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theless, the world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3) >

식민지로 네덜란드에게 가혹한 수탈을 당해오다가 눈물겨운 투쟁 끝내 독립을 쟁취한 인도네시아.

그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수카르노는 갓 독립한 신생국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며 나라를 안정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다.

다행히도 독일과 냉전에 들어간 미국은 하나라도 더 많은 국가를 자국 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독일의 극동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도 적잖은 지원을 해줬다. 미국에서 생산된 식량으로 굶주린 인도네시아인들의 배를 채우고 미국의 공장들에서 만들어진 트럭이 인도네시아로 배달되어 인도네시아의 재건에 여러모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카르노도 이러한 미국에 접근해서 더 많은 지원을 타냈다.

이대로 쭉 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테지만 본래 인간이란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지는 법.

인도네시아의 재건이 얼추 이루어지고, 지방에서 활개 치던 군벌들의 정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수카르노는 영토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가 눈독을 들인 곳은 말레이시아의 사바와 사라왁.

그리고 뉴기니 섬 전체

포클랜드 제도를 욕심낸 아르헨티나가 어떤 꼴이 되는지 봤음에도 불구하고 수카르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즉시 미국의 경고장이 날아왔다.

'허튼 수작질 부리지 마라!

'국경을 넘는 즉시 자카르타에 폭탄이 떨어질 것'

'원조 모두 끊겨서 국민들 기아로 죽는 꼴 보고 싶으면 각오해라.'

맥아더는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또 사고를 치려고 벼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짜증이 치밀었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백악관의 분노가 듬뿍 담긴 경고장을 받아 든 수카르노의 이마에서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를 어쩌지? 국민에겐 큰소리 떵떵 쳐놨는데.

수카르노는 틈만 나면 라디오 방송에 나와 사바, 사라왁과 뉴기니는 인도네시아가 되찾아야 할 영토라며 선동을 일삼았고 인도네시아 국민도 수카르노의 말에 동조해 영토 회복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앞에서 이빨 깔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흠, 제가 그런 말을 했던가요? 유감이네요, 허허'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지지율 대폭락은 기본이오, 아예 대통령직에서 사퇴하라는 말까지 튀어나올 것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고심 끝에 수카르노는 한 발짝 물러서는 길을 선택했다.

영토는 욕심나고 국민의 반발도 두렵지만, 미국의 주먹은 그보다 훨씬 무서웠다.

강대국이었던 아르헨티나조차 미국이 본격적으로 주먹을 꺼내 들자, 끝내 패전하여 나라 전체가 미국의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현재 아르헨티나는 미국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통령 페론은 히틀러에게 몸을 의탁한 처지이고,

하물며 아르헨티나보다 국력이 훨씬 떨어지는 인도네시아라면?

미국의 괴뢰국 신세라면 다행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다시 네덜란드의 식민지 시절로 되돌아갈지 모른다.

그렇기에 수카르노는 굴복을 택했다. 북보르네오와 뉴기니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멈추지 않았지만, 국경에 배치한 병력을 철수시켰고 중국과 인도에서 무기를 들여오는 것도 멈췄다.

수카르노가 살려달라고 온몸을 비틀며 신호를 보내자, 맥아더는 그제야 흡족해했다.

“하여간 꼭 사람이 매를 들어야 정신을 차려요. 무슨 짐승도 아니고."

선거 끝나기 무섭게 태평양에서 또 전쟁을 치러야 하나 고민했던 맥아더는 수카르노의 항복 선언에 웃음을 되찾았다.

미국이 인도네시아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는 동안 유럽에서는 세르비아가 추축국의 전차에 무참히 짓밟혔다.

애초에 누구나 다 예상했던 일이라 놀라거나 안타깝다는 감정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독일 바로 코앞에서 그 난리를 쳤는데 히틀러가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도 사람은 생각보다 덜 죽었군."

독일이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세르비아인 사망자는 총 4천여 명에 부상자는 1만 5천여 명. 추축군 사상자는 1,600명 정도.

"...'덜'이란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게 맞는 겁니까?"

“그래서 말하지 않았나. '생각보다'라고."

수도 베오그라드는 다시 1941년으로 회귀했고, 수십만 명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는 신세가 됐다.

아직도 몇몇 지역에서 산발적인 저항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 역시 얼마 못 가 진압될 게 뻔하디뻔했다.

일개 게릴라들이 추축군 전체를 상대로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미국에 망명 중이던 전 유고슬라비아 국왕 페타르 2세는 추축국의 야만적인 진압을 비난하는 성명문을 냈지만, 거짓말처럼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미국과 독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세르비아에서조차도 반응이 하나도 없었다.

하기야 국왕이란 작자가 전쟁 터지기 무섭게 국민은 나 몰라라 하고 외국으로 튀었으니, 인기가 있을 리가.

그래도 명색이 한 나리의 국왕인 데다 독일에 점령당한 국가다 보니 그럭저럭 예우를 해주고는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페타르 2세의 이용 가치는 길바닥의 돌멩이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국왕이면 뭐하나. 국민에게 외면받는 상황인데.

언젠가 독일이 망하고 유고슬라비아가 다시 세워진다고 한들 그가 고국의 국왕이 될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맥아더 역시 굳이 다 끝난 일을 가지고 입 아프게 논쟁할 생각이 없었기에 세르비아에 관해선 언급을 피했다.

세르비아 '따위'보다 머리 아픈 문제가 산적해 있기도 했고,

미국에는 공산당을 피해 이민을 온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았다.

소련이 유럽에서 퇴출당하고 자유 러시아가 세워지자, 적지 않은 러시아 이민자들이 고국으로 다시 이민을 떠났지만, 여전히 많은 백계 러시아인들이 미국에 남았다.

러시아 공화국의 총리, 알렉산드르 케렌스키도 그중 한 명.

10월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프랑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그는 몇 년 전부터 미국 내 러시아계 이민자들을 끌어모으며 다시 활동을 개시했다.

케렌스키의 목표는 소련을 무너뜨리고 10월 혁명 이전의 러시아 공화국을 다시 세우는 것.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소련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다시 공화국을 세워달라는 건가?"

"예. 정확하게 맞히셨습니다."

"..."

맥아더가 미국 내 친공 단체들을 때려잡는 것을 본 케렌스키는 희망을 품었다. 지금 미국 정부라면 소련 공산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정부를 세울 것이라는 희망. 맥아더는 어이가 없는 나머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뭐, 상상은 본인 자유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금만 생각하더라도 이게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을, 총리씩이나 지낸 양반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현 소련 정권이 스탈린의 과오를 지우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지만 그래봤자 빨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맥아더는 현 소련 정권을 무너뜨릴 생각이 1g도 없었다. 지금 소련 정권이 무너지면 가장 이득을 보는 건 독일일 테니까.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세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 데다 여차하는 사이에 독일이 침공을 개시한다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맥아더가 아무리 반공주의자라곤 해도, 블라디보스토크에 하켄크로이츠기가 휘날리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맥아더의 속내를 케렌스키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지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며 소련 정부의 전복을 외치고 다녔다.

"저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진짜 제대로 돌겠군.”

더 난감한 것은 케렌스키를 제어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친공 단체들을 마구 때려잡던 정부가 막상 공산당 전복을 외치는 케렌스키를 잡아 가두거나 압력을 가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유출이라도 된다면 어떤 일이 터질지 좀처럼 예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자니 일이 점점 더 커질 게 분명한 상황.

“이럴 때 누가 나서서 그 입을 콱 막아버렸으면 참 편할 텐데………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알아야지. 쭛!"

골 때린다는 말은 분명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맥아더가 케렌스키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그때, 후버가 맥아더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각하. 좋은 소식입니다."

"무슨 소식이길래 그러시오? 히틀러가 죽기라도 했소?"

“그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각하께서 좋아하실만한 일입니다."

후버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

소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케렌스키는 자유 러시아도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자유 러시아라는 그럴 법한 직함을 내걸긴 했지만 그래봤자 히틀러가 세운 괴뢰국에 불과하지 않은가.

러시아인의 해방은 러시아인 스스로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 케렌스키는 자유 러시아도 장차 타도의 대상으로 여겼다.

당장은 소련부터 어떻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언급을 잘하지 않았을 뿐.

그러나 자유 러시아의 수장 블라소프의 시각은 케렌스키와 조금 달랐다.

케렌스키의 활발한 반공, 반소 활동에 주목한 블라소프는 케렌스키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를 히틀러에게도 얘기했다.

"되겠소?"

"비록 가능성은 작지만 그래도 혹시-"

"케렌스키에게 협력의사가 있었다면 진작 귀국하고도 남았겠지. 그가 여태껏 미국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소? 이쯤 되면 답이 나올 것 같소만?"

히틀러는 블라소프의 방안에 부정적이었다.

허나 히틀러의 말에도 블라소프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케렌스키와 독자적으로 접촉을 시도하기 위해 그에게 사자를 보냈다.

케렌스키와 만나는 일은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과거 총리였다고 한들 어디까지나 약 40년 전의 일이고 지금은 망명객 신분이었기에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용건이 뭐요?"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와 손을 잡지 않으시겠습니까?"

케렌스키와 만난 자유 러시아의 사자는 케렌스키에게 협력을 제안했다.

"선생께서도 같은 러시아인이잖습니까?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빨갱이들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허, 말이야 좋지. 나더러 히틀러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라는 소리 아닌가?"

"하지만 선생, 잘 생각해보십시오. 미국인들은 선생을 겉으로만 지지한다고 말하고는 아무런 도움도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독일은 러시아와 상호협력하며 함께 발전을 꾀하고 있지요."

"독일이 지난날 러시아의 영토를 강탈하려 했다는 사실을 잊었소? 그리고 러시아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러시아의 자원과 식량이 독일로 보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생각이오?"

케렌스키는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나 사자 또한 이러한 반박을 예상했는지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어갔다.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지요. 그 대신에 러시아 또한 독일의 기술을 받아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전에 두 나라가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눴지만, 그건 카이저와 차르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독일은 러시아의 가장 친밀한 이웃이자 우방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러시아가 계속해서 발전하려면 독일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내 생각은 다르오. 독일은 러시아를 이용해 먹기만 할 뿐. 러시아가 손을 잡아야 하는 나라는 오직 미국뿐이오.”

집요한 설득에도 케렌스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블라소프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는 케렌스키를 골칫덩이로 여기던 미국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

FBI는 케렌스키가 자유 러시아의 정보원과 만났다는 이유로 그를 소환했고, 어째서 자유 러시아 정보원과 만났는지 이유를 캐물었다.

"-그러니까, 자유 러시아가 협력을 제안했지만 이를 거부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겠소? 나는 절대 파시스트 놈들 따위에게 현혹되지 않았소이다!"

자유 러시아와의 협력 가능성에 관해 묻는 FBI의 취조에 케렌스키는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부정했다.

후버도 케렌스키가 결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케렌스키의 입을 막을 구실이 필요했던 그에게 케렌스키의 결백 따윈 알 바 아니었다.

후버는 이런저런 명목을 끌어와 합법적으로 케렌스키의 활동에 제약을 가했다.

명목상으론 신변상의 위협 때문에 그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보호.

"러시아인들 중에 독일 스파이가 섞여 있다는데?"

"빨갱이 아니면 나치라니. 뭔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어?"

그런 다음 언론에는 백계 러시아인 중 일부가 자유 러시아와 연이 닿아있을지 모른다는 음모를 흘렸고 기삿거리가 고팠던 언론은 이를 기사에 실어 열심히 대중에게 보도했다.

석 달도 되지 않아 미국에는 러시아인들이 독일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어떻습니까? 대번에 조용해지지 않았습니까?"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짓는 후버에게 맥아더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골칫덩이였던 케렌스키의 입까지 막아버렸으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케렌스키 그 친구에게는 조금 미안하게 됐군.”

일이 순탄히 풀리긴 했지만, 맥아더는 영 찜찜한 기분이었다. 자유를 숭상하는 미국에서 같은 반공주의자인 케렌스키를 잡아 가둬야 한다니.

비록 독일의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를 위한 것이라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소련만 좋게 해준 꼴이니 뒷맛이 찝찝했다.

그러게,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괜스레 설쳐가지고…………. 후버가 나간 뒤에도 맥아더는 연거푸 담배를 피워댔다.

워싱턴의 하늘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유난히 맑았다.

***

세상 일은 참으로 기묘했다.

빨갱이 타도를 외치고 다니는 케렌스키가 신변상의 위협을 이유로 미 정부에 의해 반강제로 연금 상태에 처하더니, 곧 미국에 있는 러시아계들이 독일의 스파이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기 시작했다. 이게 뭔 일인가 싶어 SD에 조사를 명령했더니, 곧 블라소프로부터 자세한 내막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대충 정리하자면 케렌스키에게 협력 의사를 묻기 위해 사자를 보냈는데 실패했고, 정작 케렌스키는 그 건으로 미 정부에게 찍혔으며, 졸지에 미국에 사는 러시아계의 입장만 난처해졌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으리라. "가만히 있던 빨갱이들만 이득을 본 셈이로군요.”

"그렇지. 참 그놈들은 운도 좋아."

이번 일로 독일이 손해를 본 일은 없으니, 화가 난다거나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단지 일이 이렇게도 꼬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

이번 일로 입지가 좁아진 백계 러시아인들이 자유 러시아로 '이민'을 오는 일이 늘었다고 한다.

자유 러시아로 떠나는 러시아계의 숫자가 늘수록 미국에 남은 이들의 입지는 더 줄어들었고, 미국인들의 편견만 강화되었다.

이번 일로 알게 된 건 또 하나 더 있다. 맥아더가 이상보다는 현실을 더 중요시하는 냉혹한 현실주의자라는 점.

독일과 미국의 상호공존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한참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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