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acy of the Empire part 7
<제국의 유산 (7) >
1945년 5월 7일
미국 워싱턴 D.C.
“내 살다 살다 이런 날이 다 올 줄은 몰랐군.”
“총통 각하. 저도 그렇습니다.”
나와 괴링은 워싱턴 거리를 수놓은 셀 수 없이 많은 성조기와 하켄크로이츠 물결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미합중국의 수도에서 하켄크로이츠를 보게 되는 날이 오다니.
미국으로 오는 길에 대서양에서 내가 탑승한 Ju352를 P-51 머스탱 편대가 호위하는 것을 보고 새삼 신기하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했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이래서 전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아차차. 조심하자고. 우리야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지만, 미국인들이 듣기엔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으니 말이네.”
“하기야 자기들을 놀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거리에는 족히 수십만 명은 됨직한 인파가 우리의 행렬을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구경꾼들 다수는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한 구경거리를 보러 나온 평범한 시민들이었지만 평범이라는 단어와 조금 거리가 있는 친구들도 꽤 보였다. 저기 저, 돌격대 제복을 흉내 낸 게 분명해 보이는 갈색의 제복을 입고 로마식 경례를 올리는 친구들 말이지.
미국 은색군단 친구들에게 나는 일부러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이들의 입에서 지크 하일과 하일 히틀러가 터져 나왔다.
미국 은색군단은 미국의 대독 선전포고와 함께 해산된 줄 알았는데, 제복을 입고 깃발까지 들고나온 걸 보니 다시 재창단한 모양이다.
아니면 이제껏 조용히 지내다가 오늘만 입고 나온 것이라던가.
저기 보이는 저 깃발은 독일계 미국인 동맹 깃발이고.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오기 전에 걱정을 좀 했거든요.”
우리를 보러 나온 구경꾼들을 곁눈질로 구경하던 괴링이 말했다.
많은 미국인이 독일과 전쟁을 하는 것에 반대했고, 실질적으로 싸운 기간이 몇 개월 되지 않는다곤 하나 아직 그 앙금이 어느 정도 남아있을 터.
그런데 분위기 자체는 생각 외로 괜찮았다.
시민들은 우리를 세상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볼 뿐 증오 섞인 시선은 찾기 힘들었고 욕설이 터져 나오거나 돌멩이가 날아들지도 않았다.
히로히토가 전후 수십 년이 지나 영국과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는 태평양 전쟁을 기억하던 사람들에 의해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전쟁이 끝난 지 2년도 되지 않았는데 미국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미 육군 군악대가 연주하는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백악관의 주인과 악수했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총통.”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갈까요.”
***
독일 총통의 신분으로 미국을 국빈방문하고, 백악관에 들어가 보게 될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이거, 목표 초과 달성 맞지? 분명 게임 목표에는 전쟁 승리라는 말만 있었지 미국을 방문하라는 소리는 없었으니.
새삼스레 내가 역사를 얼마나 바꿔놨는지 체감이 들면서 가슴이 웅장해졌다.
“총통께서 지내시는 관저보다는 조금 협소합니다.”
“무슨 말씀을. 그 대신 백악관에는 오랜 역사가 스며들어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말씀만이라도 그리해주시니 기분이 사는군요.”
진심으로 한 말이지만 듀이는 흔한 립서비스로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지으라고 명령한 신 총통관저는 크기로 볼 때 백악관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크다. 정말 크다. 과장 조금 보태서 복도에서 축구경기를 열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곳에서 살고 업무를 보는 내가 백악관은 아기자기하게 보일 거라고 듀이는 확신하는 눈치였다.
부정은 않겠다. 확실히 신 총통관저에 살다 보니 이젠 어딜 가나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그래도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하리라 여겼던 곳에 오게 되자 감회가 남달랐다. 스탈린의 초청으로 처음 크렘린 궁전에 들어섰을 때처럼.
자, 이제 체면 차릴 건 다 차렸으니 진솔한 어둠의 대화를 나누러 갈 차례군.
“베를린에서 이 먼 곳까지 오셨으니 빈손으로 가셔야 되겠습니까?”
“그래선 안 되겠지요. 아마?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우리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어떻겠습니까?”
“애초에 그럴 각오가 없었으면 초청에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크하핫. 듀이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곤 손바닥을 가볍게 쳐서 세계지도를 소환했다. 미국은 파란색으로, 독일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지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등은 미국보다 옅은 파란색이었고, 독일을 제외한 유럽 전체는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일단 유럽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북미도 딱히 논의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군요.”
“잘 아시는군요.”
애초에 유럽은 독일, 북미는 미국이 꽉 잡고 있으니 얘기할 건더기가 없다. 오세아니아도 비슷하고. 논쟁이 될 곳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도 딱히 논의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의외로 듀이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일단 들어나 볼까. “그럼, 아시아부터 시작하도록 하지요."
“좋습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국가는 역시 인도였다.
요즘 가장 뜨거운 곳.
“총통께선 인도를 어찌하실 생각이신지요??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마치 제가 인도를 영국처럼 지배하기라도 할 것처럼 들리는군요.”
“하하. 제가 설마 그런 뜻으로 말했겠습니까? 총통이라면 그런 짓을 벌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총통의 생각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인도는 다른 어느 나라의 것도 아닌 인도인들만의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만의 나라를 세우도록 해야지요.”
나는 앞에 놓인 진저에일을 들이켰다. 톡 쏘는 탄산 맛과 생강의 은은한 단맛이 일품이었다.
“인도가 친미 국가가 돼도 말입니까?”
듀이가 물었다. 그의 의도를 파악한 내가 되물었다.
“대통령께선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현재로선 낮지요.”
듀이는 고개를 저었다.
“전에 국무부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인도를 양분해서 독일과 미국이 나누어 지배하자고 말입니다.”
“아직 인도는 완전히 독립하지도 않았고 분열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분할을 생각하다니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인도는 인도인들의 나라지 독일이나 미국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듀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기 몫의 진저에일을 마셨다. 반쯤 녹은 얼음이 짤랑 소리를 내며 컵 밑바닥을 긁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말씀하시죠."
“감사합니다. 저희 미합중국은 인도를 독일에 양보할 의향이 있습니다. 단, 미합중국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말입니다.”
“위협이 되지 않는 선이라 하심은………… 저희가 인도를 발판 삼아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진출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듀이가 걱정하는 건 독립한 인도가 아니라 인도 뒤에 있는 독일이었다.
하기야 이제 막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가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을 거다. 진짜 걱정은 우리가 인도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진출하려는 것이겠지.
애당초 인도를 넘어 극동에까지 진출할 생각이 없지만, 미국인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저런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하다.
굳이 오해를 굳이 바로잡는 것보단 차라리 순순히 인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감사합니다. 얘기가 쉽게 풀리겠군요.”
일단 인도는 우리 몫으로 인정받았다. 어차피 나야 동남아와 오세아니아에는 관심이 없으니.
“총통께선 중국까지 독일의 우산 아래로 편입시킬 생각이신가요???
“아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국은 너무 크고, 인구도 많아 오히려 독일이 중국에 삼켜질지 모르니까요.”
“지금 농담하시는 거지요?"
그러자 듀이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농담이 아닙니다, 대통령. 지금 중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빈국이지만 언제까지고 지금의 위치에 머물러 있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제가 쓴 나의 투쟁에도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만, 중국은 꾸준히 성장을 반복해왔습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전에만 해도 중국의 총생산은 이탈리아, 일본을 뛰어넘고 프랑스에 필적했습니다.
만약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힘을 키운 중국이 일본을 역으로 공격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인데, 일본에 만주를 잃은 후에도 중국은 꾸준히 성장을 지속하여 일본을 바짝 추격했다.
1935년에는 일본과 중국의 제철량은 3000:1이었지만 중국은 불과 2년 만에 해당 격차를 150:1로 줄이는 데 성공했고 국민혁명군 역시 독일 군사고문단의 교육을 받으며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성장하고 있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1940년대 중반에 이르러선 중국은 일본과 완전히 동등한 입장까지 올라왔을 것이고 정말로 공수관계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물론 중국 내 부정부패 문제는 대단히 심각했고 중일전쟁으로 해당 문제는 더더욱 악화되어 허난 대기근 같은 최악의 참사를 일으키는 등 마냥 긍정적인 면만 있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잠재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당장 실제 역사만 보더라도 중국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어지간한 나라라면 하나만 터져도 나라가 망할 초대형 악재를 두 번이나 겪었음에도 끝끝내 일본을 추월하고 세계 제2위의 경제력을 보유한 초강대국으로 거듭났다. 심지어 여기선 공산당도 박멸되고 국민당이 온전히 중국 전역을 통일했으니, 성장이 더 빨라졌으면 빨라졌지 절대 덜하지 않을 터.
“그리고 생각해보십쇼. 중국은 독일과 친하지만, 미국과도 우호 관계에 있지 않습니까? 제가 장제스라면 미국과 독일 둘 중에 어느 한쪽을 고르기보단 둘 다 친하게 지내려 할 겁니다.”
장제스 개인이야 미국보다는 독일로 마음이 기울었을지 모르지만, 중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완전히 친독으로 기울 수도 없다.
독일은 미국만큼 중국에 각종 원조를 무상으로 퍼즐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나라가 아니거든.
그에 반해 미국은 자국민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고 이를 다른 나라에 무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지금 중국은 전쟁이 끝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아직도 국토가 만신창이인 데다 지방으로 가면 식량이 부족해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최소한 지원을 더 타 먹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더 친하게 지냈으면 지냈지 결코 중국이 미국을 멀리할 리가 없다.
내가 이 점을 주지시키자 듀이는 감탄한 듯 입을 벌렸다.
“그렇다면, 독일이 중국에 관해선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말로 봐도 무방하겠군요?”
“그렇지요?”
“저는 솔직히 독일이 대일전에 참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최소한 칭다오를 받아낼 줄 알았습니다.”
“4년 전에 죽은 카이저라면 틀림없이 그랬겠지요. 하지만 전 카이저와 다릅니다. 그리고 칭다오를 넘겨달라고 해서 장제스가 넘겨줄지도 의문일뿐더러 설령 칭다오를 차지한다고 해도 새로운 분쟁의 소지만 될 뿐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 죠.”
그런데 사실, 대일 선전포고 직후에 국방군 내부에서 키아이초우(Kiautschou)를 다시 받아오자는 의견이 나오긴 했었다.
독일이 중국을 도와준 게 얼마나 되는데 이 정도도 요구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독일에 합병하는 것도 아니고 홍콩과 마카오처럼 중국으로부터 ‘잠시’ 임대하는 것이니 중국도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실제로 키아이초우를 받아낸다면 극동과의 무역에 중요한 기지로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속도 박박 긁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긴 하다.
하지만 민족주의자인 장제스가 이걸 받아들일 리 만무할뿐더러 괜히 독중관계에 잡음이 생기는 일만 될 수 있기에 묵살했다.
땅따먹기하는 게 유행이던 제국주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과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앞으로도 같은 방법이 계속 통하리란 보장이 없다.
지금 독일에 필요한 건 식민지가 아니라 경제, 군사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동맹국들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정말 아무것도 요구할 게 없습니까?”
“당연하죠. 독일은 일본과 전쟁을 한 기간이 3주도 채 안 되지만 미국은 3년 가까이 일본과 싸워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일본 지배에 대해 배분을 요구하는 건 날강도나 다름없지요.”
애초에 내가 지분 좀 달라고 요구하면 바로 미쳐 날뛰었을 거잖아. 어차피 먹을 수도 없는 거, 애초에 그런 생각도 안 했다고 하는 게 이미지상으로 더 낫다.
예상대로 듀이는 내 대답에 만족한 모양인지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역시 총통은 멀리 내다보실 줄 아시는 분이시군요.”
"별말씀을."
뭐, 내가 전쟁밖에 모르는 프로이센 융커 나리들보다는 조금 멀리 볼 줄은 알지. 흠흠.
“참. 전범재판은 어떻게 하기로 하셨습니까?”
일본에 대해서 말이 나온 김에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하는 질문이라고 하자 듀이는 가감 없이 알려주었다. “전쟁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모두 처형될 겁니다. 그 밑에서 전쟁을 수행했던 자들도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한해서는 합당한 처벌을 받을 거고요.” “천황도 말입니까?”
“법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건 그렇죠. 왕족이라도 한낱 법 앞에서는 모두가 동등해져야지요.”
듀이의 말투에서 나는 히로히토 역시 사형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원 역사와 다르게 제대로 업보 청산을 받는 것이다.
하기야 독일이 망하지도, 소련이 급부상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지금도 극동군사재판에서는 매일같이 새로운 전쟁범죄들이 드러나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고 들었다.
난징 대학살, 바탄 죽음의 행진 같은 집단 학살부터 731부대의 생체실험, 치치시마 식인사건 같은 온갖 엽기적인 범죄들까지.
검사 출신으로 불의를 못 참는 성격으로 유명한 듀이는 결코 일본의 범죄행위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범죄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를 겁니다. 이 세상에 정의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중동은 이미 독일 입김이 강하게 부는 곳이라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유일하게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만이 추축국 세력과 조금 거리를 두려는 낌새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척을 지지는 않고, 미국 석유 회사들이 주로 맡던 자국의 유전 개발에 독일 회사를 참여시키는 등 일정 부분 타협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프랑스가 영국 식민지들을 노리고 전쟁을 걸어오긴 했지만 실패했고, 되려 자기네 식민지에서도 분란이 슬슬 일어나려는 조짐이 보이자 황급히 교전을 중지하고 퇴각했다.
독일은 아프리카에 가진 지분이 없고, 추축국인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은 자기네 식민지를 다스리는 데 급급한 터라 아프리카 문제도 쉽게 해결이 됐다.
독일이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을 앞세워 본격적인 아프리카 진출을 시도하지 않는 한, 듀이도 아프리카 문제로 독일과 충돌할 의사는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또 한 건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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