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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6월 15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우리는! 실험 쥐가! 아니다!” “흑인도 사람이다!" “정부는 즉시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대통령은 사죄하라!” 터스키기 실험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흑인은 거리로 나왔다. 이곳, 뉴욕에 사는 흑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소부, 부두 노동자, 가게 점원처럼 가난하고 천대받는 직종에 종사하는 흑인들부터 변호사, 음악가, 은행원 등 흑인들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서도 상류층에 속하는 흑인들도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평소 가난한 흑인들을 멸시하며 자신들은 보통의 흑인들과 구별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들에게 그들이 멸시하는 하류층의 흑인들과 연대하게 했다. 정부가 흑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며 1년 동안 얼마를 벌고 어디에서 살든 간에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모든 흑인은 분노를 토해내며 브로드웨이를 행진했다. 자신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똑같이 화를 내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 소수나마 백인과 황인,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섞여 있었지만, 시위대의 절대다수는 흑인들이었다.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시위대의 선두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제시 오언스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이 벌어진 터스키기와 오언스가 태어난 오크빌은 같은 앨라배마 주에 속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언스는 환대는커녕 철저한 냉대와 무시, 억압을 받았다. 올림픽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온 오언스에게 미국 체육회는 아마추어 자격 철회로 답했고, 오언스는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주요소 직원과 체육관 청소부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가난하게 지내야 했다. 베를린에서 그가 받았던 환대와 너무나 비교되는 조국에서의 차별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그에게 터스키기 소식이 들렸다. 그는 바로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이끌었다. 백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