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 Blowing East part 4
< 동쪽으로 부는 바람 (4) >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장제스와는 3번 정도 더 만났다.
지나가는 말로 장제스에게 몽골 침공에 대해 떠봤더니 장제스는 확고한 목소리로 몽골은 중국의 영토라 소련에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니 확실해졌다. 장제스는 정말로 몽골을 침공할 생각이다.
워낙 의지가 확고하니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뭐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중국 일은 중국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원수의 생각은 어떻소이까?”
그래도 내심 불안한 느낌이 들어 팔켄하우젠과 단둘이 있을 때 그에게 장제스의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팔켄하우젠도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안경을 고쳐 쓰며 나지막한 한숨을 토했다.
“솔직히… 장제스 총통이 다소 성급한 판단을 하고 있지 않나 우려됩니다.”
“역시 그렇군․ 설득은 시도해보셨소?”
“저 역시 당장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만류했습니다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대업을 이루겠느냐고 말하더군요.”
팔켄하우젠도 알고 있다. 소련군이 결코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과 국민혁명군이 소련군에 대적할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장제스 총통이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원수 말은 듣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할 정도면 묻지 않아도 뻔하겠군.”
"중국이 몽골을 공격한다면 총통께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가만히 있어야 하지 않겠소. 독일에 더 이상의 전쟁은 필요 없으니.”
장제스는 우리가 자기네를 지원해주거나 우랄산맥 일대에서 분쟁을 일으켜 소련의 시선을 붙잡아두길 원할지 몰라도 나는 무조건 중립을 지킬 생각이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다. 중국이 몽골 먹는 것과 우리가 뭔 상관이라고.
만약 우리가 움직였다간 바로 미국이 움직일 거다. 이미 워싱턴에서 서로 남의 구역 넘보지 말자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걸 독일이 먼저 어긴다?
앞으로 독일이 하는 말을 미국이 귀담아듣기나 할까?
장제스가 몽골 침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팔켄하우젠은 군벌들에 대한 완전한 장악과 국민당 전체에 만연한 부정부패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에 하자고 제안했지만, 장제스는 여기서도 고집을 부렸다. 그 문제들이 다 해결되어 있을 즈음에는 너무 늦다고. 우선 중국의 고토부터 먼저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원수는 중국에 계속 남아있을 생각이오?"
“아직 중국이 저를 원하니 독일로 떠날 수 없지 않습니까. 당분간은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허허.”
장제스의 요청으로 팔켄하우젠은 중국에 남아있기로 했다.
고집불통 장제스조차도 아직 중국에는 팔켄하우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슬슬 은퇴를 생각하던 팔켄하우젠에게 몽골 정복이 완료될 때까지만이라도 중국에 있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 요청을 받아들여 팔켄하우젠은 중국 잔류를 선택했다. 본인이 중국에 계속 남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나. 본인 소신에 맡겨야지.
“알겠소. 이번에 독일로 돌아가면 원수를 보좌할 새 인원들을 보내드리리다.”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머리 아픈 희담만 한 건 아니다.
모처럼 중국에 왔으니 이리저리 놀러도 많이 다녔다.
만리장성에도 가봤고, 룽먼 석굴과 자금성, 이화원도 둘러봤다. 그 유명한 천안문 광장에도 가봤고.
천안문에는 대문짝만한 장제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천안문하면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내걸린 장면만 떠올랐는데 장제스의 초상화가 내걸린 천안문의 모습을 보자 기분이 묘했다.
“독일과 중국의 영원한 우정을 위해 건배합시다!"
"하하하! 지크 하일!!"
장제스는 먼 독일에서 온 나를 위해서 매일같이 성대한 만찬을 대접했다.
이곳은 유럽이 아닌 중국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인지 만찬장에 중국 요리들이 가득 차려졌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팔켄하우젠은 젓가락을 능숙하게 다루며 음식을 먹었지만, 리벤트로프, 브라우히치, 라이헤나우, 롬멜 등은 생전 처음 보는 생소한 음식들뿐이라 익숙한 독일 요리들만 주로 먹었다. 이런 맛알못들 같으니.
21세기 한국에 태어나 중식에 익숙해진 나는 모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다. 독일에서도 먹고 싶은 요리를 잔뜩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본토의 현지인들이 만드는 요리만 못하거든.
특히 불도장이나 베이징덕 같은 요리들은 독일에서도 찾기 힘든 요리들이라 집중해서 먹었다.
이곳은 난징이니 베이징덕보다는 남경오리가 더 유명하고 실제로 둘 다 만찬상 위에 올라왔지만, 역시 내 입맛에는 베이징덕이 더 알맞았다.
남경오리도 충분히 맛있지만, 오리를 소금물에 삶은 게 끝이다 보니 베이징덕보다 맛이 심심한 데다, 무엇보다 그렇게 특출난 요리가 아니다 보니 그렇게 자주 손이 가지 않았다. “아니, 히틀러 총통도 베이징덕을 드실 줄 아시는 겁니까?”
전병 위에 오리 껍질과 채 썬 오이, 살코기 등을 올려 능숙하게 말아서 먹고 있는데 장제스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다른 독일인들은 껍질과 살코기만 먹는데, 홀로 전병에 채 썬 오이까지 넣어서 먹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한국인으로 치면 백인이나 흑인이 상추쌈 먹는 걸 보는 느낌이려나? 한미연합훈련 때 화투 치는 미군 보고 되게 신기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전에도 드셔본 적이 있으신지요?"
“아뇨,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요? 너무 익숙하게 드셔서 몇 번 드셔본 적 있으신 줄 알았습니다.”
한국에 있을 적에도 베이징덕은 먹어본 적이 없다. 가격이 보통 비싼 게 아니라서 말이지.
그래도 TV에서 베이징덕 먹는 장면을 본 적 있기에 기억나는 대로 따라했더니 이게 정석이었던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장제스는 은근슬쩍 내게 독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필했다.
미국은 중국을 자기네 편으로 확실히 묶어두기 위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중국에 막대한 원조를 퍼주고 있지만, 식량, 연료, 의약품 등 비전투물자만 제공하고 있다.
몽골 정복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장제스는 미국에 무기도 줄 수 없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건 그게 왜 필요하냐는 대답이었다.
장제스의 계획을 모르는 미국 입장에선 중국에 무기를 더 이상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실제로도 그게 맞았다.
중국이 전쟁할 일이 뭐가 있다고? 공산당이 살아있었다면 틀림없이 무기도 퍼줬겠지만 중국 공산당은 진작에 멸망한 지 오래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에 무기를 줄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지금도 중국에는 미국이 준 무기가 많이 남지 않소? 성능은 변변찮아도, 일본군이 남기고 간 무기도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맞지요. 하지만 이래서야 국민혁명군을 세계 강군으로 만들기 참 곤란하단 말입니다. 부끄럽지만 아직 중국은 독자적인 무기를 개발할 여력이 안 되고…… 그래서 말인데 독일이 무기를 좀 팔아준다면 좋겠습니다. 허허허.” 그걸 알면서 몽골 정복은 또 포기 못 하겠다는 게 참 징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친구 같으니.
그래도 독일 입장에서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인지라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독일에서 수입한 무기로 무슨 짓을 할지 빤히 보이지만, 차후 중국의 무기 개발을 독일이 독점한다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몽골 침공을 사주한 게 아니냐고 추궁하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지만, 우린 무기만 팔았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미국도 어떻게 못 하겠지. 의심스럽긴 해도 고작 몽골 때문에 전쟁을 벌인다는 미친 짓은 하지 않을 테니.
*****
중국을 떠날 때는 전용기 대신 군함을 이용했다.
이번 기회에 아시아에 독일 해군의 위용을 보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했건만 그는 중국으로 비스마르크 전함과 호위함들을 보냈다. “그래도 전용기보다는 전함을 타고 가는 게 훨씬 더 위엄있게 보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활주로에서 내리는 것보다 전함에서 내리는 게 총통 각하의 위엄을 더 살려줄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야 뭐........
하기야 구경꾼들 입장에서는 수송기보다 전함이 훨씬 더 볼거리도 많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터.
이미 중국까지 온 전함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마당이니 별말 없이 전함에 올랐다.
“편안한 여행이 되도록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린데만은 못 본 사이에 중장으로 진급해 있었다. 그가 남은 여정을 책임질 해군 최선임자였다.
“내가 괜히 제독 방을 뺏은 게 아닌지 모르겠군.”
“무슨 말씀을! 되려 총통 각하께서 이용하시기에 방이 너무 좁고 불편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부는 됐네. 진흙과 흙탕물로 가득 찬 참호에서 한 달 넘게 지낸 적도 있는데 이 정도는 호텔이지. 30년 전 얘기긴 하지만.”
호위함들을 거느린 비스마르크는 상하이 항구를 떠났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서.
****
1944년 6월 2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에 따라 35년간 일본의 점령하에 놓였던 한국도 마침내 해방을 맞이했다.
천황의 옥음방송이 일본 본토와 아시아 전역에 울려 퍼지던 항복 당일 한국은 조용했다. 35년 동안 이어진 일본의 통치가 하루아침에 종료되었다는 사실이 한국인들에게는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불은분자들을 솎아내기 위한 일본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영위했다.
그러나 하루 뒤, 한반도 전역에는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한 독립 만세!!”
"독립 만세!!”
"드디어, 드디어!!!"
남녀노소 모두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광복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잡혀들어갔던 독립운동가들도 석방되었고, 늘 기세등등하던 순사들과 헌병들은 이제 그들이 업신여기던 식민지인들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정말로 광복이 오긴 왔구만…….”
“내 살아생전에 광복을 보게 되다니……….”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순사 놈들도 기가 팍 죽었어.”
“그러니까 말이우. 고거 참 속 시원하다.”
일본의 항복 선언 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백악관의 방침에 따라 신생 한국 정부의 수립을 지원했다.
역사에서 미국과 함께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소련은 일본보다 먼저 멸망해버린 탓에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는 것은 온전히 미국의 몫이 되었고, 자연스레 미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의 신생 대한민국 정부에서의 입지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미 정부에 한국의 독립 여론을 알리는 역할을 했던 이승만이 미국을 배경으로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국내외, 좌우를 막론하고 그를 뛰어넘는 명망가가 전무하다는 점도 그의 대통령직 당선에 큰 역할을 했지만.
"거, 우남이 형. 요즘 들어 왜 그렇게 울상이시오?"
중국 충칭에서 임시정부를 이끌고, 해방 후 세워진 대한민국에서 부통령이 된 김구가 넌지시 물었다.
김구의 물음에 이승만은 약과를 입으로 가져가던 것을 멈추고 곧 한숨을 푹 쉬었다.
“이보게, 백범. 나는 아직도 히틀러를 이 나라 대한에 들이는 게 영 마땅치가 않네."
미국에서 유학하고 일제강점기 내내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이승만은 미국과 정반대의 위치에, 미국과 전쟁까지 벌인 적 있는 나치 독일을 결코 호의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런 이승만을 김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히틀러 같은 거물이 온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오히려 세계의 관심이 대한에 집중될 테니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오?"
히틀러가 한국 방문을 타전해오자 한국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미국 대통령도 한국에 온 적이 없는데,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독일 총통 히틀러가 한국에 온다니!
히틀러가 누구인가. 나의 투쟁으로 일찍이 전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린 예언가이자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도 성공한 적 없는 유럽 통일에 성공한 정복자가 아닌가.
독일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라도 히틀러의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히틀러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막 독립한 별 볼 일 없는 약소국에 방문한다니.
히틀러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무섭게 한국은 히틀러를 맞이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히틀러의 방한 요청을 허가하긴 했어도 이승만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혹시 미국 눈치 때문에 그러시오?"
이승만의 성향을 잘 알던 김구가 넌지시 말했다.
이승만이 히틀러의 방한을 내심 꺼리는 것도 미국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했고 미국을 롤모델로 삼아 극동에 ‘작은 미국'을 만들고자 하는 이승만은 히틀러의 방문으로 미국에서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미국은 히틀러의 방한에 딱히 제동을 걸지 않았지만 겉으로나 그럴 뿐 뒤로는 이승만 정부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나라 살림이 넉넉지 않아 미국이 보내주는 원조물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이승만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내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 대한이 늘 가까이해야 할 국가는 미국일세. 미국이 가는 길이 곧 대한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이 말일세.”
“아무렴. 이 나라에서 어느 누가 그 말에 토를 달겠습니까?”
"음, 음, 그건 그렇지. 암."
미국이 아닌 소련을 독립한 조선의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산주의자들은 해방된 한국에서 힘을 잃은 지 오래였다.
소련과 일본이 밀착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 수위를 낮췄지만,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공산주의자들은 지지를 잃었다.
세계 인민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고 여겼던 소련이 제국주의 압제자 일제와 손을 잡자 소련이 일본을 쳐부수고 조선을 해방할 것이라 믿어왔던 공산주의자들은 충격받았다. 당연히 민심은 공산당을 떠났고, 일본과 전쟁 중인 미국과 미국의 지지를 받는 이승만에게 집중되었다.
“그런데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네.”
"그게 뭡니까?”
“히틀러는 왜 대한에 오고 싶다는 거지?”
이승만은 어째서 히틀러 같은 거물이 별 볼 일 없는 이 작은 나라에 오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영부인이 히틀러와 동향 사람이라서 그런 거 아니겠소?"
이승만의 아내, 프란체스카 도너는 히틀러처럼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다.
그렇기에 히틀러의 방한 이유를 두고서 영부인이 동향 사람이라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돌고 있었다.
“이 사람아, 택도 없는 소리 말게.”
“농담 한 번 했는데 뭘 정색까지 하고 그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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