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acy of the Empire part 10
<제국의 유산 (10) >
식민지 욕심으론 영국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프랑스.
그런 프랑스가 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들을 점령하는 것을 포기하고 철수한 것에는 식민지 주둔 영국군의 강한 저항도 컸지만, 자기네 식민지 내부에 불고 있는 독립 열기에 위기를 느낀 게 더 컸다. 이미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잃었다. 그랬기에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의 상실을 메꾸기 위해 아프리카 정복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영국군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잃은 것처럼 영국은 인도를 잃었다. 그랬기에 영국은 아프리카 식민지들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자 했다.
듀이도 애틀리와의 약속대로 영국군에 막대한 지원을 퍼주었고 영국군은 프랑스군을 어렵지 않게 물리쳤다.
독일도 동맹 프랑스에 각종 무기를 팔아줬지만, 미국과 달리 무상은 아니었다.
돈은 확실하게 받아가는 독일에 프랑스는 치를 떨었지만, 제 코가 석 자였으므로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기존에 있던 식민지들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이대로면 안 된다. 기껏 가지고 있는 식민지들까지 모두 잃으면 프랑스는 영원히 이류, 삼류 국가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페탱은 눈물을 머금고 철군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식민지인들을 달래기 위해 급히 당근을 꺼내 들었다.
“식민지인들의 독립과 저항 의지를 잠재우려면 그들에게도 프랑스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하네.”
페탱의 ‘폭탄 발언'에 각료들은 화들짝 놀랐다.
미개인 아랍인, 흑인들을 위대한 프랑스인들과 평등하게 대우한다니. 그런 발상은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왜?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했나?”
“그건 아닙니다만………….”
라발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놀라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가장 확실한 정책이었다.
“평등하게 대우한다면, 어디까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프랑스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 이 말이네. 더 이상 출신지, 피부색, 종교 따위로 차별하지 않고 완전히 프랑스 국민으로 대우하도록 하지.”
페탱은 결심했다. 위대한 프랑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그는 어떤 조건이라도 기꺼이 들어줄 생각이 있었다.
이전에도 식민지인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여러 유화책이 제시된 바 있으나, 이슬람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하면 시민권을 주는 등의 조건이 붙은 유화책이었다.
당연히 식민지인들이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고, 프랑스를 향한 반발은 더욱 거세어져만 갔다.
페탱은 이 같은 정책을 철폐하고 식민지인들도 프랑스인들과 평등하게 대우하기로 했다.
“이 방법 말고는 저들의 의지를 꺾을 방법이 없네. 그런 게 있다면, 가감 없이 말해보도록.”
으스대기 좋아하는 각료들과 장군들도 총칼로 억누르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들도 마음속으로는 무력이 더 이상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랬다간 저들이 주제도 모르고 우리 머리 위에 앉으려 할지 모릅니다. 우선은 관련 법안들을 제정해서 차근차근 접근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맞습니다. 갑자기 식민지인 전체에게 같은 권리를 부여했다간 국민의 반발이 거셀 겁니다.”
그렇다고 인간이기는 하나 열등한 존재로만 여기던 토인들을 단숨에 자신들과 같은 프랑스인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에 본능적인 저항이 없지는 않았다.
“자네들, 바본가?”
페탱은 수하들의 말에 한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몰라서야, 원.
“그랬다간 식민지인들의 화만 더 돋을 뿐이네. 저들의 요구조건은 독립이라고, 독립! 프랑스의 품에서 벗어나 제 살림을 차리는 게 목표란 말일세! 어지간한 조건으론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을 걸세. 저들 입에서 독립 소리가 쏙 들어가게 하려면 그만큼 큰 당근을 쥐여줘야 한다고!"
노원수의 일갈에 각료들과 장군들은 입을 다물었다. 페탱의 눈치를 살피던 라발이 조심스레 물었다.
“각하께서 조건을 제시하셨는데도 독립 소리가 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리가 없네.”
페탱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독립에 혈안이 됐다고 한들 프랑스인들처럼 평등하게 대우해주겠다는데 이를 거부할 정도로 무모한 작자들은 없으리라. 페탱은 그렇게 믿었다.
“더 이상 식민지인 따위가 아니라 프랑스 국민이 될 수 있는데 누가 반대를 하겠나?”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어딜 가더라도 욕심이 넘치는 놈들은 있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게. 이 정도 조건을 제시했으면 분명 내분이 일어나기 마련이니."
***
페탱이 식민지인들에 내건 조건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더 이상의 차별 정책은 없다. 알제리에서 태어났든, 모로코에서 태어났든, 세네갈에서 태어났든 전부 다 프랑스인처럼 대우하겠다.
-마을마다 학교와 병원도 지어주겠다. 문맹 퇴치를 위한 기본 교육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
-최대한의 자치권을 부여하겠다. 단, 독립 소리만 꺼내지 마라. 독립만 안 한다면 뭘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페탱은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체포된 식민지인들을 전격적으로 석방했다.
물론 석방된 이들은 단순히 프랑스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거나 자국이 독립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체포된 사람들로, 적극적으로 독립을 주장하고 프랑스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이를 계획한 이들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럼에도 이 같은 페탱의 정책은 식민지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잡혀갔던 삼촌도 돌아오셨고……..”
“학교도 지어준다는군. 병원에서 진료도 받을 수 있고.”
“프랑스 놈들이 하는 말이 믿나? 그놈들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해온 거짓말이 몇 개나 되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뭔가 다른 것 같지 않나?”
“맞아. 이번엔 다른 느낌이 들어.”
라디오 방송에 나온 페탱이 식민지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하자 식민지 사회는 크게 술렁거렸다. 독립을 부르짖던 이들조차 달라진 프랑스 당국의 태도를 보고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는 기운을 느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더 이상 프랑스에 속아선 안 됩니다!”
“여기서 멈춰선 안 됩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독립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끝없는 투쟁을 부르짖으며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선동이 사람들에게 잘 통하지 않았다.
프랑스가 내민 당근은 너무나 컸다.
프랑스인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기회, 각종 인프라와 최대한의 자치권까지.
이정도면 독립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아졌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독립투쟁이라는 위험한 일에서 발을 빼고자 했다.
독립하자는 말만 하지 않아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약속받았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나?
“이 배신자들! 프랑스 놈들에게 얼마를 받아 처먹은 거냐!” “그러니까 네놈들이 돼지 소리를 듣는 거야. 멍청한 놈들.”
“그러는 네놈은 선동만 하고 절대로 앞에 나서는 일이 없잖냐!" “비겁자들은 네놈들이다! 이 역겨운 선동꾼들아!”
페탱의 계산대로 식민지의 독립운동들은 동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동력은 잃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분까지 일어나자 더더욱 금상첨화였다.
비록 식민지인들도 앞으론 프랑스인들처럼 대우해야 했으므로 만만찮은 금액이 깨질 예정이지만 식민지를 완전히 잃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위대한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다. 프랑스를 위대한 국가로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이 정도면 싸게 먹힌 거라고 봐야 할 터.
****
하지만, 페탱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식민지인들은 대체로 페탱의 조치에 만족을 표했지만,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저 미개한 깜둥이들도 이젠 우리랑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허! 세상 참 말세야, 말세.”
“위대한 프랑스인들인 우리가 어째서 저 야만인들과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가!”
“아랍 놈들 따위를 위해서 학교를 짓는다고? 학교를 지어도 그놈들이 제대로 다니기나 하겠어?”
“애초에 저놈들에게 학교가 왜 필요한데? 그리고, 그거 전부 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만드는 거 아냐?”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열등하다고 여기던 식민지인들과 앞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저 미개한 야만인들과 갈리아 민족이자 위대한 프랑스인인 자신들이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째서 우리의 피 같은 돈으로 야만인들을 도와야 한단 말인가?
페탱이 하는 말을 신의 계시처럼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광신적인 지지파들 정도나 페탱의 방침에 일절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따를 뿐, 대다수 프랑스인은 이러한 조치에 강한 반감을 품었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비단 시민들뿐 아니라 군인들,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교들조차도 페탱의 발표에 반감을 지녔다.
“이게……… 정말 맞는 건가?”
“허. 이러다간 야만인들을 상전으로 모시게 될지도 모르겠군.”
기껏 죽도록 싸웠는데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철수. 심지어 저 무식한 야만인들도 앞으론 프랑스인으로 대우해주겠단다. 참나.
세계 어디를 가도 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을 뽑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게 바로 군대고, 프랑스군도 다르지 않았다.
식민지에 대한 처우 문제를 시작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한 불만은 서서히 그 범위를 넓혀 갔다.
“보슈들에겐 찍소리도 못하면서 아래로는 큰소리치기나 하고………….”
“내 말이. 보슈들은 아직도 우릴 자기네 꼬붕으로 여기고 있네. 망할 놈들.”
히틀러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란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도 페탱 정권은 독일에 변변찮은 항의 한 번도 못했다.
여전히 프랑스에 주둔하는 독일군의 주둔비용을 부담하는 건 프랑스의 몫이었고, 독일은 프랑스를 동맹으로 인정하면서도 프랑스가 부담해야 할 배상금은 한 푼도 깎아주지 않고 1프랑까지 철저하게 계산해서 받아갔다. 여전히 게슈타포는 프랑스 정보부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받아가면서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는 공유하지 않으려 했고 반독 인사들을 체포해 독일로 압송해서 재판받게 했다. 당연히 프랑스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
불만 많은 불평분자들의 모임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이는 앙리 지로였다.
프랑스 침공전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된 지로는 1942년에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약간의 휴식기를 가진 뒤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한평생 충성을 바쳐왔던 조국이 독일의 졸개로 전락하고, 대육군이 독일군의 보조병력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는 페탱에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언젠가 힘을 모아 독일에 대한 설욕전에 나서야 한다고 페탱을 설득했지만, 페탱은 지로의 주장을 헛소리로 일축했다.
“자네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상대는 더 이상 우리가 예전에 알던 그 독일이 아닐세. 영국과 미국, 소련이 힘을 합치고도 독일을 이기지 못했는데 우리가 어찌 이기겠나? 다시는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말도록.” 그럼에도 페탱은 위험한 소리를 하는 지로를 내치지 않고 그대로 유임시켰지만, 지로가 주장을 굽히기는커녕 공공연하게 독일에 대한 복수를 떠벌리고 다니자 결국 그가 가진 권한을 축소시켰다.
그래도 군부 내 원로에 자신과 가까운 사이였던 지로를 배려해 독일에 이를 알리지는 않았지만, 지로가 보기엔 페탱도 결국 라발 같은 독일의 하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페탱 원수는 이미 총기를 잃었다. 그에겐 독일에 저항할 생각이 더 이상 없다.
영웅들은 사라지고 변절자와 매국노들만 판을 치는 지금, 뜻 있는 자들이 모여 힘을 모아 프랑스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프랑스는 영원히 독일의 노예로 전락하리라.
하지만 이들에게 용기-이것을 용기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는 있지만, 세력이 미약했다. 자신들 휘하의 병력을 모두 동원한다고 해도 3개 사단이 나올까 말까 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병력으론 나라를, 프랑스를 바꿀 수 없다. 그랬기에 이들은 자신들과 뜻을 함께할 동지들을 찾았다.
마침 그들의 동지가 될 이들도 뜻이 맞는 이들을 찾는 중이었다.
“그들을 만나고 왔나?”
“예.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해서 놀랐습니다.”
프랑스 공산당.
그들의 새로운 동지가 될 자들의 정체는, 그들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던 빨갱이들이었다.
“각하. 저는 이게 과연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때문에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빨갱이들과 손을 잡는 것은 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보슈들이 쳐들어왔을 때, 그놈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잊으셨습니까?”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 후 프랑스 공산당은 모스크바의 지령에 따라 반전시위를 전개하며 프랑스의 전쟁수행에 열심히 사보타주를 가했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의 노동자들을 선동해 파업을 일으키고 군 내부의 공산주의자들과 합심해 전차와 전투기의 엔진을 망가뜨렸으며 프랑스군이 전쟁에 대비해 다리에 설치한 폭탄을 해제했다.
프랑스가 항복한 후에도 프랑스 공산당은 독일의 점령에 순응하며 반공 성향의 레지스탕스 단체들을 독일군에게 밀고하기까지 했다.
이들이 대독항전에 나선 때는 소련이 독일을 공격한 이후였다.
만약 독일과 소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공산당은 지금도 독일군의 개 노릇을 하며 애국자들을 밀고하고 다녔을 터.
이때의 원한을 잊지 않은 장군들은 공산당과 손을 잡는 것에 우려와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 아네.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아. 우리 힘이 충분했다면, 저런 버러지들과 힘을 합치는 일도 없었을 걸세.”
지로 또한 프랑스보다 레닌-마르크스주의에 충성하는 공산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제 나라는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까지 거리낌 없이 팔아먹을 수 있는 저 역겨운 종자들의 씨를 말리고 싶었다. 다시는 공산주의의 ‘공자도 꺼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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