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theless, The World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2) >

헝가리는 주변에 적이 많았다.

슬로바키아가 그랬고 루마니아가 그랬으며 우크라이나와도 영토 문제로 관계가 썩 좋지 못했다.

그래도 2차대전 동안 독일의 동맹으로 소련에 대항해 싸웠고 전쟁이 끝나고 국경 문제도 일단락되면서 영토 분쟁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같은 추축국끼리 사이좋게 지내라는 큰형님 독일의 강권도 없지 않았지만,

그러나 세르비아와는 도저히 관계가 좋아지려야 좋아질 수가 없었다.

세르비아 정부의 공식 주장은 아니지만, 세르비아인들은 헝가리가 자국 영토를 강탈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외치고 다녔고 헝가리 역시 아직 세르비아에서 받아올 영토가 많이 남아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헝가리 민족주의자인 호르티의 눈에 세르비아는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툭하면 분쟁이나 일으키는 건달패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는 독일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할 때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세르비아의 추축국, 유럽연합 가입에 반대했다.

세르비아가 혼란에 빠지자, 호르티는 흥분했다. 그에게 이번 사태는 눈엣가시 같은 세르비아를 다시 손봐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히틀러와 만난 자리에서 호르티는 자신의 계획에 관해 설명했다.

세르비아는 예로부터 갱생이 불가능한 종자들이라 채찍과 몽둥이를 사용해야만 겨우 길들일 수 있다. 세르비아가 다시는 분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이번에 아주 철저하게 짓밟아줄 필요가 있다.

"지금 세르비아 영토는 놈들 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넓습니다. 이번 기회에 여러 갈래로 찢어놓는 것이 어떠신지?"

호르티는 히틀러에게 세르비아의 분할을 제안했다.

수도 베오그라드와 그 주변 땅덩어리만 남겨두고 조각조각 나눠서 일부는 합병하고 일부는 괴뢰국으로 만들어 세르비아인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자.

세르비아인들이 서로 뭉치지 못하게끔 뒤에서 조종하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내버려 둔다면, 유럽은 50년이고 100년이고 영원토록 평화로울 것이다.

헝가리와 영토 문제로 감정이 그렇게 좋지 않은 크로아티아의 파벨리치도 세르비아를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소국으로 조각내자는 호르티의 제안에 즉각 찬성했다.

마찬가지로 세르비아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알바니아, 불가리아도 호르티의 방안을 지지했다.

남은 건 최종결정권자, 독일의 결정뿐.

“세르비아를 저대로 내버려둔다면 틀림없이 유럽에 새로운 전쟁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중세시대의 인간들처럼 사는 작자들이니 이번 기회에 사는 곳도 중세시대처럼 만들어주지요."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소.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소."

히틀러는 호르티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직 세르비아 정부는 제 구실을 하는 중이고 인위적으로 세르비아를 조각내봤자 저들의 반항심만 깊어질 거요. 일단은 사태를 주시하면서 세르비아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도록 합시다.”

히틀러의 말에 호르티는 허탈함을 느꼈지만, 히틀러가 워낙 단호했기에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히틀러가 호르티의 반세르비아 감정을 모르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그의 영토 욕심까지.

보나 마나 세르비아의 버릇을 고쳐준다는 핑계로 영토 확장에 나서는 게 목적이겠지. 당연히 획득한 영토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들을 모두 추방할 테고.

세르비아를 ‘베오그라드 공화국' 같은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소국으로 갈라놓고 중세시대처럼 자기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도록 유도한다고 한들, 그런다고 세르비아인들이 순순히 호르티의 계획에 따라줄 리도 없을뿐더러 분노한 세르비아인들이 게릴 라전을 벌인다면 발칸반도는 다시 총성이 끊이지 않는 전장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뿐이겠나. 헝가리가 세르비아 영토를 합병하면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등도 너 나 할 거 없이 영토 확장에 나설 것이고 자연스레 분쟁만 늘어날 게 뻔하다.

그렇기에 히틀러는 '세르비아의 영토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미리 못을 박았다.

그렇다고 세르비아인들의 반독, 반추축국 시위를 용납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히틀러가 대응을 자제하는 이유는 현 세르비아 정부가 적극적인 친독 정권이라는 것과 섣불리 나섰다가 일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독일 및 추축국이 움직인다면 세르비아의 반독 시위대에게 명분만 실어주고 현 정권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자충수가 될 것이었다.

보라. 그렇게 열심히 독일 말을 들어도 독일은 현 국왕과 정부를 허수아비 정도로 여기지 않는가. 이걸 보고도 계속 독일에 붙어있을 생각인가? 반독 강경파의 예측과 다르게 독일과 추축국이 행동을 자제하자 시위대 또한 느리지만, 천천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독일이 당장에라도 움직일 거라더니 조용하잖아?"

"그러게."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서, 추축국 탈퇴해도 뭐가 달라지는데? 다른 대안이 있기는 해?"

미국은 세르비아 같은 소국에 관심이 없는 모양새고 소련은 진작에 망했다. 세르비아가 추축국에 탈퇴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반독파는 추축국에서 탈퇴하고 잃어버린 옛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위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갔고 그간 뒤로 미뤄졌던 냉정한 현실론이 다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전쟁은 지겹다. 이제는 그냥 조용히 좀 살자!"

"영원히 히틀러 똘마니 노릇이나 하면서 살자고? 이 매국노 새끼가!"

"그러면 영원토록 전쟁이나 하면서 살자고? 그렇게 전쟁이 하고 싶으면 독일 가서 폭탄이라도 터뜨리던가!"

"맞아! 왜 우리까지 전쟁해야 하냐고! 상식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독일을 이겨?"

"우리 애는 소아마비에 걸렸다고! 히틀러가 말한 백신만 맞았어도 이런 일은......"

시위대 내부에서도 반대파와 현실론자들의 입지가 커지자 시위를 주도한 지도부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계속 어물쩍거리다간 다시는 지금과 같은 지지와 열기를 모을 수 없을 테니,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시위대는 전략을 바꿔 다음과 같은 요구를 정부에 들이밀었다.

독일이 세르비아에 부과한 배상금과 관련된 협상을 다시 실시하라.

세르비아 경제를 좀먹는 독일 기업들을 철수시켜라.

현 정부가 독일의 괴뢰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라. 그대들도 같은 세르비아인이라면!

국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겠다던 파블레 1세는 시위대의 요구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무시하는 게 답입니다, 폐하.”

“저들이 하는 말을 무시하자고?"

"현재로선 그 방법뿐입니다. 다른 방도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시위대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이대로만 가면, 저들은 얼마 못 가 스스로 분열하여 자연스레 흩어질 겁니다.”

“맞습니다. 애초에 독일이 위 요구를 승낙할 리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정부 관료들과 측근들의 주장에 따라 파블레 1세는 침묵으로 대응했다.

허나 이 또한 시위대의 예상범위 안이었다.

“국왕과 정부는 어째서 국민의 질문에 응하지 않는가?"

"국민이 두렵지 않은 것인가?"

"매국노 정권 물러가라! 독재정권 물러가라!"

"독일의 허수아비들은 세르비아에서 꺼져라!"

시위대는 정부가 국민의 요구를 무시했다며 사람들을 선동했고, 점차 사그라드는 듯했던 시위의 불씨는 다시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상황이 다시 급박해지자 정부는 군대를 투입했다.

그러나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군대가 역으로 시위대에 합류하리라곤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파블레 1세는 가족, 측근들을 데리고 급히 베오그라드를 떠나야 했다.

세르비아 왕국 정부가 베오그라드를 떠나기 전, 독일 등 추축동맹 가맹국 대사들도 서둘러 베오그라드를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

세르비아의 치안 회복 및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추축군이 세르비아 국경을 넘어 진군했다.

***

1956년 11월 8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결국, 세르비아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걷고야 말았다.

물론 국왕과 정부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들의 잘못이라곤 할 수 없다. 탓할 생각도 없고.

세르비아군은 대부분 추축군의 무장해제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 개입 첫날에 세르비아군의 9할이 무장해제되었다. 1할은 탈영하거나 저항을 선택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세르비아군의 저항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진압되었다.

나는 세르비아인들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르비아인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세르비아의 영토와 주권은 이전처럼 유지될 것이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세르비아인이 추축군을 상대로 화염병과 폭탄을 던지고 군경으로부터 탈취한 무기로 저항했다.

하지만 전차, 제트기, 야포와 장갑차로 무장한 추축군을 소화기로 무장한 민병들이 싸워봤자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추축군의 공세가 시작되자 폭도들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개입 이틀 만에 추축군은 베오그라드에 입성했고, 베오그라드 일대를 가득 메웠던 시위대는 도망치거나, 저항하다가 포격에 맞아 가루가 되었다. "추축군의 진격은 순조롭습니다.”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거나 투항하는 세르비아인들의 수가 늘고 있습니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 짖어댈 땐 언제고 몽둥이를 들자마자 배 홀라당 까뒤집고 헥헥거리는 꼴이라니.”

"그게 세르비아인들 종특이 아니겠소?"

장군들은 세르비아 일대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두고 이런저런 논평을 남겼다.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게 아니라 경마시합을 관전하는 분위기였다.

추축군의 주력은 헝가리군이었고 그다음이 크로아티아군, 불가리아군, 독일군 순서였다.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앞에 국가들이 나서서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내게 요청했기 때문이다.

내게 잘 보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세르비아인에게 복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압을 맡은 추축군이 세르비아 일대에서 각종 잔혹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보고가 속속 올라왔다.

세르비아에 원한이 깊은 건 아는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숨기려는 티도 안 내냐.

"만슈타인 원수. 각 군마다 국방군 1개 중대를 배속시켜서 군규를 위반하는 행위가 있는지 감시하도록 하시오. 적발하는 즉시 상급부대에 보고하도록 하고, 세르비아인들에게 더 날뛸 거리를 만들어줘서야 되겠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즉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의 아들들이 흘릴 피를 대신해서 흘리겠다니 반대는 안 했지만, 최소한 눈치는 좀 봐야지. 대놓고 저지르면 어쩌자는 건지 원.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사상자가 적다는 것과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들은 저항이 미비하거나 아예 없다는 거다.

몇몇 도시들은 하켄크로이츠를 걸어두고 사절단을 보내 이곳엔 반군이 없다며 결백을 호소하기까지 했다.

굳이 적을 늘려봐야 좋을 게 없으니, 저항이 없는 도시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 일절 터치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루마니아로 도피한 국왕과 세르비아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폭도들을 대신 진압해줘서 고맙다고 의례적인 감사 인사만 전할 뿐. 국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선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미국이 막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조용하군? 선거도 이겼으니 뭐라고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이틀 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맥아더는 여유롭게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맥아더의 임기는 1961년까지 연장되었다. 재선에도 성공했으니, 의례적으로 한마디 거들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다르게 미국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인도네시아 문제로 골치가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지. 인도네시아가 있었지?"

세르비아가 유럽의 골칫덩이라면 인도네시아가 미국엔 새로 떠오르는 골칫덩이였다.

네덜란드 식민지였다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립에 성공한 인도네시아는 그동안 무난하게 잘 지내는 듯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슬슬 영토적 야욕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대놓고 뉴기니섬과 말레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뉴기니 섬 서부는 여전히 네덜란드가 지배하는 중이고 동부는 영국-실질적으론 호주-가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가 뉴기니 섬 전체를 자국 영토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말레이시아의 영토인 보르네오 섬 북부 사바, 사라왁까지도 자국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주장에 영국 망명정부는 뭔 개소리냐는 반응이지만, 인도네시아는 상당히 진지했다.

아르헨티나가 어떤 꼴이 나는지 수카르노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 텐데, 무슨 깡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단체로 약 한 사발씩 한 건 아닐 테고.

"조만간에 또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겠구만. 그런데 우리가 인도네시아에도 무기를 팔았던가?"

"예. 많지는 않지만, 야포랑 전차 몇 대 정도 팔았지요."

"그거 가지고 미국이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저희가 무기를 팔지 않은 나라가 더 적을 텐데 미국도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겁니다.”

지금도 인도네시아는 중국, 인도 등 주변국들에서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우리에게서 무기를 사들이는 중이고.

뭐랄까. 또 근시일 내에 일이 거하게 터질 것 같은 분위기인데.

***

선거에선 이겼으니 급한 불은 끈 셈이다.

그러나 급한 불은 껐을지언정 맥아더가 처리해야 할 업무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하느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모양이군.”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맥아더에게 매번 새로운 일거리를 던져주시니, 이거야말로 하느님의 관심이 차고 넘친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아끼는 인재일수록 새로운 시험을 치르게 하는 법이니.”

"..."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아이젠하워는 맥아더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맥아더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눈치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매번 숨돌리기 무섭게 새 사건이 터지겠는가.

아르헨티나를 정복하고 소아마비 백신을 전국에 뿌린 공로로 미국인들은 맥아더가 백악관에 남는 것을 허락했다.

남부 딕시들은 맥아더를 백악관에서 쫓아내기 위해 민주당 후보 해리 S. 트루먼에게 표를 던졌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그러나 재선의 기쁨에 취할 틈은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허황된 영유권 주장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수카르노는 정말로 전쟁까지 생각 중인 모양입니다."

"여기 사진을 봐주십시오. 말레이 국경 일대에 인도네시아군 대포와 탄약차가.."

"허허. 씨발."

백악관은 오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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