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theless, The World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4) >
1958년은 인류 역사에 한 획울 그은 해가 되었다.
1월, 특일의 핵전력에 전전긍긍하던 미국은 태평양 마설 제도에서 행한 수차례의 실힘 끝에 역사상 두 번째로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수소폭탄 개발로 미국 전역은 들썩거렸다. 신문사마다 수소폭탄 실험 성공 소식을 보도했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환호했다.
핵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전쟁이 나면 독일도 궤멸을 면치 못하게 되었으니.
물론 미국보다 몇 단계나 앞선 로켓 기술을 보유한 독일이 조금 더 유리하다고 점쳐졌지만, 전쟁이 터진다면 독일도 자국에 막대한 피해가 생기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수폭 실험 성공으로 조성된 축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의 수폭 실험 성공보다 몇 배는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1958년 4월 12일, 독일 공군 조종사 베른하르트 크라머가 우주선 체펠린 1호를 타고 우주로 나갔다.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가는 데 성공한 크라머는 지구 궤도를 돌며 '지구는 푸르다'라는 말을 남겼다.
특일이 거둔 또 하나의 위대한 승리예 톡일 전역은 열광했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것에 이어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 독일에서 탄생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수만 년에 결친 인류 역사에서 해내지 못한 일을 독일이 해낸 것이다!
독일의 거리는 지크 하일을 외치는 우령찬 욕소리로 가득 찾고, 식당과 맥주홀마다 손님들로 짝 찾다.
베른하르트 크라머의 우주유영은 미국의 자존심에 또 한 번 름직한 스크래치를 남졌다. 독일은 우주에 사람을 내보내는데 천하의 미국은 아직도 로켓 문제로 씨름이나 하고 있다니
백악관도 자국민들의 푸념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맥아더는 하루가 멀다고 NASA에 전화를 결어 로켓 개발 현황에 대해 보고받았다.
-언제까지고 우리만 뒤처질 수 없소.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지 말씀하시오. 내 사비라도 털어서 지원해 졸 터이니.
독일의 로켓 개발을 따라가기 위해 미국은 막대한 자금과 인력울 쏟아부으며 분발했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고, 그게 있다면 돈이 부족한 것'이라는 말답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결과 미국의 로켓 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노력이 항상 결과로 돌아오지는 않는 법.
1958년 12월 6일, 미죽은 병가드 로켓을 쓰아 올렸다. 비록 특일에 비하면 뒤늦은 출발이지만 그래도 미국에는 나름 기념할 만한 순간이었기에 로켓 발사 과정은 미국 전역에 생증계되었다.
"5. 4"" "3"."2.."
수백 대의 카메라와 수천 명의 관련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로켓이 발사되었다.
-콰아아양!!
"...????"
"개씨발, 이게 뭐야!?"
뱅가드 로켓은 발사 후 4초 만에 폭발했다. 로켓이 올라간 거리는 1m 남짓
그리고 전 미국인들이 뱅가드의 처참한 최후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말았다.
폭발의 원인은 뱅가드 로켓의 추진 체계. 탱크 및 인젝터의 낮은 압력으로 인해 연소실의 고온 가스가 연료 시스템으로 새어 들어간 것이 패착이었다.
자국이 기껏 개발한 로켓이 1m도 못 올라가고 폭발하는 광경을 지켜본 미국인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세계는 미국의 실패를 비웃었다. 그야말로 굴욕도 이런 굴욕이 따로 없었다.
다음 해인 1959년 1월에 미국은 두 번째 로켓을 쏘아 올렸다. 두 번째 로켓은 첫 번째보다 오래 버텼다. 1분도 못 가서 폭발했지만,
두 번째 시도조차 처참한 실패로 끝나자, 미국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고, 맥아더의 인내심도 한계에 봉착했다.
"이 무슨 개망신이란 말인가! 제리들은 단 한 번에 성공한 것을 우리는 두 번이나 실패하다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홍당무처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호통을 치는 맥아더에게 관계자들은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뱅가드 로켓 개발을 주도한 미 해군은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육군 출신인 맥아더가 육군만 편애하고 해군을 홀대한다는 지적을 피하고자 해군의 뱅가드 로켓 개발계획을 승인하고 육군과 동일한 예산을 배정하며 나름대로 밀어줬지만, 결과물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을 해보시오. 변명이라도 좋으니 한 번 해보란 말이오."
"죄송합니다, 각하.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 평소엔 뭔 말이 그리 많더니 이럴 때만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는군.”
해군을 믿은 내가 다 잘못한 일이라고 면전에다 소리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맥아더는 간신히 분노를 억눌렀다.
그랬다간 해군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선거 때마다 대놓고 민주당에 표를 던져야 한다고 자기들끼리 모여 쑥덕거리는 놈들인데.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만 낸 해군과 다르게 육군은 그래도 성과가 있었다.
미 육군 주도하에 제작된 위성 익스플로러 1호는 해군이 만든 뱅가드와 달리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지구 궤도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뱅가드의 실패를 덮기 위해 미국은 열심히 익스플로러의 발사 성공을 홍보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럼 뭐하냐고. 독일보다 훨씬 늦었는데."
"차라리 뱅가드는 비밀로 하고 익스플로러만 방송했어야지. 하여간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힐 정도로 안 돌아간다니까."
"내 말이 쭛!"
뱅가드의 실패를 생중계로 목격한 미국인들은 미국이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릴 때쯤이면 독일은 달에 깃발을 꽂고 있을 것이라고 자조했다. 미국과 독일, 세계를 양분한 두 강대국이 우주개발 문제로 씨름하는 동안, 미국 코앞에 자리한 쿠바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 쿠바도 기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였다.
본래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는 미서전쟁 이후 미국의 보호국 신세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흔히 알려진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쿠바의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역시 그 자신도 혁명으로 집권한 이였다. 육군 중사에 불과했던 바티스타는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의 지위에 오른 후 여러 개혁을 펼치며 쿠바를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허나 고인 물은 썩는 법. 정부의 무능과 독재에 반대해 혁명을 일으킨 그도 권력의 단맛을 본 뒤론 독재자로 변질되었고, 쿠바의 사정은 점차 악화되었다.
국민의 5분의 1이 실업 상태에 나날이 심해져만 가는 빈부격차, 그리고 40%에 육박하는 문맹률은 쿠바의 몰락을 부채질했고 친미파인 바티스타 정권을 옹호하던 미국조차 바티스타의 폭정과 무능에 질려 서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동지들 일어섭시다!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자유를 쟁취하는 겁니다!"
"독재자 바티스타를 끌어내고 쿠바를 위기에서 구합시다!"
독재자 바티스타의 폭정에 지친 쿠바인들은 손에 무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세계 각지에서 온 혁명가, 공산주의자들도 힘을 보탰다.
“자유는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유는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싸우고 죽읍시다! 평생을 노예로 살아왔지만, 죽을 때는 자유인으로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의는 우리의 편입니다. 정의는 승리하고 악은 무너질 것이며 쿠바는 자유를 쟁취할 것입니다!"
"우아아아아!!!"
"일어나라,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여
일어나라, 기아의 노예들이여
이성의 불길이 분화구에서 타오르니
이것은 마지막 외침이 되리라!"
혁명을 주도한 혁명군 총사령관은 피델 카스트로.
부사령관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그 유명한 '체 게바라'였다.
피델 카스트로는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변호사에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의사로 가난과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혁명을 향한 투지와 진심, 그리고 독재자를 향한 분노는 그들 스스로 혁명에 투신하게끔 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혁명군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바 있는 베테랑 군인 알베르트 바요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바요는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토를 다는 병사는 이유와 지위를 불문하고 현장에서 사살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고 훈련에서 낙오하는 자들 역시 가차 없이 배제했다.
그렇게 조직된 혁명군은 멕시코에서 배를 타고 쿠바에 도착, 쿠바 민중의 지지를 모으며 성장해나갔고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며 몸집을 불려갔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위기를 느낀 바티스타는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바티스타의 폭정과 무능에 질릴 대로 질린 맥아더는 바티스타의 요청을 일말의 재고 없이 기각했다.
쿠바인들은 바티스타 정권에게서 마음이 떠난 지 오래. 현재 바티스타 정권은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아무리 부어도 독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법.
바티스타 정권을 지원해봤자 민심이 회복될 리 없을뿐더러 더 큰 혼란만 가져올 것이다.
바티스타 정권을 손절하기로 한 맥아더는 그의 지원 요청을 모두 거절했고, 그러는 동안에도 혁명군의 전진은 계속되었다.
"항복하겠소!"
"우리는 당신들 편이오, 동지들. 함께 싸웁시다!"
바티스타 정부의 무능에 질린 건 미국과 쿠바인들만이 아니었다. 쿠바 정부군조차도 바티스타 정권의 무능과 폭정에 진저리를 쳤고 진압 대신 역으로 혁명군에 합류하는 장병들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전세를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한 바티스타는 쿠바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가족과 측근, 재산을 챙긴 바티스타는 맥아더에게 전보를 보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부디 망명만 받아달라고.
마음 같아선 이조차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가 친미주의자였던 것을 감안한 맥아더는 바티스타의 미국 망명을 허용했다. 단, 플로리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그렇게 바티스타 정권은 붕괴했고 쿠바에는 신 정부가 들어섰다. 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혁명 만세!"
"동지들, 우리가 해냈소!! 우리가 이겼습니다!!!"
"만세! 자유 만세! 혁명이여, 영원하라!"
스스로의 손으로 승리를 쟁취한 혁명군의 두 눈에선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얼싸안고 울면서 혁명의 성공을 축하했다.
"드디어 해냈구만."
“그래, 우리가 해냈어."
체 게바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과 함께한 전우이자 절친인 카스트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둘의 위치는 부사령관과 총사령관, 나이도 카스트로가 2살 더 많았지만 둘은 서로 형제처럼 허물없이 지냈다.
"피델,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그냥 뭐... 옛날 생각이나 하고 있었지."
혁명 성공을 자축하며 축제를 벌이는 혁명 동지들을 보며 카스트로는 회상에 잠겼다.
1953년, 27살의 파릇파릇한 청년이었던 카스트로는 동지들을 규합해 혁명을 시도한 적 있었다.
자신의 고향 오리엔테의 산티아고 외곽에 위치한 정부군의 몬카다 병영을 기습해 무기와 탄약을 탈취하고 동지들을 무장시켜 방송국을 점거한 뒤, 쿠바인들에게 혁명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방송을 내보내는 것이 그가 세운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카스트로는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대로 처형당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카스트로를 생포한 정부군 수색대의 중대장은 다름 아닌 카스트로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옛정을 생각해 카스트로를 죽이지 않았고 그렇게 카스트로는 살아서 재판받을 수 있었다.
재판장에서 카스트로는 자신에게 징역 15년 형을 선고하는 판사에게 외쳤다.
"너희들이 지금 온갖 더러운 모함으로 나를 더럽혀도 나는 절대 굴하지 않을 거다! 역사가 나의 무죄를 증명할 것이다!"
재판장에서 보인 당당한 태도와 일갈 덕에 카스트로는 봉기에 실패했음에도 쿠바인들 사이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고 여론의 압력에 굴복한 바티스타는 그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석방된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가서 다시 혁명을 함께할 동지들을 모집했고 그곳에서 체 게바라와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혁명을 성공시켰다.
독재자 바티스타는 미국으로 달아났고 쿠바는 쿠바인들의 것이 되었다.
"체."
"왜 그러나?"
"혹시나 해서 묻는데……. 설마 여기서 만족할 것은 아니겠지?"
카스트로의 질문에 체 게바라는 미소로 답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제 겨우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는데 그만두는 법이 어딨나.”
"역시:"
쿠바 혁명은 시작일 뿐.
아직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혁명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이 존재하는 한, 그들은 멈출 수 없었다.
***
1959년 2월 1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대중의 관심은 미국이 쏘아 올린 익스플로러 1호를 향해 있지만 나는 그보다 더 관심 가는 구석이 따로 있었다.
바로 쿠바.
실제 역사에서처럼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은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에 혁명 정부를 세우는 데 성공했다.
일반인들의 인식은 옆 동네 어느 집에서 딸을 낳았다더라 정도에 불과했지만, 조금 비중 있는 언론사들은 지면을 할애해 쿠바 혁명에 대해 소상히 보도했다. 뭐, 혁명의 주체가 주체다 보니 좋은 말은 없지만 말이다.
베를린의 전략가들도 이번 사태에 나름대로 관심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티스타 정권의 붕괴를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이 묵인했다는 것이야말로 보통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맥아더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친미파인 바티스타가 몰락하도록 방치해서 그런가?"
내 말에 괴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는 빨갱이들을 죽어라 때려잡더니 정작 빨갱이들이 자기네 똘마니를 쫓아내는 것을 방치하다니. 혹시 맥아더에게 치매라도 온 걸까요?"
“그건 아닐 걸세. 친미주의로는 덮을 수 없을 정도로 바티스타 정권이 너무 무능했거든. 그러니 무능한 바티스타를 계속 살려두는 것보다 그냥 관심 끄고 모른 척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빨갱이들이 대놓고 설치도록 내버려 두다니………… 저로서는 이해가 어려운 일입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괴링은 이내 질문을 던졌다.
"만약 유럽에서 쿠바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총통 각하께선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맥아더처럼 대응하실 겁니까?"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끌어내려야지.”
뭐니 뭐니해도 최선의 방안은 혁명이 터지기 전에 먼저 손을 써두는 거다. 개입하려고 마음먹어도 혁명이 일어난 뒤라면 난이도가 몇 배로 올라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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