 갈기로 소문난 89식과 치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전차는 전차니 없는 것보다야 낫다
공군은 육군보다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규모는 육군보다 더 작지만, 2차대전 기준으로 성능이 준수한 수준에 속한 하야테를 주력으로 쿨리고 있었으니까.
시대가 제아무리 제트기로 넘어갔다곤 해도 1950년대까진 프롬기도 제트기 못지않게 많이 쓰였으니 2차대전 프롬기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성능울 가진 것으로 평가받은 하야테 정도면 준수한 편이다.
"무적의 독일 군대와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을 겁니다."
장군들의 표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 파악한 이범석이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세계 최강의 군대로 소문난 특일의 장군들에게 이런 후졸근한 모습을 보여좋 수밖에 없는 국군의 현실이 그에게는 부끄러운 듯했다.
"비교 대상이 독일군이면 세계 어느 나라 군대를 데려와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소."
약소국 군대에서 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이라니까? 애당초 비교 대상이 독일군이면 군대라고 부를 수 있는 군대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밖에 없을 거다.
'총리, 내 하나만 물어봅시다."
"예. 뭐든지 물어보시길."
*미국인들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원가 남기고 간 게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소?"
브라우히치의 물음에 이범석은 작은 한습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전쟁도 끝났으니 남아도는 무기를 공여해졸 좋 알았는데, 소종과 수류탄 몇 개 전부더군요. 일제 전차와 전투기도 폐기하려던 것을 사정사정해서 겨우 받아낸 건니다."
이범석이 말하길, 중화기를 지원해달라는 이범석의 요청에 미국은 어차피 한국은 앞으로 전쟁을 할 일이 없는데 그런 무기들을 받아서 월 하겠느냐고 대답하며 싹 무시했다고 한다.
근데 사실만 놓고 보자면 미국이 그렇게 판단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한국은 안보적으로 대단히 안정된 상황이니. 분단도, 종국의 적화도 없고, 일본은 향후 수십 년간 미국이 통치하며 영원히 군대를 가질 수 없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독립 이후부터 내내 안보 불안에 시달려온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아시아 순방 전에 받은 SD의 보고에서 미국이 중남미의 친미 국가들과 소련, 그리고 아프리카 식민지 주둔 영국군에게 무기를 퍼주는 중이라고 들었다.
중요성이 뒤떨어지는 한국에 무기를 줘봤자 도움도 안 되니 아예 명단에서 빼버린 것이겠지.
한국 입장에서는 참 섭섭한 일이졌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결정을 한 것일 뿐이다
그래도 식량과 의약품 등의 원조는 계속해주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열식을 마치고 밥을 먹는데, 옆자리에 않은 이승만이 아내와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대화를 나누더니 별안간 내게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독일제 무기가 미제 무기보다 성능이 좋다고 들었소만."
"모든 장비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럴긴 하지요."
"마침 독일도 전쟁이 끝나서 무기가 남아돈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전쟁이 끝나고 감군을 하면서 남아도는 무기들은 영국, 형가리, 우크라이나 같은 동맹국들에 뿌리거나 치장물자로 창고에 보관 중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승만이 본심을 꺼냈다.
"그 남아도는 무기 일부를 한국에 넘기는 건 어떨소?"
이승만의 말에 나는 너비아니 구이를 입으로 가져가려던 것을 멈추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승만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은 것이 믿기 어려워서였다.
친미파인 이승만이 독일에 무기 좀 달라고 요청한다고? 이건 또 원 일이야? 설마 알고 보니 이승만이 친독파였다거나 전항했다는 설정은 아닐 테고.대체 워지?
"미국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그건 맞소. 하지만 어쩌겠소? 우리가 암만 요청해도 켓등으로도 들은 척도 안 하는데.
이승만은 커피를 마신 후 말을 이어갔다.
"물론 공짜로는 달라고 하지 않겠소. 이 나라에서 산출되는 령스텐 일부를 독일에 넘겨드리리다. 어떨소? 이 정도면 나를 괜찮은 거래 아니오?"
한국에 풍부한 텅스텐을 톡일에 넘기고 특일은 한국에 무기를 공여한다. 일단 들어보면 나본 조건은 아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한국에서 텅스텐을 들여오는 것보다 중국에서 텅스텐을 수입해오는 게 더 싸게 먹힌다
내가 이러한 점을 설명하며 힘들다는 의사를 보이자, 이승만은 무척 아쉬워했다
-어차피 이 나라가 외국과 전쟁을 할 일은 없지 않습니까?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무기가 아니라 공장과 식량일 텐데요.""
"맞는 말이오. 허나 총통, 대한이 왜적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건 나라에 힘이 없어서요. 앞으로 전쟁을 할 일 없으니, 국방을 소홀히 하는 것은 장차 큰 화를 불러올 것이오. 과거를 및은 나라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는 법이외다."
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암만 그래도 국방보단 경제 개발에 집중해야 할 때인 것 같은데.
그래도 일제의 지배를 받던 게 불과 4년 전의 일이니, 국방력 강화예 열종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나라 잃은 설움에서 해방된 지 5년도 되지 않았으니 언제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격정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세계를 정복할 생각이 없소. 딱 우리 강산과 우리 바다를 지릴 정도의 힘만 있으면 족하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돌아가서 궁정적으로 검토해보도록 하지요."
****
친미파인 이승만은 한국과 독일은 결코 가까워질 수 없다고 확신했다.
한국이 친하게 지내야 하는 나라는 독일이 아니라 오직 미국뿐. 그 신념은 히틀러가 방한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가 히틀러에게 독일의 무기를 팔아줄 것은 권유한 것은 그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이었다.
"어차피 한국이 타국과 전쟁을 치를 가능성은 현저히 낮지 않습니까. 그런데 콘이 무기가 필요합니까?"
"설령, 한국이 외국의 공격을 받더라도 족각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이 한국을 구원하러 달려올 것이니 격정은 마시지요."
"이 머저리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작자들 같으니라고!"
한국에도 무기를 공여해달라는 이송만의 요청을 무시하는 미국에 이송만은 분개했으나 걸으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한국은 미국에서 오는 원조로 겨우 먹고사는데 괜히 미국에 입보였다간 기껏 오는 원조도 품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자주국방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승만은 ‘독일을 끌어들이는 척’을 해서 미국의 관심을 유도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국이 독일에서 무기를 수입하려 한다는 것을 미국이 알게 된다면, 미국은 한국이 독일과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독일에 무기를 수입하려 했다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겠지만, 그렇다고 한국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버리는 즉시 한국은 독일에 붙을 것이고 이는 곧 극동에 독일의 전략거점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하니.
미국이 자신을 대통령직에서 쫓아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았다. 자신 말고 이 나라를 이끌어갈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것을 미국도 모르지 않을 테니.
김구와 이범석은 성품이 너무 대쪽 같은 나머지 미국과 꽤 마찰이 있었고 여운형은 좌익 인사라 미국이 좋아할 건덕지가 없었다.
진성 공산주의자인 박헌영은 더더욱 그렇고.
머잖아 미국에서 헐레벌떡 연락이 들어올 것이다. 혹시 아는가? 무기뿐 아니라 원조금액도 더 늘리겠다고 할지도………….
처음 히틀러가 한국에 오겠다고 했을 때의 찜찜한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그 히틀러를 이용해 미국을 움직인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그는 기쁜 마음으로 오늘도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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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23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길고 긴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오자, 진이 다 빠졌다.
이거야 원. 가서 한 일이라곤 배랑 기차를 번갈아 타면서 사진 좀 찍어주고, 밥 먹고 회의 비스무리한 걸 몇 번 한 게 전부인데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육체의 노화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래도 그간 숙원이었던 해방된 우리나라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내가 가는 길마다 사람들, 동포들은 진심으로 환영해주었다.
김구나 이범석이 따로 지시를 내린 건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인지는 몰라도 가는 곳마다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나 ‘한국-독일의 우호와 미래를 위해서!” 같은 말들이 한국어와 독일어로 적힌 현수막과 벽보가 사방에서 나부꼈고, 사람들은 독일 총통의 모습을 보기 위해 늘 구름 떼처럼 몰려다녔다.
“역시 총통 각하의 인기는 이 작은 나라에서도 하늘을 찌를 기세군요.”
라이헤나우는 지도에서 찾기도 힘든 극동 변방의 나라에도 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에 놀란 눈치였다.
“나도 놀랍네.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이 모일 줄은.”
독일이 일본과 전쟁을 치르긴 했지만, 한국을 직접적으로 해방한 나라는 엄연히 미국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곁다리인 나를 보며 환호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본 사찰에 대문짝만하게 하켄크로이츠가 그려져 있던데, 한국인들이 독일 국기를 보고 자신들처럼 불교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하하하. 설마…………”
조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브라우히치의 농담은 사실이었다.
하켄크로이츠 국기를 본 한국인들이 독일도 같은 불교를 믿는 국가라는 설이 그 당시의 우리나라에 퍼져 있었던 것이었다.
동시에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내가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 한국에 애정을 가진 것이라는 소문도 진실인 것마냥 퍼져 있었고.
이전의 올림픽과 수재지원금 일로 나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이 가득하던 한국에서 이 같은 소문까지 퍼지자, 히틀러 총통은 한국을 좋아한다는 설이 사실로 굳어졌다.
결과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할 뿐.
분단과 6.25라는 초대형 악재를 피했으니, 이제 한국에 남은 과제는 경제성장뿐이었다.
냉전에서 아시아의 역할이 적은 관계로 미국의 대규모 지원과 투자가 없을 예정이라 경제성장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만, 그래도 전쟁으로 국토가 초토화되고 수백만 명이 죽는 참사는 피했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순방 중 이승만이 말한 퇴역 장비 일부를 텅스텐과 맞바꿔 한국에 보내는 것과 장제스가 요청한 무기 판매 건에 대해서는 각료들과 얘기를 나눠봤다.
“중국에 무기를 파는 거야 뭐 돈만 벌면 그만이니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굳이 한국같이 보잘것없는 약소국을 끌어들여봤자, 독일에 도움이 될 일은 잘 없으리라고 봅니다. 미국과의 관계만 불편해질 수도 있고요.”
“자원이 많이 묻혀있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거리가 너무 먼데다 이미 독일은 자원의 수급처가 많습니다. 굳이 멀고 먼 한국에 의존할 이유가 없지요.” “끄응.”
리벤트로프는 외교적인 이유로, 샤흐트는 딱히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분하지만 전부 팩트라 부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나라에 무기를 공여해주는 건은 포기하는 걸로 마음먹었는데, 카이텔이 반론을 제기했다.
“여러분. 여러분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소.”
“잘못 알고 있다고요?”
“그렇소. 천재적인 선구안을 가진 총통 각하께서 아무 생각 없이 한국의 무기 공여 건을 꺼냈겠소? 다 뜻이 있으셔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
카이텔의 말을 들은 리벤트로프와 샤흐트의 태도가 달라졌다.
“물론 한국은 거리도 멀거니와 산업도 발달하지 않은 약소국에 불과하오. 하지만 위치상으론 일본과 중국 사이에 위치해 대륙과 해양 모든 면으로 진출이 가능한 요충지인 데다 영토에 비해 인구는 제법 많소. 즉, 독일의 잠재적인 시장으로서 가치가 있다 는 말이오."
"으음, 과연...…”
카이텔의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근엄한 척을 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도 생각해 본 반론이지만 딱히 먹힐 것 같지가 않아서 가만히 있었는데 이걸 카이텔이 대신 말해줄 줄은 몰랐다.
“가능성은 작지만, 만에 하나 한국을 독일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유사시 소련의 극동 지방을 공격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소. 그리고 최신예 병기도 아니고 퇴역한 구식 장비들이 우리 입장에서도 아쉬울 게 없소이다.” 생각지도 못한 카이텔의 선전 덕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한국에 대한 무기 공여 건은 기적적으로 통과되었다.
“다음 안건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불순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건 전에 들었네. 빨갱이들이 설치고 다닌다면서?”
“예. 그런데 이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모양입니다. 며칠 전에도 수도 로마에서 폭탄 테러 기도가 발각되어 관련자들 전원이 처형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수뇌부는 독일에 대항할 생각 따윈 꿈도 꾸지 못했다.
독일에 납부해야 할 배상금도 꼬박꼬박 배상하고 있었고, 행여 독일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신문에 반독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기사가 한 줄만 나와도 신문사를 통째로 폐간시켰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이탈리아에 딱히 이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 핀란드가 소련에 그랬듯이 지들이 지레 겁먹고 알아서 설설 기는 것뿐.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이탈리아 국민들의 반발심이 점점 커지는 중이었다.
“이탈리아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최근 공산당이 대놓고 활개를 치고 다니며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근시일 안으로 정부 세력과 공산 세력 간에 무력을 동반한 대규모 충돌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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