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of Conflict 1
<분쟁의 세계 (1)>
이탈리아에게 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8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탈리아의 사정은 그리 좋아지지 못했다.
패전으로 이탈리아가 물게 된 막대한 배상금은 이탈리아 경제를 악화시켰고 나라를 망친 왕정과 국가 파시스트당을 향한 원성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잃었지만, 파시스트당의 권력은 변함이 없었고 이탈리아는 여전히 독재국가로 남아있었다.
“개같은 파시스트 놈들. 전쟁에서 진 주제에 아직도 거들먹거리고 다니기는”
“저놈 저놈 잡아!"
“제, 제가 뭐 때문에 잡혀 온 겁니까? 전 맹세코 어떤 범죄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일주일 전 네가 직장에서 국왕이 양심이 있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말한 것을 네 동료들이 다 들었다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우리가 호구로 보이냐?"
“국왕 폐하가 네 친구야? 이 새끼야?"
국왕과 파시스트당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금지였고, 이를 어기는 이들은 어김없이 경찰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전 억울합니다!"
“히틀러를 욕한 게 죄라고요? 그자가 이탈리아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잖습니까?"
“시끄러워, 정부 방침을 어겼으니 벌은 받아야지.”
“그러게 누가 너한테 히틀러 욕하라고 시키든?”
심지어 독일에 대하여 비판적인 언사를 하는 것 또한 금지되었다. 독일이 유럽을 통일한 뒤, 이탈리아는 24시간 내내 독일 눈치를 살폈다.
히틀러의 심기가 뒤틀리는 순간, 로마가 불바다가 되고 독일 전차들이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 영토로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라는 불안에 이탈리아는 바짝 엎드리는 것을 선택했다. “저 개새끼들!"
“나라를 말아먹은 놈들이 반성은커녕 아직도 고개를 쳐들고 다니다니... 씨발.”
“무솔리니만 문제가 아니라 국왕도, 그 졸개 놈들도 다 똑같은 놈들이야! 더러운 식충이들 같으니라고!"
“언제는 독일 놈들을 욕하더니 이제 와서는 놈들의 창녀 노릇이나 하는 꼴이라니. 배알도 없는 개병신 새끼들.”
“동지들,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소?"
“이제 우리도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허나 이럴수록 국왕과 파시스트당을 향한 이탈리아인들의 반감은 더욱 커져만 갈 뿐이었다.
패전으로 파시스트당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그간 파시스트당의 눈을 피해 지하로 숨어들었던 반파시즘, 공산당이 서서히 활동을 개시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눈에 불을 켜고 반정부 위험분자들을 색출해냈지만, 소용없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정부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이에 대한 반발 역시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오. 더 이상 저 무능한 국왕과 부패한 파시스트들에게 이탈리아를 맡길 수 없소."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 당수 알치데 데 가스페리가 말하자 동석한 사회당, 공산당, 자유당 인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모두 각자가 지향하는 노선은 제각각으로 서로 간의 사이가 가까운 편은 아니었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통된 의식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였다.
더 이상 국왕과 파시스트당이 이탈리아를 통치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저들 손에 이탈리아를 맡겼다가는, 이 나라는 영원히 독재의 그늘 아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역사에서 이탈리아는 전쟁에서 패했지만, 전후 마셜 플랜으로 미국의 원조를 받으며 경제가 서서히 되살아났다.
하지만 여기서는 마셜 플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미국의 원조 역시 없는 일이 되면서 이탈리아의 경제는 나날이 악화되기만 했다.
독일에 낼 배상금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세금은 하루가 멀다고 오르기 바빴고, 이로 인해 물가 역시 천정부지로 올랐으며 그와 반대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탈리아에 희망을 품지 못한 젊은이들은 새로운 미래를 찾아 부유한 미국이나 남미로 향했다. 그곳에서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품고서. 경제는 엉망이고 이탈리아를 등지는 청년들이 늘고만 있는데 국왕과 파시스트당은 제 자리 하나 건사하는데 바빠 국민의 어려움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개혁해야 할 때,
“비단 국왕만 문제가 아니라 왕정 자체를 없애버려야 하오. 국왕만 교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오. 이미 이탈리아 국민은 왕정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잃은 지 오래요.”
“동감합니다.”
가스페리의 말에 이탈리아 공산당 당수 팔미로 톨리아티는 박수를 치며 지지를 보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파시스트당 치하의 이탈리아에서 다른 정당들보다 더욱 심한 탄압을 받았지만, 톨리아티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과 뜻이 맞는 동지들을 모아 반파시즘 투쟁을 지속해왔다.
패전으로 국왕과 파시스트당의 인기가 수직 낙하하면서 공산당을 지지하는 여론은 올라갔고, 공산당에 가입하는 이들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독소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소련이 저지른 만행들-홀로도모르, 굴라그, 대숙청, 카틴 학살을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공산당을 향한 세계인들의 시선은 크게 나빠진 것을 감안하면 가히 놀랄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왕정 폐지에 대한 열망이 높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오.”
이탈리아 민주사회당의 이바노에 보노미가 손을 들어 발언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왕정에 대한 지지 역시 결코 적지 않소이다. 왕정 폐지에는 나 역시 공감하지만, 왕정 폐지를 주장했다가는 왕정을 지지하는 남부에서 강한 반발이 터져 나올 수 있소. 이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사실상 왕정 폐지에 반대하는 보노미의 말에 톨리아티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지만, 대다수는 보노미의 말에 공감했다.
전직 총리이기도 한 보노미는 회의의 참석자 중 가장 연장자였고, 동시에 정부의 일원이자 우두머리로 나라를 이끌어본 경험이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현실적으로 생각할 줄 알았다.
왕정 폐지를 원하는 여론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 특히 남부에서 국왕과 왕정을 향한 지지는 높은 수준이다.
왕정 폐지를 거론할 경우 남부는 이에 반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이탈리아 전역에서 내전이 터질 위험도 있다. 나라를 개혁하기 위해 거동한 자신들이 내전을 일으킨다니.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나라를 망친 가장 큰 원흉인 왕정을 그대로 둬서야 개혁이 되겠습니까? 나라를 바꿀 수 있냐는 말이오.” “진정하시오."
흥분한 톨리아티를 가스페리가 만류했다. 보노미의 말은 계속되었다.
“물론 나 역시 왕정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오. 다만 왕정 자체는 놔두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은 회수해서 국민에게 돌려줘야겠지.”
왕정은 존속시키되 왕정이 가진 권한은 모두 회수하여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얼굴마담 격으로만 놔둔다.
이탈리아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할 수 없으며,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행위 역시 일절 금지한다.
그렇게만 하면 왕정 자체는 유지되니 왕정을 지지하는 남부의 공감도 얻을 수 있고 이탈리아도 개혁할 수 있다. 이것이 보노미가 꿈꾸는 이상적인 이탈리아의 모습이었다.
왕정을 폐지하고 미국처럼 국민이 직접 국가원수를 뽑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무리니, 모두가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국가형태에 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했다.
“뜻은 좋습니다. 하지만 왕정을 그대로 둬서야 과연 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까요? 왕정은 이탈리아에 있어 몸에 자라난 종양과도 같습니다. 왕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종양을 모두 제거하면 아프니까 종양 일부만 잘라낸다는 소리와 같습니다. 그래서야 진정 한 개혁이라 할 수 없단 말이오!"
“그 또한 옳은 말씀이오. 허나 현실적으로 국왕 지지파들을 설득할 방법이 있소? 왕정이 없으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 왕정이 없어도 나라가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어떻게 설득시키냐는 말이오. 우리, 현실적으로 생각합시다.” “이건 어떻겠습니까?"
언쟁이 격해질 조짐이 보이자 가스페리가 끼어들었다.
“혁명을 일으킬 때 왕정 자체는 그대로 두고 파시스트당만 몰아내도록 선동하는 겁니다. 이 경우 왕정은 유지되니 남부의 지지도 받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3년이나 5년 뒤에 왕정 폐지를 두고 투표를 하는 겁니다. 국민에게 왕정을 놔둬야 할지 아 니면 없애야 할지 직접 묻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왕정 폐지 수가 더 많으면 왕정을 폐지하겠다………… 이 말이오?"
“그렇습니다.”
가스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왕정은 그대로 두고 파시스트당만 몰아낸 다음, 시간이 조금 지나서 국민들에게 왕정 유지냐 폐지냐를 선택하게 한다.
겉만 봐선 왕정 지지자들조차도 찬성하지 않을 수 없는 가스페리의 방안에 보노미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게 얘기하자면 왕정 유지를 국민에게 맡기겠다는 소리지만, 실제로는 혁명에 왕당파의 지지를 이용하고 혁명이 끝난 후에는 왕당파를 팽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어차피 대다수 이탈리아인은 왕정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혁명에는 왕당파의 지지도 필요하지만, 혁명이 끝나고 권력 분배가 끝난 후에는 왕당파가 필요하지 않으니 투표를 빌미로 왕정을 합법적으로 폐지해버리면 왕당파들도 거세게 반발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들이 반대해봤자 어떻게 할 건가? 이미 권력은 우리 손안에 있을 텐데.
톨리아티는 여전히 불만이 있는 얼굴이었지만, 그조차도 어떻게 하면 왕당파의 지지를 억누를 것이냐는 물음에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그 또한 가스페리가 내놓은 방안에 찬성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정해졌군요.”
“우리, 이탈리아를 위해 힘을 뭉칩시다.”
“뭐 좋습니다. 아무튼, 혁명을 성공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거니까요.”
***
나라가 혼란스러운 건 이탈리아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리스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유고슬라비아와 손잡고 영토를 넓혀보려다가 역으로 영토가 대폭 축소된 그리스 또한 패전의 책임을 두고 여러 혼란이 뒤따랐다.
“이게 다 국왕 때문이야!”
“개소리! 그게 왜 국왕 폐하의 잘못이란 것이냐!”
“전쟁을 승인한 것도 다 국왕 놈 아니냐! 그놈만 아니었어도 나라가 이 꼴이 됐겠냐고!”
“이 빨갱이 새끼가!"
이탈리아처럼 그리스도 왕실에 패전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실권은 별로 없지만, 전쟁을 승인했으니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국왕 요르요스 2세는 이미 1년 전에 죽었고 동생 파블로스가 국왕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왕정에 대한 반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왕가에 대해 강한 반감을 지닌 공화파와 공산당은 이때다 싶어 세력확장에 열중했고, 곧 그리스는 끓어오르는 가마솥처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를 꿈꾸는 공화파와 소련처럼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공산당은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지만, 왕정 폐지라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서로 협력했다. 그리스 정부 또한 이를 모르지 않아 적극적으로 탄압했지만 그럴수록 공화파와 공산당의 인기만 커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그야말로 혼란의 연속.
남유럽은 불이 붙은 도화선이나 다름없었다.
불이 붙었으니 남은 건 폭탄이 터지는 일뿐이었다.
*****
1948년 5월 31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말세로군, 말세야. 피 흘린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서로 치고받고 싸울 준비라니.”
책상에 올라온 SD와 아프베어의 보고서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였다.
조만간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선 일이 터진다. 아주 큰 일이.
시위에서 끝날 가능성은 없다. 일이 터진다면 정부든, 공산당이든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들 때까지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현 정부 측이 이긴다면 상관없겠지만, 공산당이 이기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진다.
상식적으로 빨갱이들이 우리랑 친하게 지내겠냐고. 빨갱이들이 입이 닳도록 떠들어대는 ‘사상의 조국' 소련을 박살 낸 우리와 친하게 지내려 하겠냐고.
당장은 잠잠할지 몰라도 100% 뒤로는 이상한 수작질이나 하겠지.
기존 정부가 엎어지고 신(新)정부가 들어서는 순간, 독일의 개입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군요.”
“그러게나 말이오. 이제 모처럼 평화로운 시기가 왔으니 두 다리 쭉 뻗고 자보려고 했건만...... 에잉!”
말은 이래도 그다지 걱정되는 일은 아니다. 단지 조금 귀찮을 뿐이지.
강대국 중 말석인 이탈리아와 애초에 강대국 축에도 끼지 못하는 그리스인데 이놈들이 뭐라고 내가 떨겠어?
“그런데 원수는 어쩐 일로 오셨소?"
“전에 보고드린 신형 전차의 목업(Mock-up)이 나왔습니다.”
“오, 벌써?"
전차병 복장의 중위 2명이 흰 천이 씌워진 모형을 카트에 싣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천을 벗기자 그 안에 감춰진 신형 전차의 모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파르트 전차.
패전 후 독일(당시엔 서독)이 최초로 만든 자국산 전차이자 냉전의 최전선에서 서유럽을 수호한 명품 MBT.
역사에서 레오파르트 1이 생산된 시기가 1965년이니 거의 17년 일찍 세상에 나온 것이다.
“어떻습니까, 총통 각하?"
“아주 만족스럽소. 특히 이 디자인!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요, 하하핫!”
“기억 속의 모습…………? 아, 전에 보여드린 설계도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아, 아. 그렇소. 음음. 아무튼, 잘 만들었구만.”
지금까지의 독일 전차들은 엔진과 변속기를 따로 탑재해야 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엔진과 변속기를 합친 파워팩이 개발되자 구데리안은 곧장 파워팩을 탑재한 신형 전차 개발에 들어갔다.
처음 그가 내놓은 전차는 40t 중량의 중형전차였다. 미래의 전장에선 핵무기가 난무할 것이 분명하니 전차의 방호력보다는 방호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기동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게 구데리안의 설명이었다.
구데리안의 예상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의 주장에는 큰 결점이 있었다. 첫째, 미래의 전장에서 핵이 사용된 적은 없었다.
애당초 핵을 쓴다는 것 자체가 다 함께 죽어보자는 소리인데, 그땐 어떤 승리도 무의미하다. 세상이 망했는데 전투에서 이겨봤자 뭐해?
둘째, 전차의 기동성도 중요하지만, 방호력 역시 중요하다는 것은 훗날 무수한 실전으로 입증이 됐다.
실제 역사에서도 레오파르트 1은 기동성에 너무 중점을 둔 나머지 방호력이 문제가 되어 이후 부족한 방호력을 보강하기 위해 이런저런 개량이 가해졌다.
기동성이 좋으면 뭐하냐. IFV(Infantry Fighting Vehicle, 보병전투차)의 기관포에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모름지기 전차는 전차다워야 하는 법. 정면에서 IFV한테도 간당간당한 전차 따윈 내가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구데리안에게 장갑을 조금 더 늘릴 것을 지시했다.
그리하여 최초 중량 40t이었던 레오파르트는 44t까지 중량이 늘어났다. 중량이 늘어난 만큼 기동성이 조금은 떨어졌지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고, 생존력도 올라갔으니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최소한 기관포 정도는 정면에서 완전히 막아낼 수 있겠지. 지금은 1948년이니, 85mm와 90mm도 막을 수 있을 테고.
참. 듣자 하니 미국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최근 중전차만 주구장창 만들어내는 중이라고 한다. 개중에는 중량만 무려 70t이 넘어가는 놈도 있다던데.
장갑을 덕지덕지 처발랐으니 방호력 하나는 보장하겠지만, 기동성과 연비는 엉망일 터.
아무리 돈이 남아도는 천조국이라지만, 이걸 다 감당할 수 있으려나...?
어느 한쪽은 나라에서 내전이 터질락 말락하고, 어느 한쪽은 원 역사 나치가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는 중이고.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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