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acy of the Empire part 6
<제국의 유산 (6) >
영국의 철수와 독립 승인이 발표된 후 인도 전역은 축제 분위기였다.
영국 동인도 회사 시절까지 포함하면 거의 19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기나긴 식민통치가 막을 내리고 드디어 인도인들이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되찾았다. “독립 만세!"
“우리가 이겼다!”
“우와아아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 인도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해방을 축하했다.
거리에선 매일같이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춤을 췄다.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은 영국인들뿐.
억지로 인도로 끌려온 병사들의 얼굴은 밝았지만, 수십 년 동안 인도에 터를 내리고 살아오던 영국인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캐나다나 호주, 뉴질랜드로 떠날 채비를 했다. 독일에 점령된 본토로 떠날 준비를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비교적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곱게 떠날 생각이 없었다.
최후의 영국인이 배에 오르기 무섭게 추축국 가입 신청부터 할 게 뻔한 인도를 최대한 약화시키기 위해 영국인들은 본인들의 주특기에 돌입했다.
“당신들이 우리와 무슨 볼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온 거요?”
“허허. 왜들 이러십니까. 그쪽도 저희와 대화를 나눌 생각이 있기에 방문을 허락해 준 거 아닙니까?”
"우리, 건설적으로 대화합시다. 건설적으로.”
“저들 힌두교도들이 과연 여러분을 존중할까요? 간디도, 네루도 결국엔 다 힌두교도 아닙니까.”
"요점만 말하시오. 요점만...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께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하는데………….”
“그게 사실이오?"
“무슬림 놈들이 벌써부터 분리독립 얘기를 하고 있다고?”
“역겨운 놈들. 함께 힘을 합치자고 할 때는 언제고 벌써부터 등에 칼을 꽂을 생각부터 해???
“좆같은 개새끼들!”
“그런데, 어째서 그걸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요?”
“그야 저희로서는 호전적이고 앞뒤 꽉꽉 막힌 무슬림보다 당신들과 대화가 더 잘 통하기 때문이지요.”
“흠, 뭐어……… 그렇긴 하지.”
“멍청하고 난폭하기만 한 무슬림들과 우리는 다르지, 암.”
“힌두교도, 이슬람도 당신들 시크교들을 포용할까요? 벌써부터 어떻게 하면 주류에서 쳐낼지 고민부터 하는 작자들인데.”
“그건 맞지. 우리도 우리만의 나라를 세워야 할 때요.”
“그래서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암요. 당연히 같은 기독교인데 도와드려야지요."
힌두교, 이슬람, 불교, 시크교. 기독교. 그리고 기타 등등.
여기에 인도 제국 전역에 퍼져 사는 수많은 민족.
카스트 제도에 고통받던 수드라와 불가촉천민들까지.
압제자인 영국이 물러났으니 그간 독립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위해 힘을 합쳤던 조직들은 저마다의 계산 아래 서로 흩어졌다. 이를 캐치하고 열심히 이간질을 시작한 영국.
결과는 대성공.
무슬림들은 이슬람 국가 건설을 외치며 힌두교도들과 척을 졌고, 시크교도들 역시 자신들만의 독립된 국가를 원했다.
가뜩이나 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힌두교도들은 무슬림과 시크교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입니다! 모두 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어째서 신분제라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평생을 속박된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옳소!!"
“우리도 사람이다!"
“망할 카스트를 없애고 진정한 자유를 되찾읍시다. 여러분!”
불가촉천민의 해방자,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도 카스트 제도의 완전한 철폐와 불가촉천민의 해방을 외치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이래서야 안 되네. 이러다가는 같은 인도인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게 되는 상황이 올 걸세.”
꿈에 그리던 독립을 받아냈지만, 막상 새로운 혼란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자, 간디는 당황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이래서야 호랑이굴에서 빠져나왔더니 굶주린 늑대 떼와 마주친 격이 아닌가.
독일에서 인도로 귀국한 보스 역시 간디와 걸었던 방향은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였다.
인도의 독립과 통일된 인도 공화국의 수립.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서로 간의 대화뿐이네. 우선 각자 원하는 게 뭔지 일단 들어 보도록 하자고.”
“동감입니다.”
분열되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로 나뉜 인도가 아닌 온전히 통일된 인도를 원하는 두 사람은 힘을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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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16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프랑스는 영국 아프리카 식민지 정복을 포기했고, 인도는 벌써부터 집안싸움에 들어갔다.
거, 아직 독립한 것도 아닌데 독립 소리 듣기 무섭게 쌈박질이라니.
물론 여기에 영국이 장난질을 쳤다는 증거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으니 인도인들 탓만 할 수 없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참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역사에서도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도 전에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나뉘어 싸우다가 끝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어 독립했다.
여기서는 조금 달라지나 싶었는데 결국엔 같은 역사를 걸어가려는 모양인 듯싶었다.
인도가 분열된 채로 독립하게 되면 이제까지 세웠던 아시아 계획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독립한 인도와 파키스탄 둘 다 친독 성향이면 좋겠지만, 힌두교인 인도는 몰라도 이슬람을 믿는 파키스탄이 딱히 친독일 것 같지는 않다. “어째서입니까? 저희는 이슬람과 딱히 척을 질 만한 일을 한 게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생각해보게. 이슬람이 힌두교만큼이나 무엇을 증오하겠나?”
“힌두교만큼이나……… 아, 혹시?”
리벤트로프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이슬람이 힌두교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증오하는 대상은 바로 유대인.
나는 대놓고 반유대주의는 빨갱이들의 선전으로 치부하며 아예 유대인들로 구성된 특별부대 존더코만도를 창시한 몸이다.
이외에 유대인들의 편의를 봐준 적은 없지만, 유대인들을 부모의 원수마냥 불구대천지원수로 여기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보기엔 나는 이미 반유대인이나 마찬가지일 터.
그렇기에 인도가 친독일 가능성은 커도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이 인도처럼 친독 성향을 띌 가능성은 그리 크진 않을 것 같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한 가정일 뿐이고 막상 그때가 되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왠지 느낌이 그렇다.
인도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한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바로 미국과의 정상회담.
듀이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되도록 빨리 만나서 독일과 미국 양국 간의 관계에 대해 의논하고 싶다고.
미국의 새 대통령 듀이가 나를 만나고 싶단다.
무슨 이유로 나를 만나자고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독일 혐오자로 유명했던 루즈벨트나 월리스보다는 듀이가 조금 더 말이 잘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측근들의 의견도 대체로 비슷한 편이고.
이번 기회에 서로 만나서 숨기는 거 없이 까놓고 딜을 하는 것이 독일을 위해서도 나은 선택일 터.
“안 될 것도 없지. 그래,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하던가?”
“그것이.…..…….”
리벤트로프는 웬일인지 뜸을 들였다. 말 못 할 게 있다는 듯이.
“총통 각하께서 미국으로 직접 오시길 원한다고 합니다.”
“내가? 미국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리벤트로프.
듀이는 나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제3국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백악관에서 직접 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다.
이건 예상 못 한 일인데.
물론 스탈린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로 날아갔던 것처럼 안 될 것도 없긴 하다.
장소가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워싱턴의 백악관으로 바뀌었을 뿐 가서 해야 할 일은 똑같다.
“미국이라……… 내 언젠가 미국에 가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게 되는군.”
“즉시 답장을 보내겠습니다.”
“그래. 날짜는 저들이 알아서 정하도록 하게. 우리야 급할 게 없으니.”
“알겠습니다.”
참. 그러고 보니 히틀러가 예전에 디즈니 캐릭터들을 그리기도 했었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본래 정치가가 아니라 화가가 되길 원했던 양반이니 디즈니 캐릭터들을 그린 것이 이상할 게 없지만, 미국의 참전으로 끝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그가 미국 만화 캐릭터들을 그렸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히틀러도 미국에 가는 꿈을 꾸지는 않았을까.
******
1945년 4월 22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잠깐이기는 하나 한때 미국과 전쟁을 벌였던 독일의 지도자를 미국으로 초청하자는 것은 순전히 듀이의 생각이었다.
굳이 히틀러를 미국으로 데려올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에 듀이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듀이가 말한 평화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와 조금 거리가 있지만, 그 의미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미국인들은 전쟁에 지쳤다.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전쟁에 지쳐 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
최소한 미국이 독일처럼 핵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미국과 전쟁을 했던, 한때 적이었던 히틀러를 미국에 데려와 회담을 연다. 이를 보고 전쟁이 임박했으리라고 여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리라.
최근 인도 문제로 불안에 떨었던 사람들은 비로소 평화의 시대가 왔음을 체감할 것이고 미국과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준 자신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는 껑충 오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패전국에 불과했던 독일을 집권한 지 5년 만에 영국,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만들고 로마가 멸망한 이래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통일 유럽을 만들어낸 히틀러라는 남자에 대한 호기심도 컸다.
그와 직접 만나 속내를 털어놓고 무엇을 원하는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자극했다.
서로 속내를 숨기고 전쟁 하나 마나 대립하는 것보다 만나서 무엇을 원하고,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직접 얘기를 듣는 게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듀이는 히틀러에게 백악관 초청장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답장이 왔다.
“히틀러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뭐라고 왔던가?”
“각하의 초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날짜는 우리 쪽에서 정해도 좋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히틀러도 내심 자신과의 회담을 원하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이전에도 히틀러는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단순 립서비스였는지 몰라도 미국에 대해 우호적인 제스처를 여러 번 취했었다.
어쩌면 그와 얘기가 잘 통할지도 모른다. 최소한 민주당 떨거지들보다는.
제 놈들 스스로의 실책으로 정권을 빼앗긴 주제에 쓸데없이 말만 길고 반대밖에 모르는 머저리들.
물론 민주당 소속이라고 해서 말이 아예 안 통하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 대화를 할 지능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몇 명 있지만, 나머지는 죄다 거기서 거기였다.
선거에서 졌으면 반성을 해야지.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며 되려 발톱이나 세우는 것들.
히틀러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놈들이 또 얼마나 날뛸지 감이 안 잡혔다.
보나 마나 전장에서 죽은 우리 병사들의 희생에 먹칠하는 것이라며 떠들어댈 것이다. 그 병사들을 명분 없는 전쟁터로 내보낸 것들이.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쯧쯧쯧."
“그렇다고 숨길 수도 없지 않습니까.”
“누가 숨긴다고 했다. 오히려 저놈들이 무서워서 숨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마음껏 떠들라고 해.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는 법이니까.”
듀이가 말한 대로 영국은 인도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까지 열심히 힌두교와 무슬림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었다.
통일된 인도가 독일의 동맹이 되면 위험하다. 이를 막으려면 인도를 최대한 잘게 쪼개 서로서로 물어뜯게 만들어야 한다.
이간질이 주특기인 영국인들은 이 일을 아주 멋지게 해냈다. 얼마 전까지 서로 동지였던 인도인들은 이제 원수로 돌변해 서로를 비방하고 열심히 물어뜯었다.
이 시점에서 통일 인도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간디와 네루, 보스처럼 저명한 인사들이 화해와 대화를 외치며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인도인들 사이에 퍼진 증오는 쉽게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간디, 그 사람한테는 유감이군.
듀이는 비폭력주의라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방법으로도 영국 식민당국을 압박하고 인도인들을 넘어 전 세계적인 지지를 받는 간디에게 호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소망인 독립한 통일 인도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통일한 인도가 독일과 손을 잡으면 인도양은 독일의 내해가 될 게 뻔했기에.
그리고 전범 재판.
유럽에서의 재판은 신속하게 이루어져 전쟁에 책임이 있는 수뇌부-그래봤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수가 적지만 아무튼-는 모두 목이 매달렸고, 시체는 화장되어 어딘가의 바다에 뿌려졌다. 그보다 지위가 낮은 잡범들도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비례하는 처벌을 받았다.
모스크바 국제전범재판이 신속하게 끝날 수 있었던 것에는 독일이 붙잡은 전범들의 수가 적다는 것이 한몫했다.
운이 나빠 포로가 된 이들만 재판에 회부되었고 캐나다와 시베리아로 도피한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얘기가 달랐다.
도망갈 곳이 있던 영국, 소련과 다르게 일본은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랬기에 일본의 전범들은 종전과 동시에 대부분 미국의 포로가 되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전쟁 중 행방불명되거나, 천황의 옥음방송(玉音放送)을 듣고 배를 가른 독종들뿐.
일본의 살아있는 유일신, 천황도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은 아직도 이어지지만, 핵심 전범들에 대한 처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도조 히데키, 히로타 고키, 고노에 후미마로, 아라키 사다오 등등 전쟁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자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사형에 처할 것이다. 전 천황 히로히토 역시.
현 천황 야스히토는 맥아더를 통해 자신의 형에 대한 처벌 수위를 낮춰줄 것을 청했지만 맥아더는 정부에서 정할 문제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자들의 탐욕으로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던가.
7년 동안의 전쟁으로 중국에서는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그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는 슬픔을 맛보았으며 미군도 태평양 전선에서 20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특히 일본의 기습으로 전쟁에 뛰어들게 된 미국의 일본 전범들에 대한 증오는 상상을 초월했다.
따라서 그들의 목숨을 살려둔다는 선택지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진주만 공습을 실행한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운이 좋았다. 그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잘못을 시인했고, 이를 반성했다.
그리고 그가 대미개전에 반대했다는 무수한 증언과 증거가 있었기에 그를 다른 전범들처럼 사형에 처할 수도 없었다.
그가 진주만을 공습해 수많은 미국인은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미국과의 전쟁에 반대하면서도 결국엔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기에도 뭣했다. 야마모토는 처형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죄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형은 피했어도 제법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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