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152

Chapter 151

<창과 방패 (1) >


1942년 5월 29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독소전쟁 발발 당일부터 독일은 전시경제체제로 돌입한 상태였지만, 괴벨스 의 연설로 이제는 전 국민이 독일이 총력전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장품을 비롯한 사치품 생산은 공식적으로 중단되었고, 배급 쿠폰이 다시 지 급되기 시작했으며 징집 연령대인 18~35세의 모든 남성은 한 명도 빠짐없이 지역 사무소로 출두하여 의무적으로 신검을 받아야 했다.


나는 여군의 모집도 동시에 실시했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즉각 반대 의견들 이 튀어나왔지만,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성별의 차이는 있을 수 없다고 한마디 해주자 쏙 들어갔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공장에서 일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소? 국가가 위기 에 처했으니 전 국민이 하나로 뭉쳐야지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를 따질 겨를이 어디에 있소? 그리고 징병이 아니라 엄연히 지원자만 받아들이는 것이니, 국민 들의 원망을 살 일도 없소.”


소련은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여성들의 입대를 받아들였고 실제로 수십만 명 에 달하는 여자들이 군에 입대하여 포병, 전차병, 저격수, 전투기 조종사 등으로 전선 각지에서 활약했다.


대표적인 예시로 독일군 309명을 사살한 전설적인 저격수 류드밀라 파블리 첸코와 ‘밤의 마녀들(HouHble BeAbMbi)'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제46근위야간 폭격비행연대가 있다.


소련도 그랬는데 독일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지.


그래도 시대와 국민의 인식, 장군들의 꾸준한 반대를 고려하여 여군들을 보병 이나 공병, 기갑병 등의 최전선에서 굴러야 하는 전투병과에 배치하는 것은 피 하고 행정병, 취사병, 운전병, 위생병, 통신병, 대공포병 등 비교적 안전한 보직으 로만 배치하기로 합의를 봤다.


후방 및 비전투보직에 배치되는 여군들의 수만큼 최전선 및 전투보직에 배치 할 수 있는 병사들의 수가 늘어나는 셈이니 장군들도 찬성했다.


“하이드리히, 영국의 동향은 어떤가?"


“평소처럼 처칠의 주도하에 반독선전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국에 암약한 SD 요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영국 정부의 반독기조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의 반응은 정부와 조금 다릅니다.”


“그래?”


하이드리히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자신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를 내밀 었다.


“영국 정부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영국 전체 국민의 41%가 독일과 의 전쟁에 반대하고, 독일과 우호적으로 지내야 한다고 대답한 국민은 28%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처칠은 이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많은 영국 인이 일본과 전쟁 중인 상황에서 독일을 적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 다.”


영국 정부의 노골적인 견제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BUF는 꾸준히 활동 중이며, 영국 유대인대표위원회도 의미 없는 반독선전을 중단하라며 런던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반대파 시위대와 경찰의 공격으로 금방 해산되긴 했지만, 이렇듯 영국 내부의 반대여론은 결코 적지 않았다. 


"국내 여론이 이러니 제아무리 처칠이라고 해도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진 못할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하지만 상대는 처칠일세. 그놈은 보통의 상식선에서 생각 하면 안 되는 놈이야." 


실제로 영국 국민의 여론이 반으로 나뉜 것과 별개로 영국군의 수상한 움직임 은 계속 포착되고 있었다.


어제 영국군 정찰기와 구축함이 아이슬란드 코앞에 나타났다가 덴마크군의 경고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다가 경고사격이 시작되자 겨우 물러났고, 아시아 에서 격전을 벌어지는 가운데 지브롤터와 몰타에 배치된 병력의 수는 되려 늘었 다.


처칠이 독일과의 전쟁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쟁에 미친 징고이스트 같으니라고.....


"핼리팩스를 쫓아내고 기어코 총리 자리까지 꿰찬 놈이야. 근시일에 무슨 수 작을 부릴지 모르니 결코 방심해선 안 돼."


"명심하겠습니다."


영국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프랑스 해변 일대에는 방어선 축조가 한창이다.


대서양 방벽(Atlantikwall)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실제 독일이 만들고자


했던 그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길이 수천 km에 달하는 드넓은 서유럽 해안가 전체를 방어하는 방벽을 세우 려면 어마어마한 수의 인력과 막대한 분량의 물자가 필요하며 방벽을 다 지었다 고 해서 끝이 아닌 그 방벽에 들어갈 병력도 필요하다.


당연하지만 독일에는 그럴 자금도, 병력도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지켜야 할 곳이 서유럽만 있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나는 연합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큰 주요 구역에만 집중적으로 방어선 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웠다.


국방부에서 추려낸, 영국군의 예상 상륙지점은 총 세 곳이었다. 파드칼레, 노 르망디, 브르타뉴.


"브르타뉴는 명단 제일 끝자락에 위치해도 될 것 같은데."


"어째서입니까, 총통각하?"


브라우히치의 물음에 나는 프랑스 지도에서 파리를 가리켰다.


"적군이 프랑스에 상륙한다면 어느 도시를 가장 손에 넣고 싶어 하겠소? 두말 할 것도 없이 파리일 거요. 왜 그런지는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런데 브르타뉴는 다른 세 곳보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소. 파리에서 거 리가 먼 만큼 국방군의 증원도 느리지만, 그만큼 동쪽으로 진격하기도 곤란하 지."


오버로드 작전의 상륙지점으로 노르망디가 채택되기 전에 연합군은 다른 지 점에 비해 상륙하기 좋은 해안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브르타뉴를 후보지로 고려했지만, 상륙할 경우 보급선이 지나치게 길어지고 너무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내륙으로 진격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후보지에서 제외했다.


그렇게 브르타뉴는 우선순위에서 제일 뒤로 밀려났다.


남은 건 노르망디와 파드칼레.


"역시 파드랄레에 연합군이 상륙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육군최고사령부(Oberkommando des Heeres, OKH) 작전참모차장 프리 드리히 파울루스 대장이 발언했다.


"영국에서 가장 거리가 가까운 데다, 독일 국경과도 가까우니 파드칼레로 올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됩니다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브라우히치와 라이헤나우, 요들도 영국군의 상륙지점이 파드칼레가 될 것이 란 예측에 동의했다. 공군과 해군의 의견도 거의 다 비슷했다. 


파드칼레로 연합군이 올 것이라 굳게 믿었던 독일은 파드칼레에 엄청난 양의 물자와 장비, 병력을 배치해 완벽에 가까운 방어진지를 구축했지만, 정작 연합 군이 상륙한 곳은 파드칼레가 아닌 노르망디였다.


그렇게 독일은 파드칼레에 구축한 방어진지를 한 번도 써먹지 못하고 프랑스 에서 퇴각해야 했다.


단, 상륙하기 최적의 장소인 파드랄레 대신 여건이 파드랄레보다 좋지 않은 노르망디를 택하게 만들어 연합군의 상륙을 지연시킴과 동시에 더 큰 피해를 받 도록 유도했으니 독일군의 시도를 마냥 삽질로 치부할 수는 없다.


파드칼레를 요새화하지 않았더라면 연합군은 바로 파드칼레에 상륙했을 테 고, 독일군은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말았을 것이다.


진짜 삽질은 안 그래도 부족한 물자를 파드칼레에 몰빵하는 바람에 다른 구역 들의 방어가 상대적으로 취약해진 것이지, 파드칼레의 요새화는 반드시 필요했 다.


여러 논의 끝에 파드칼레가 1순위로 지정되었지만, 나는 노르망디에도 각별 히 주의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또 하나,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곳이 있소. 바로 디에프요."


"디에프?"


내가 지도에서 디에프를 찾아 지휘봉으로 가리키자, 장군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몰렸다.


노르망디와 파드칼레 사이에 자리한 디에프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예행연 습이라 할 수 있는 디에프 상륙작전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연합군은 노르망디나 칼레에 상륙하기 전에 디에프를 가 장 먼저 노릴 것이다.


위치만 보면 상륙하기에 노르망디보다 알맞은 곳이기도 하니.


대서양 방벽과 더불어 프랑스와 벨기에에는 V2 발사기지 건설도 한창 진행 중이다.


몇 개는 V2의 정식 양산이 시작되자마자 함께 건설을 시작해서 작년에 완성 했는데, 영국과 전쟁이 발발할 경우 작금의 V2 기지로는 영국에 큰 피해를 주는 게 어렵다고 판단되어 추가 건설을 지시했었다.


"오늘 새벽 프랑스령 지부티에 6척의 유보트가 도착했답니다."


"음, 좋소."


되니츠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되니츠는 내게 유보트들을 프랑스령 소말릴란드 로 파견할 것을 제안했다.


영국과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홍해와 아덴 만을 잇는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기뢰를 쫙 깔아버리면 영국의 지중해 인도양 루트는 봉쇄되고 만다.


이미 스페인과 크레타 섬의 유보트들도 여차할 경우 즉시 출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 


이들까지 나서서 지브롤터 해협과 수에즈 운하를 기뢰로 도배해버리면, 영국 지중해 함대를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물론, 영국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인도의 안전까지 뒤흔들 수 있다!


영국에 의해 고립된 이집트의 반영주의자들을 꼬드겨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유도한다면 더욱 금상첨화일 터.


물론 최고의 방안은 영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지만, 처칠의 노골적 인 반독정책이 계속되는 이상, 영국과의 전쟁은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미국은...... 잘 모르겠다. 루스벨트 정부는 처칠에게 동조하는 듯했지만, 여론 과 의회의 눈치를 보느라 노골적으로 독일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진 않고 있다.


오늘도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식량을 실은 화물선 4척이 브레머하펜에 무사히 도착했고,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 사는 여전히 독일 정부 및 기업들과 끈적한 관 계를 유지 중이다.


그 외에도 '조국' 독일을 위해 유럽으로 온 독일계 미국인 250여 명이 국방군 과 SS에 입대를 신청했다.


힘러의 말에 따르면, 이미 29명의 미국인 SS 대원이 LSSAH, 비킹 사단 소속 으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으며, 괴링도 8명의 미국인 조종사가 전투기 및 폭격 기, 수송기 조종사로서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인들 외에도 영국 및 영연방인들 중에서도 독일군에 소속되어 싸우고 이 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 프랑스에서 아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독 일에 남은 친구들로 영국인 12명, 캐나다인 9명, 호주인 8명, 남아공인 2명이 SS에서 보병, 운전병, 정비병으로 복무 중이다.


괴벨스는 이들에게 '자유세계의 수호를 위해 반공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십자군 병사들'이란 거창한 별명을 붙여주며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적극적으로 선전했다.


괴벨스의 선전이 미국과 영국에서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지 만, 적어도 독일과의 전쟁을 망설이는 대중에겐 나름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작은 기대를 걸고 있다.


참, 괴벨스의 선전부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이들이 또 하나 있었다.


"러시아 파시스트당 말이오. 박사가 보기에 이 친구들은 어떤 것 같소? 밥값 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


예브게니 케르세비치 병장은 152mm 유탄이 만들어낸 큼지막한 구덩이의 밑바닥에 쭈그려 앉아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아악!!"


그가 숨은 구덩이로 황급히 뛰어오던 병사가 정강이에 총알을 맞은 후 쓰러져 신음했다.


피가 줄줄 흐르는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구덩이로 기어가던 그 병사는 총알이 정수리를 관통하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76mm 주포에 불을 당기며 달려오던 KV-1이, 매복한 4호 전차가 발사한 포 탄을 맞고 정지했다.


화재나 폭발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전차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면장갑을 관통한 철갑탄에 전차병 전원이 몰살당한 것이 분명했다.


증가장갑을 덧대 중량이 49톤에 육박하는 KV-1E도 4호 전차의 39형 철갑탄 한발이면 그대로 강철의 관으로 전락했다.


수년간의 실전과 훈련으로 다져진 독일군 전차병들은 1km 거리에서도 소련 군 전차의 약점을 정확히 조준할 수 있었고, 그들이 주포를 격발할 때마다 포탄 은 어김없이 적에게 명중했다.


저 작은 마을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서 소련군은 벌써 300명이 넘는 보병들과 11대의 중전차를 잃었다.


그런데도 소련군은 아직까지 마을을 점령하지 못했다.


마을에 자리 잡은 독일군은 4호 전차 4대와 대전차포 소대의 지원을 받으며 소련군이 공격해오는 족족 그들을 격퇴했다.


"우와악!"


"시발 뭐야!?"


케르세비치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구덩이로 굴러떨어 졌다.


턱에 사마귀가 삐쭉 돋아난 케르세비치의 동기 블라디미르 나킨이었다.


"어? 나긴? 너 살아있었냐?"


케르세비치의 물음에 나킨은 벗겨진 철모를 다시 머리에 걸치며 대꾸했다.


"그러는 넌 여기 짱박혀 있었냐?"


"나도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안 됐거든?"


그때 독일군의 MG40이 불을 뿜었고 둘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납작 엎 드렸다.


예광탄 줄기가 구멍이 위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케르세비치는 침을 꿀꺽 삼 켰다.


저 망할 '전기톱'에 몇 명이나 되는 전우들이 당했는지 모른다.


독일군은 소련군이 MG40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 포하여 1분 만에 50명이 넘는 병사들을 사살했다.


중대장도, 소대장도, 행보관도, 역겨운 정치장교도 모두 MG40에 당해 간고 기가 되었다.


케르세비치는 몇 분 전에 자신이 본 광경이 계속해서 눈에 아른거렸다. 예광 탄 줄기가 닿자마자 사람의 팔과 다리가 토막 나는 광경이. 


차체만큼이나 거대한 포탑을 가진 KV-2가 달려오면서 육중한 152mm 주포 를 발사하자, 창가에 MG40이 거치된 벽돌집이 통째로 날아갔다.


덕분에 보병들을 괴롭히던 독일군의 탄막은 끊어졌지만, 겨우 기관총 하나를 제압하기 위해 152mm 유탄을 발사하는 것은 다소 낭비가 아닌가 싶었다.


사실 KV-2의 포수는 적 전차를 잡기 위해 포탄을 발사한 것이지만, 조준이 엉 망인 탓에 벽돌집 사이에 숨은 4호 전차는 무사했다.


4호 전차가 입은 피해는 폭발의 영향으로 큐폴라 해치가 날아가고 포탑과 차체 측면에 부착된 쉬르첸이 살짝 어긋난 게 전부였다. 


연기를 뚫고 앞으로 나온 4호 전차는 포탑을 돌려 거인을 조준했다.


전차장이 황급히 후진을 지시했지만, 4호 전차의 포수가 격발기를 눌러 75mm포탄을 발사했다.


KV-2는 완전히 유폭하여 차체와 포탑이 분리되었다.


거인을 해치운 전차는 도로 후진하여 사라졌다. 소련군의 공격은 중단되었고 전장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씨발, 저 좆같은 마을 하나를 차지하려고 몇 명이나 죽은 거야?"


케르세비치는 가래침을 뱉으며 자신들을 전장으로 내몬 모든 자를 저주했다.


자신이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 와중에도, 크렘린의 권력자들은 옆 구리에 여자를 끼고서 술이나 마시고 있을 것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포격 지원이라도 제대로 받았다면...." 


나킨이 뇌까렸다. 보병들이 돌격하기에 앞서 포격 지원을 담당하기로 한 포병 대는 독일군의 로켓 공격으로 보급부대와 함께 몰살당했다.


덕분에 케르세비치와 나킨은 독일군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마을을 향해 돌격 해야 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 실패에 당황한 소련군은 두 번에 걸쳐 재공격을 감행했 지만,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독일군의 전차와 대전차포는 76mm 주포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공격해와 전 차들을 밥솥마냥 터뜨렸다.


믿었던 중전차들까지 허무하게 당하자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찍었다.


그런데도 공격은 계속되어 마을 앞 들판에는 시체들이 한 무더기로 쌓였다. 목에 총을 맞은 시체, 포탄이 하체가 뭉그러진 시체, 기관총에 잘게 다져진 시 체....


“나중에 여기서 농사를 지으면 작물이 잘 자라겠어.”


“인간을 비료로 줘서 기른 작물이라, 존나게 잘 팔리겠네.”


둘은 차가운 농담을 나누며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나눠서 피웠다.


아군에게 돌아가려면 구덩이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적군이 눈을 부릅뜨고 전 장을 주시 중인 상황에서 구덩이 밖으로 나갔다간 총알이 몸에 박힐 게 뻔했다.


다시 아군이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아아, 들리는가?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시던 케르세비치는 확성기에서 나오는 게 분명한 러시아어를 듣고 고개를 반쯤 옆으로 들었다.


아군의 방송인가? 그런데 소리가 들린 쪽은 분명 독일군이 주둔한 마을 방향 이었다. 대체 뭐지?


-붉은 군대의 병사들은 들어라. 내 이름은 막심 칸잔스키. 그대들처럼 붉은 군 대의 병사였다가 지금은 전향하여 러시아의 해방을 위해 독일의 전우들과 협력 하고 있다.


자신을 막심 칸잔스키라고 밝힌 목소리의 주인은 소련군 병사들에게 소련 스 탈린 정권의 잔혹함과 그들을 전장으로 보낸 공산당 지도부의 무능에 대해 토로 하며, 무기를 내려놓고 독일군 쪽으로 넘어올 것을 권유했다.


자진해서 투항하면, 포로가 아닌 ‘전우’로 대접받게 될 것이라면서.


-그대들은 지금 속고 있다! 스탈린과 그 똘마니들은 그대들을 사지로 내몰고, 자신들은 후방에서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바로 그대들과 그대들 가족의 피와 땀이 만들어낸 과실을 먹으면서! 그대들의 부모, 형제자매들이 공장에서 1 2시간씩 일하며 묽은 수프와 거친 빵으로 연명할 때, 공산당원들은 캐비어와 보 드카, 여자를 즐기고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을 노예로 취급하는 '붉은 귀족들'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버릴 셈인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그리고 러시아 파시스트당에 들어오라. 그렇다면 독일은 그대들을 더 이상 적이 아닌 형제이자 전우로 대우해줄 것이다.


"..."


"....어떡하지?"


지치고 피로한 상태에서 같은 러시아인이 하는 선전방송을 듣자 케르세비치 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킨도 무척 고민이 되는 듯 입술을 물어뜯었다.


군에 남아 있어봤자 이름과 위치만 다른 전투에 계속 투입될 뿐이다.


툭하면 당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정치장교는 또 어떻고 전쟁이 끝날 때까 지 지옥 같은 전장에서 쉬지 않고 굴러질 것이라 생각하니 케르세비치는 힘이쭉 빠졌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신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소총도 입고 있는 군복도.


"항복하자"


"뭐? 항복?


"그래, 여기 계속 있어봤자 뒈질 때까지 개처럼 구를 뿐이야. 넌 그러고 싶어?"


마음을 정한 케르세비치는 훈련소에서 교관이 신체의 일부처럼 소중히 여기 라고 신신당부했던 SVT-40을 내던지고 구덩이에서 나왔다.


그리고 두 팔을 듣고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나도 같이 가자."


나킨도 총을 바닥에 두고 구덩이에서 나왔다. 둘은 독일군이 총을 쏘면 어쩌 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항복? 항복하는 거야? 러시아인?"


기관단총을 든 독일군 하사관이 어색한 러시아어로 말을 걸었다. 케르세비치 는 독일어를 몰라 고개만 끄덕거렸다.


"좋은 선택. 독일에 어서 와라. 러시아인들."


***


"물론입니다, 총통 각하. 러시아 파시스트당의 선전 덕에 전선에서 매일 수십 명의 투항병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소?"


러시아 파시스트당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던 괴벨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러시 아 파시스트당의 활약상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괴벨스의 말대로 러시아 파시스트당의 선전이 소련군의 투항에 큰 영향을 끼 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아군에게 투항하는 소련군의 수가 꾸준히 늘 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틀 전 동프로이센 전선에선 자그마치 정치장교가 소대를 이끌고 투 항해온 일이 있었다.


투항한 이유를 물어보니 '더 이상 이 가증스러운 체제를 위해 싸울 가치를 느 끼지 못해서'라고 말했다지.


전쟁이 터진 지 이제 겨우 4일이 지났는데 벌써부터 전선 각지에선 투항병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이놈들, 우리한테 공격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 엄연히 공격을 하는 입 장인데도 말이다.


"꼭 러우전쟁을 보는 거 같군. 이러다 나중에는 쿠데타까지 일어나는 게 아닌 가 모르겠어."


"러우전쟁이라면, 적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괴벨스는 내가 말한 러우전쟁을 적백내전 중에 있었던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 국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해한 듯했다.


"어..... 아무것도 아니오. 그냥 생각 없이 한 말이니까"


지금으로부터 80년 뒤에 일어난 일이라곤 차마 말 못하지.


그것도 세계 제2위라는 나라가, 군사력 22위인 나라를 침공했다가 역으로 본 토까지 털리고, 대통령 요리사였던 인간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는 더더욱.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조금은 쉬시는 편이 어떠신지."


"흥,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소."


말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 고, 나도 그 말에 장단을 맞춰 피곤한 척 연기를 했다. 


잠시 눈 좀 붙이고 오겠다고 말하고 회의실을 나가려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대령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총통각하 방금 중부집단군에서 온 보고입니다."



Chapter 152

<창과 방패 (2) >


'빌어먹을. 이게 대체…'


소련 서부전선군 총사령관 드미트리 파블로프 대장은 이를 악물었다. 


독일군의 방어선은 마치 철옹성과 같았다. 아무리 두들겨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철옹성.


보병이면 보병, 전차면 전차, 포격이면 포격, 심지어 항공지원까지 파블로프는 독일군의 방어선을 뚫기 위해 본인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 했지만, 독일군은 소련군이 퍼붓는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전쟁이 터지고 나흘 동안 파블로프의 서부전선군은 국경에서 겨우 몇 km만 진격했을 뿐, 그 이상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계획상으론 지금쯤 루블린을 장악하고 바르샤바로 향하고 있어야 했다.


망할 독일 놈들은 포격을 퍼부을라치면 귀신같이 대포병사격을 가해 붉은 포 병들의 머리 위로 포탄을 날려 보냈다. 


공군을 동원해 폭격하려 해도 제공권이 적에게 있는 이상, 아군기는 뜨자마자 적기에 격추당하기 십상이었다.


보급로마다 날아오는 로켓은 또 어떻고, 독일군이 불규칙적으로 날려대는 로 켓에 당한 트럭만 벌써 200대가 넘었다.


트럭과 함께 날아간 병사들, 물자와 탄약, 식량 그리고 기름까지 합치면 피해 는 더 커질 테고.


파블로프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맨들맨들한 자신 의 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제21전차사단의 피해는 어느 정도지?"


"현재 가동 가능한 전차가 전체 수의 4할밖에 남지 않았답니다. 사단 인원은 정원의 60%로 줄어들었습니다."


"제21 소총병군단이 지원을 요청해왔으니, 그쪽으로 투입하게. 수가 줄긴 했 어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알겠습니다. 총사령관 동지"


정원의 30%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면 전멸로 간주하는 서구권에서 제21 전 차사단은 이미 전멸 판정을 받고 전장을 이탈해 후방에서 재편성받아야 하지만, 정원의 70%가 전투 불능이어야 전멸로 간주하는 소련식 계산에 따르면 제21 전 차사단은 아직 전투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21전차사단의 장병들은 전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 모두가 폴 란드의 흙이 되기 전까지.


“총사령관 동지, 총참모부에서 전화가....”


부관의 말에 파블로프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했다. 그는 몸을 사시나무 처럼 떨면서 전화를 받았다.


“드미트리 파블로프 대장입니다.”


-파블로프 동무? 나요.


“....참모총장 동지.”


-아직도 독일군의 방어선을 뚫지 못했소?


“송구합니다, 동지.”


주코프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파블로프는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방금 모스크바에서 연락이 왔소. 언제쯤 루블린을 함락시킬 수 있느냐고. 이 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소. 최소한의 성과라도 내지 않으면, 그땐 동무 나 나나 끝장이오. 알아들었소?


꿀꺽.


“물론입니다, 동지. 하지만 적군이-”


“비상! 공습!”


파블로프가 주코프의 말에 대답하려는 찰나 공습경보가 울렸다.


“총사령관 동지! 피하셔야 합니다!”


파블로프가 참모들의 손에 이끌려 방공호로 들어갔을 때, Ju88이 투하한 폭 탄이 주둔지로 떨어졌다.


대공포들이 서둘러 불을 뿜었지만, 한 줌 남짓한 대공포로 루프트바페의 공습 을 막을 수 없었다.


독일군 폭격기들이 투하한 폭탄이 터지는 굉음과 진동을 느끼며 파블로프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제기랄, 우리 공군은 어디서 뭘 하는 건가?”


파블로프는 폭탄을 퍼붓는 독일 공군보다도 소련 공군에 더 큰 분노와 배신감 을 느꼈다.


제공권을 장악해 육군의 진격을 도와야 할 소련 공군은 독일기가 떴다 하면 허겁지겁 도망치기 바빴다.


심지어 파블로프는 Bf109 1대에 미그기 8대가 도망치는 광경을 본 적도 있 었다.


저따위 겁쟁이들만 믿고 싸워야 한다니.... 파블로프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독일에서 수천 km나 떨어진 바쿠가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아 유전이 파괴되 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나도 황당한 나머지 오보가 아닌지 의심했을 정도 다.


불행히도 그가 들은 소식은 오보가 아닌 사실이었고, 파블로프의 부하들까지 한목소리로 무능한 공군을 욕해댔다.


바쿠 공습의 책임을 물어 스탈린은 지가레프를 해임한 후 볼가 군관구 공군 사령관을 맡고 있던 블라디미르 수데츠를 새로운 공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지 만, 개전 초기부터 막대한 피해를 본 소련 공군은 독일 공군과 호각으로 싸울 능 력과 여건이 되지 않았다.


공군이 독일군으로부터 제공권을 빼앗아 오지 않는 한, 붉은 군대는 단 한 발 자국도 진격할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파블로프는 공습이 끝나기만 기다려야 했다. 분노와 근심으로 속이 쓰렸다.


“그 망할 놈들 때문에 이게 뭔 지랄이냐고!”


***


육군의 원망과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소련 공군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중 이었다.


단지, 그들의 노력과 투혼에 비해 적이 아득하게 강력할 뿐. 


"3시 방향에 적기다!"


"씨발!"


육군의 지원 요청을 받고 출격한 IL-2 편대는 독일 공군의 Bf109 편대와 마주 치자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쳤다.


Bf109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호랑이마냥 명렬한 속도로 소련기들에 달려들 었다.


실제 역사에서 IL-2는 독일군, 특히 육군으로부터 흑사병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었다.


베레진 UBT 중기관총, 23mm 기관포에 RS-82 로켓과 PTAB 대전차폭탄으 로 무장한 IL-2는 날아다니는 T-34라 불리며 독일 기갑부대에 가장 큰 위협으로 군림했다.


많은 독일군 전차병들이 T-34보다 IL-2를 더 두려워했을 정도로 IL-2는 전장 에서 공포의 화신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무겁고 속도가 느린 지상공격기인 IL-2는 전투기들의 공격에 상대적 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지도부의 무능으로 유일한 방어수단 인 후방좌석이 사라지면서 IL-2 조종사들에겐 본격적인 지옥문이 열리고 말았 다.


독일 조종사들은 IL-2보다 우수한 Bf109의 속력과 선회능력을 이용해 IL-2 의 후방을 잡아서 공격을 가했다.


장갑과 무장을 덕지덕지 발라 속도가 느렸던 IL-2는 금방 후방을 Bf109에 내 줘야 했고, Bf109가 쏘아대는 기관포를 맞고 하나둘씩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도망치는 꼴 좀 보라지”


"저 병신새끼들, 속도도 느린 놈들이 후방기총도 없는 게 말이 돼?"


독일군 조종사들은 추락하는 적기가 내뿜는 연기를 보며 적들의 무능을 실컷 비웃었다.


제공권을 독일 공군이 꽉 잡고 놔주지 않은 덕분에 지상의 육군은 적과 교전 하기 한층 더 수월해졌다.


독일 제9군 사령관 발터 모델 상급대장은 지시봉을 든 채 여유로운 얼굴로 1:25000짜리 전술지도를 응시했다.


그가 지시를 내릴 때마다 젊은 대위 2명이 말판을 옮기고, 점선을 지우거나 새로 그리며 모델의 명령을 지도판에 재현해냈다. 


이전부터 국방군 내에서 유능한 장교로 이름이 알려진 모델은 총통 히틀러의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각별한 편애와 신임을 받아 동기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 로 진급하여 상급대장의 직위에 올랐다.


총통은 그를 중부집단군 소속 제9군 사령관으로 배치했고, 모델은 자신을 신 임하는 총통의 기대에 보답하고 조국 독일을 수호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작전을 짜고, 지휘에 몰두했다.


그가 보기에 소련군은 덩치만 크지 전술과 전략 모든 면에서는 어리숙한 군대 였다.


꼭 12살짜리 애 같다고 할까. 몸집은 성인 남성만 한 데, 사고는 12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어린애.


소련군은 자신들이 보유한 화력을 있는 대로 투사하며 보병과 전차를 동원해 돌파구를 내려고 했지만, 공격을 시도하는 족족 격퇴당했다. 




"병사들만 불쌍하군. 저런 돌대가리들 밑에서 좆뺑이를 쳐야 하니. 나였으면 자살했다."


"하하하하!"


"적의 화력이 집중된 곳이 어디지?"


가벼운 농담으로 부하들의 폭소를 이끌어낸 모델은 소련군의 포병 화력이 집 중된 곳을 찾았다. 


곧 어느 중령이 그의 질문에 대답하며, 검지로 지도를 가리켰다.


“바로 여기, 41기갑군단 소속 제10, 11, 18기갑사단 구역입니다.”


모델은 돋보기로 3개 기갑사단이 맡은 구역의 지형지물을 살폈다.


“각 사단의 피해는?"


“10기갑사단과 18기갑사단은 현재까지 눈에 두드러지는 피해가 없습니다. 하지만 11기갑사단은 적의 중포 공격을 집중적으로 당하는 바람에 피해가 제법 큽니다. 사단장이 부상을 입고 후송되어 현재 부사단장이 지휘를 맡고 있으며 사단 인원의 피해와 남은 정수는-"


“음, 음."


필요한 조건들을 확인한 모델은 잽싸게 계산을 마치고 지시를 내렸다.


예비대로 빼둔 12기갑사단을 투입하고, 군단직할 포병여단에게 연락해 지원 포격을 개시하라.


지시를 받은 장교가 41기갑군단 포병여단에 무전을 보내는 동안 모델은 공군 에서 연락장교로 파견나온 중령에게 다음 지시를 내렸다.


슈투카들도 출격시켜서 버릇없는 러시아 야만인들에게 혼쭐을 내주라고.


소련군이 공격해오면, 이를 맞받아치며 적들에게 더 큰 화력을 쏟아붓는다! 전쟁 발발 나흘 만에 모델은 소련군을 어떻게 조련해야 하는지 서서히 감을 잡 아가고 있었다.


"각하, 무선 감청에 따르면 소련군 제3군 예하 제4소총병군단이 연료와 탄약 부족으로 지원을 요청했답니다. 적의 보급로에 후방 보급기지에 대한 공습을 당 장 실시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허가하네.”


“제267보병사단과 인근의 제56차량화보병사단으로부터 지원 요청이 들어 왔습니다.”


“267사단은 모르겠는데 56사단은 어제 지원을 요청해서 증원을 받아가지 않 았나? 그런데 벌써 지원이라고? 다시 확인해보게.”


“확인했습니다. 적의 추가 공격이 예상되는 바 병력과 전차의 추가 지원이 필 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안 돼. 엄살 부리지 말고 당분간은 지금 있는 전력으로 버티라고 해.”


“아군 정찰조로부터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연대급 규모의 소련군 기갑부대와 보급부대가 A-8에서 B-2 구역으로 이동 중.”


"그놈들이 방금 말한 22전차사단 지원부대인 것 같군. V1으로 날려버리라고 해."


전방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보고에도 모델은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명령을 내리며 증원 과 교대, 포격과 공습 여부를 결정했다.


모델의 부하들은 상관의 지시를 각 군단, 사단으로 전달하며 모델의 발 빠르 고 정확한 판단에 감탄했다.


그는 부하들의 경외에 찬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절대 자만하지 않고 눈 앞에 주어진 상황에 충실했다.


“제31기갑사단장인가? 나 모델이야. 그래, 알고 있어서 다행이군. 전차가 부 족하다고 지원을 요청했던데, 왜 그런지 이유나 들을 수 있겠나?”


“아아, 그랬나? 내가 잠시 착각을 한 것 같군. 알겠네, 그럼 수고하게.”


“이 병신 같은 새끼. 네놈이 저 소련 놈들이랑 다를 게 뭐야? 그러고도 국방군 장군이라고? 2시간 후에 다시 전화하지. 그때까지 해결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잘 난 장군 직함을 유지하고 싶으면.”


시시콜콜한 요소 하나조차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직접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 리는 성격인 모델은 자신의 부하들 만큼이나 휘하 부대에 자주 연락하여 직접 상황을 청취하고 해답을 내놓았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다한 자들에겐 칭찬을, 그렇지 못한 이들에겐 듣는 이조 차 살벌해질 정도로 혹독한 질책을 퍼부었다.


물 만난 고기마냥 지휘에 전념하는 모델을 보며 그의 부하들은 과연 총통이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동시에 그들의 상관이라면 조만간 중부집단군 사령관을 맡은 보크 원수를 대 신해 중부집단군을 지휘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뭣들 꾸물거리고 있나? 하루는 24시간이라고. 벌써 15시간이나 지났단 말 일세.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예!”


***


보크가 내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는 별 내용이 없었다. 소련군을 얼마나 섬멸 했고 몇 대의 전차와 몇 대의 항공기를 격추시켰으며, 포로를 얼마나 잡았다는 말에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보고서의 맨 끝줄에는 내가 아는 한 사람의 활약상과 평가에 대한 글 이 적혀 있었다.


발터 모델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제9군이 중부집단군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라.


“역시 모델이야. 믿고 쓰는 이유가 있다니까.”


전시가 아닌 평시에 모델을 상급대장에 임명하자 이번에도 진급이 너무 빠르 다. 뭘 믿고 제9군 총사령관이라는 큰 직위를 맡기냐는 말이 국방군 내부에서 나왔었다.


당연히 나는 그 말들을 전부 무시하고 모델의 진급과 9군 사령관직 임명을 감 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렇다.


이렇듯 내가 콕 집어서 승진시킨 이들이 행동으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입증 해내자, 빈말들은 쏙 들어가고 인재를 발탁한 나의 탁월한 식견에 대한 낯 뜨거 운 찬사가 이어졌다.


앞으론 그냥 좀 믿어라, 제발. 지금까지 내가 니들 실망시킨 적이 있냐? 없잖 아.


"조만간 그를 베를린으로 불러서 백엽기사십자장을 걸어줘야겠군. 다른 보고 가 없으면 이만 들어가 보겠네."


"예, 총통각하 편히 쉬십쇼"


성인 5명이 나란히 누워도 자리가 남을 침대에 몸을 뉘자 졸음이 밀려왔다.


전시라 그런지, 밤새는 일이 많아지면서 몸에 피로가 축적되는 게 느껴졌다. 


전황이 순조로우니, 당분간은 평소처럼 자는 게 좋을 것 같다. 


주치의 하세 박사도 늦게 자는 건 몸에 안 좋으니 최소 12시 전에는 자라고 신 신당부하기도 했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


1942년 5월 30일


소련 민스크 소련군 총사령부


"후우.”


최근 들어 주코프는 부쩍 한숨 쉬는 일이 많아졌다.


5일 만에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몇 개가 더 늘었고, 눈은 충혈되어 흡혈귀마 냥 붉은색으로 변했다.


티모셴코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어깨에는 천왕성 작전과 소련군, 나아 가 소련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매일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어깨에 실린 짐의 무게를 느끼며 기도하는 마음으


로 지휘에 임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지도에 표시된 붉은 선으로 앞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다.


전선에서 쏟아지는 보고들은 하나같이 절망적이었다.


어느 부대가 괴멸되었고, 손실이 얼마나 되며, 남은 인원은 얼마밖에 되지 않 는다 등등.


전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보고를 받으며 주코프는 매번 지친 심정으로 예비대의 투입을 지시했다.


'되는 일이 없어’


지금 이 속도로 베를린까지 닿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10년? 100년? 


천 년이 걸려도 베를린은커녕 오데르 강에도 못 닿겠지. 


주코프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천왕성 작전의 최종목표는 베를린을 점령하고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긴 하나, 누구도 소련군이 베를린까지 닿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천왕성 작전의 수립을 지시한 스탈린조차도


주코프와 티모셴코는 기적적으로 일이 잘 풀려 붉은 군대가 진격을 거듭하고, 독일이 백기를 든다고 해도 포젠이나 브레슬라우까지가 한계라고 봤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조차 과한 목표가 아니었을지. 지금 상태로는 바르샤바 와 쾨니히스베르크를 점령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니 말이다.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드넓은 동부전선에서 주코프는 독일군의 취약점이 분 명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는 취약점은 고사하고 독일군의 방어선이 흠잡을 구석 하 나 없이 단단하다는 것만 확인했다.


그토록 넓은 전선에서 약점이 한 군데도 없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 가? 


"괜히 그 히틀러가 직접 뽑은 인재가 아니군. 만슈타인이란 자는 적이지만 정 말 대단한 친구 같네."


티모셴코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동부전선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독일의 원수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라는 남 자로, 히틀러가 직접 지금의 자리에 임명한 자였다.


그가 세운 전략을 히틀러가 채택하여 독일이 프랑스를 정복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 그와 싸워보니 그 말이 결코 한 치의 과장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사실이 라는 것을, 그리고 왜 히틀러가 다른 수많은 후보를 제치고 그를 동부전선 총사 령관이라는 자리에 앉혔는지 이해가 갔다.


그것도 아주 뼈저리게.


“국방인민위원 동지.”


"무슨 일인가?"


"서기장 동지의 전화십니다."


스탈린이 전화를 걸어왔다는 말에 주코프와 티모셴코는 서로 마주 보았다. 


진격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질책하려고 전화를 한 것일까? 티모셴코는 무거운 얼굴로 일어섰다.


"실례하겠네."


5분 후 티모센코가 돌아왔다.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주코프는 그가 스탈 린의 질책을 받았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티모셴코가 들은 것은 질책이나 조롱이 아니었다.


"서기장 동지께선 핀란드를 공격하실 계획이네."


Chapter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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