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 Blowing East part 5
<동쪽으로 부는 바람 (5) >
이승만 외에도 히틀러의 방문을 탐탁지 않은 이는 여럿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내무부 장관인 신성모. 이승만의 최측근이자 이승만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던 신성모는 상선사관의 신분으로 영국 해군에서 복무한 전적이 있었다.
자연히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히틀러의 독일은 대한과 결코 가까워질 수도 없고, 가까워져서도 안 되는 국가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방한을 꺼리는 이들보다 반기는 이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 이범석과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이었다.
독일에서 유학한 경험 덕에 나치와 히틀러에 우호적인 안호상은 말할 것도 없고, 히틀러 치하 독일을 방문해 깊은 인상을 받은 적 있는 이범석도 히틀러의 방한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전에 히틀러는 손기정과 남승룡을 만나 친히 격려하고, 수재로 고통받는 조선 민중을 위해 금일봉을 하사한 적이 있다. 조선과 그 어떤 인연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슨 이유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한국에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이 먼 땅을 방문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히틀러의 군국주의적 정책과는 거리를 두던 김구 또한 히틀러의 방한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한국에 방문한 것일지라도 한국에 좋은 일이면 좋은 일이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좋게 좋게 생각합시다. 우남이 형. 이번 일로 말미암아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다면 분명 좋은 일이 아니겠소? “맞습니다. 각하! 히틀러 총통의 방문은 세계에 대한의 이름과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구의 말에 이범석이 강력한 지지를 표하자, 이승만은 내심 못마땅한 듯 툴툴거리면서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히틀러의 방한 날짜가 되었다.
“세상에, 저것 좀 보소.”
“뭔 배가 저리 크냐?”
“배가 아니라 궁궐을 보는 것 같네.”
“저 큰 배에 히틀러가 타고 있다고?”
인천항에는 히틀러를 보러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생애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구경을 위해 항구로 몰려든 사람들은 비스마르크가 모습을 드러내자,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배가 항구에 정박하고, 히틀러가 배에서 내리자, 군악대가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의 연주를 시작했다.
“총통 각하!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흠, 당신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오?”
“강세형이라고 합니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는 남자의 이름은 강세형. 초대 국방부 정훈국장인 강세형은 1931년부터 1935년까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 다니며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적 있는, 한국에서 몇 안 되는 독일통이었다.
독일에서 거주하던 시절부터 나치즘의 열렬한 신봉자가 된 그에게 지금, 이 순간은 마치 꿈만 같았다.
독일에 지낼 적에도 히틀러를 먼발치에서 지켜본 게 전부였는데, 지금 그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독일어가 유창하시군. 독일에서 사신 적이 있으시오???
“예.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 다니면서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나보다 더 독일어가 유창한 것 같구만.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통역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려.”
“물론입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
1948년 4월 16일
한국 서울
인천항에는 나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먼 극동에도 총통 각하의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이는 국가사회주의의 가치가 극동에도 통한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핫!” 옆에서 헤스와 리벤트로프가 이런저런 말을 해댔지만,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내, 마침내 한국에 왔다. ‘진짜 우리나라’에.
조금 더 빨리 배를 갖다 댈 수 없냐고 묻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상륙을 기다렸다.
비스마르크가 항구에 정박하고 땅에 발을 딛자 나를 기다리던 군악대가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국 땅에서, 그것도 공식 석상에서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듣게 될 줄이야.
한국 정부에서는 배를 갈아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곧장 서울로 갈 것을 권했지만 1948년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었던 나는 그 제의를 거절하고 서울까지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내내 나는 나를 보기 위해 길가로 모여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조그마한 아이들부터 머리 위에 항아리를 짊어진 아낙들,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노인들부터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들까지.
모두가 독일 총통의 행렬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많군.”
“머나먼 독일에서 귀하신 손님이 오셨는데 관심 없을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혼잣말이었는데 안내역을 맡은 강세형은 그걸 또 귀신같이 알아듣고 말했다. 어,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총통 각하께서 대한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과찬이시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무슨 말씀을! 총통 각하께선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장담컨대 향후 수백, 아니 수천 년이 지나도 총통 각하의 업적을 뛰어넘을 자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크흠. 부끄럽구려.”
말을 마친 강세형은 잠시 내 눈치를 살폈다.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인데.
“할 말이 많은 눈치인데 가감없이 말해보시구려. 뭐든지 대답해줄 터이니.”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께서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이 먼 한국까지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뭐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없소. 단지 예전부터 이곳에 오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
"오오.........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힐 수 없으니 그냥저냥 둘러댄 말인데 강세형은 진심으로 감동받은 눈치였다.
이게 그렇게까지 감동받을 일인가? 딱히 한국에 좋은 얘기는 별로 안 했는데.
강세형은 이 뒤로도 여러 질문을 하긴 했지만,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주변 풍경을 구경하느라 바빴기에.
티베트만큼은 아니지만, 이 시기의 우리나라도 허허벌판이 참 많았다. 독립한 지 4년밖에 안 된 신생 국가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건물들은 대부분 볼품없었고, 초가집이 많이 보였다.
이 시기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이니 어쩔 수 없지만, 가랑이 찢어지게 가난한 조국을 현실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니 조금은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아는 한국의 모습이 되려면 제법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부끄럽습니다만 아직 나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베를린의 거리와 비교하면 아주 밋밋하게 보이실 겁니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 짐작한 강세형이 말했다.
“송구스러워할 필요 없소. 당신 잘못도 아닌데. 애초에 불과 4년 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던 국가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부유해질 수 있겠소?"
서울에 들어서자 그제야 고층건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물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아직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은 탓에 일본식 목조 건물들이 많이 보였고, 소달구지가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인천에서도 환영행렬이 많았지만, 서울로 넘어오자 그 수가 비교를 할 수 없었다. 거리마다 들어찬 사람들이 나를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목을 빼 들고 있었다. 독일이 한국을 위해서 해준 게 딱히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가 지나가자,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의 성원에 화답하기 위해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자,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히틀러! 히틀러! 히틀러!”
“저 소리가 들리십니까? 모두가 총통 각하의 방문을 진심으로 반기고 있습니다.”
“허허. 이거 참…………”
옛 조선총독부 청사, 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정문에는 태극기와 하켄크로이츠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리무진에서 내리자, 역사책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또 한 명의 네임드급 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총통 각하를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이범석은 독일어를 못했지만, 첫마디만큼은 완벽에 가까운 독일어로 말했다. 아마도 이 순간을 위해 연습한 것일 터.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굳은살이 박인 이범석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일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해 온 위인답게 말과 행동에서 절도가 넘쳐 흘렀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요. 나도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이범석 외에도 나를 맞이하러 온 고위 관료들은 여러 명이었다.
김규식, 조만식, 신익희, 신성모 등등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접했던 이들이 나를 만나기 위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을 보니 참으로 오묘했다.
이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고 아직 청와대로 개명되기 전의 경무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승만과 김구를 만났다.
둘 다 한국 현대사를 논할 때 빠지려야 빠질 수 없는 거물들.
김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와 손을 맞잡았지만, 이승만의 경우 덤덤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먼 길 오시느라 대단히 고생하셨소.”
“별말씀을. 고생이랄게 있습니까? 아주 편안한 여행길이었지요.”
지금까지는 강세형이 내 옆을 따라다니며 통역을 맡았지만, 이승만과 대화할 때는 이승만의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가 통역을 맡았다.
“영부인께서 저와 동향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먼 극동의 타국에서 같은 동향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허…………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
나와 주로 대화를 나눈 이는 김구, 이범석이었고 이승만과는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승만이 유독 딱딱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선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알다시피 이승만은 미국에서 수십 년 동안 거주해온, 반은 미국인이나 다름없는 사람. 훗날 독재자로 변질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그가 보기에 민주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독일의 총통인 나는 영 마땅찮은 존재일 것이다. 하물며 독일은 미국과 전쟁까지 했던 나라니.
그렇기에 그가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물며 지금 한국은 미국의 원조로 입에 풀칠하고 있는데 내 방문으로 인해 미국에서 이상한 오해를 사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히틀러 총통께서 이렇게나 한국에 관심이 많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띄워주지 마십쇼. 그렇게 자세히는 모르고 책 몇 권을 읽은 게 전부이니.”
“우남이 형도 뭐 묻고 싶은 거 없소?”
커피잔을 드는 이승만에게, 옆에 앉은 김구가 넌지시 물었다.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모두 내가 자기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이해하고 있을지 꿈에도 모르겠지.
“흔한 일이 아니니 우남 형도 말해보시구려. 히틀러 총통은 독일 총통이기 전에 손님이 아니오.”
“커흠. 그렇다면야 뭐………….”
잔을 내려놓은 이승만이 입을 열자 나는 그가 하는 얘기를 듣기 위해 시선을 그리로 돌렸다.
“총통이 멀고 먼 극동의 반도까지 온 이유가 단순한 관광 때문만은 아닐 텐데, 따로 원하는 게 있소이까?”
질문 한 번 화끈하네. 천하의 미국한테도 반공포로 석방으로 빅엿을 날린 사람답게 빠꾸가 없었다.
“하하하. 원하는 거라니. 그런 것은 딱히 없습니다.”
이승만은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정말로 관광 차원에서 온 거다.
형식적으로는 아시아 각국과의 우호 관계 증진을 목표로 두고 있지만, 한국에 원하는 것은 정말로 없다. 안 그래도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 벗겨 먹을 게 뭐가 있다고?
크릭스마리네가 거점으로 삼을 항구? 친미파인 이승만이 한반도에 독일 해군 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용납할 리 없을뿐더러 그랬다간 미국이 당장에 게거품을 물고 항의해 올 것이다.
한반도에서 많이 산출되는 광물인 텅스텐도 생각해봤지만, 이미 독일은 스페인, 포르투갈, 터키, 중국 등지에서 텅스텐을 수입하고 있는지라 한반도에서 채굴되는 텅스텐이 그렇게까지 귀하진 않다.
광석 품질을 따지면 한국산 텅스텐이 중국산 텅스텐보다 고품질이지만 이송 비용 등 부차적인 요소를 모두 고려할 경우 중국에서 텅스텐을 들여오는 게 훨씬 더 싸게 먹힌다.
물론 중국과 사이가 틀어진다면 한국에서 텅스텐을 들여오는 것을 검토해야겠지만, 국민당 정권이 붕괴하고 멸망한 공산당이 부활해 중국 전역을 통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독일과 한국이 서로 돈독한 관계를 맺길 원해서입니다. 그 외에 다른 욕심은 없습니다.”
“그렇소? 허허, 내가 괜한 오해를 한 모양이군. 이 늙은이가 나이를 먹을수록 의심이 많아져서 말이오. 아무튼, 먼 곳까지 왔으니 푹 쉬다 가시오.”
내가 부정하자 이승만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눈빛은 여전히 뭔가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지만, 취조실도 아니고 여기서 더 어쩔 거야.
***
“여보, 아까는 너무 위험했어요.”
만찬이 모두 끝나고 잠자리에 들 시간에 프란체스카가 남편 이승만에게 한 말이었다.
“히틀러 그 사람이 호인이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무례하게 여길 수도 있는 말이었어요.”
“본인이 그렇게 느끼더라도 뭐 어떻게 할 거요. 여기서는 내가 대통령인데. 그리고 남자가 겨우 그런 질문 하나 들었다고 속에 담아둘 정도면 그 위치까지 올라가지도 못했을 거요.”
워낙에 능구렁이 같은 작자다 보니 어영부영 넘어가긴 했지만, 이승만은 여전히 히틀러를 의심하고 있었다.
독일 총통씩이나 되는 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먼 극동까지 왔을 리가 없다.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이승만은 고민했다.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 열도 사이라는,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곳 한반도를 차지할 경우 태평양으로도, 중국 대륙으로도 진출하는 게 가능해진다.
히틀러의 목표는 이곳 한반도를 독일의 강역으로 편입시키거나 최소한 독일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위치로 만드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독일이 서로 대립 관계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한반도를 손에 넣는다면 미국이 통치하고 있는 일본을 위협할 수 있을뿐더러 미국과 중국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고, 마지막으로 독일과 철천지원수인 소련의 연해주를 공격할 수 있다. 지금쯤 히틀러의 머릿속에는 한반도에 독일 군대를 위한 기지를 만들어 아시아-태평양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래가 그려지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유럽을 정복했으니, 이젠 뭐가 두려울까? 그가 아시아에까지 눈독을 돌려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도 김구와 이범석은 히틀러에게 홀라당 넘어가 그가 한국에 무한한 애정을 가진 호인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이승만은 이것이 영 마땅찮았다.
장차 세계를 지배할 국가는 군국주의 독재국가인 독일 따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선봉자인 미국이거늘……………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