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acy of the Empire part 5

 제국의 유산 (5) >

히틀러가 계획한 게르마니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겉멋만 든 망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

21세기에도 만들기 힘든 그런 초대형 건축물들을 어떻게 1940년대 기술력으로, 그것도 5년 안에 다 완성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다. 뭐 보기야 웅장해 보이고 이걸 보러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올 것을 생각하면 아주 쓸모가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다.

일단 그 건축물들을 만들 비용은 어디에서 조달하게? 빚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는데 또 빚을 내려고? 그리고 베를린의 지반이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 애초에 베를린이라는 이름도 폴라브어로 늪지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나치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아서 슈베르벨라스퉁스쾨르퍼(Schwerbelastungskörper, 고중량 지탱체)라고 불리는 침하 시험용 건축물을 지어 시험해 본 결과, 토질이 너무 물러 히틀러가 계획한 초대형 건축물들을 지을 수 없다는 결론만 나왔다. 하지만 히틀러는 어떻게든 지으라고 고집을 부렸고, 하는 수 없이 지질학자들과 건축가들을 불러 모아 지반을 강화할 방법을 구상하다가 패전으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나치가 계획한 건축물 중에 유일하게 완공된 곳은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뿐.

전쟁에서 독일이 이겼더라도 여러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지어지지 못했거나 혹은 토지 기반공사만 하다가 도중에 히틀러가 죽고 흐지부지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히틀러의 망상과 별개로 전후 베를린의 재건축은 꼭 필요했다.

앞으로 베를린의 인구가 지금보다 더 늘어날 텐데 지금의 인프라로는 훗날의 인구를 모두 다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미래 베를린 인구의 증가를 대비해 미리미리 그에 관한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다.

“지금도 베를린으로 이주해오는 사람들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소. 여기에 비즈니스, 관광 등의 이유로 베를린을 방문할 사람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아지겠지. 도로 역시 마찬가지요. 인구가 늘어나면 당연히 도시가 확장되고 도시가 확장되면 차량의 수요 또한 증가할 텐데 지금의 도로는 충분하지 못하오.”

“그래도 12차선은 너무 넓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지하차도도 만들고 있는데 굳이 이렇게 넓게 만들 필요까지는…….”

토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대해 답변을 하려는데 아데나워가 대신 입을 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기엔 분명 다소 과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인구를 감안했을 때 12차선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군요. 현실적으로 도로의 너비를 줄이는 것이 도로를 넓히는 것보다 쉬우니 말입니다.”

“아데나워 시장의 말이 맞습니다. 도로가 더 필요해졌을 때, 좌우로 건물들이 가득 들어서 있으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슈페어가 나서서 아데나워의 의견을 뒷받침하자 토트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도 중요하지만, 주차시설도 필수적이오. 지금은 독일 국민 중에 자가용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10년이나 15년 뒤에는 세 집 중 한 집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을 것이오. 이 차들을 주차할 공간도 꼭 필요하오.” 도로도 중요하지만, 주차장도 도로 못지않게 중요하다. 주차장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직접 봐 온 입장에서는 더더욱.

베를린의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려면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도 많이 필요하다.

실제 역사에서 소련은 전후 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에 의한 주택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흐루숍카(xpyēBKa)라 불리는 패널형 아파트를 대량으로 건설해 주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이 흐루숍카는 1960년대 수준으로 대단한 신식 아파트지만, 비용절감과 대량생산을 위해 적지 않은 부분들이 희생되었다.

건축법상 6층 이상의 건물들은 의무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며 흐루숍카는 대부분 5층 미만으로 지어졌다.

그래도 화장실과 주방이 공용에 한 방에 한 가구가 살아야 했던 공용 아파트보다는 여러모로 나은 점이 많아서 많은 소련인이 선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은 소련이 아니므로 이 흐루숍카를 그대로 베껴올 생각은 없다. 지금도 독일에는 아파트들이 적지 않게 있고, 나는 이 아파트들을 조사해 표준적인 모델을 선정했다.

기본적으로 15층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각 집마다 화장실과 주방. 2~3개의 방이 있는 아파트. 그리고 자가용을 주차할 주차장도 아파트 근처에 지을 필요가 있다. 아파트와 주차장 사이의 거리가 멀면 사는 데 불편할 테니. 사람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거주공간인 아파트뿐 아니라 아이들이 다녀야 할 학교와 사람들을 치료해야 할 병원도 필요하다.

화재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할 소방서와 치안을 유지할 경찰서도 지어야 하고.

이렇듯 도시를 재건축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독일에는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있으니.

내가 할 일은 이들에게 대략의 구상과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적절한 지원을 해주는 것뿐.

쓸데없이 이것저것 간섭하다가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십상이니 진짜 업무는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베를린 재건축 계획은 히틀러가 구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그리고 템펠호프 공항을 조사해봤는데, 활주로를 더 늘릴 필요가 있을 것 같소. 기술이 발전할수록 민항기들의 크기도 커질 텐데 지금의 길이만으로는 다소 부족할지 모른다는 예측이 나왔거든. 그 점도 염두에 두길 바라오.” “알겠습니다.”

템펠호프 공항 외에도 늘어날 민항기 수요를 감당하려면 새 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서 공항도 하나 더 짓기로 했다.

한창 회의가 진행 중일 때 모형에서 뭔가를 발견한 아데나워가 질문을 던졌다.

“이건 뭡니까? 웬 빈공간에 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아아. 이거는..

아데나워의 손가락이 가리킨 것은 ‘기념비’였다. 2차대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승전 기념비.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인데요.”

“눈치채셨습니까?”

슈페어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기념비는 영국인들이 만들었습니다.”

"영국인들이요? 아니, 그 보다 만들었다니 그건 무슨 뜻입니까?”

“영국인들이 만든 것을 그대로 옮겨왔으니까요.”

아데나워가 가리킨 기념비의 정체는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기념비였다.

트라팔가 광장에 자리한 영국 국립미술관은 루프트바페의 폭격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박살났지만, 넬슨 기념비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비록 기념비 꼭대기의 넬슨 동상은 상반신이 날아가고 하반신만 남았기에 떼어냈지만,

처음에 나는 넬슨 기념비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넬슨 기념비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들은 괴링이 대영 전역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넬슨 기념비를 베를린으로 가져와 전시하자는 구상을 내놓았고,

힘러, 헤스, 슈페어가 여기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괴링과 사이가 나쁜 괴벨스도 이 건은 마음에 쏙 들었는지 열렬한 찬성을 표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네만?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두는 게”

“예? 이미 독일로 옮겼는데 말입니다.”

“.………..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넬슨 기념비는 기념비를 둘러싼 4개의 사자 동상과 함께 독일로 옮겨진 지 오래였다. 이게 바로 선조치 후보고냐.

하여간 행동력 하나는 더럽게 빨라요.

이미 독일로 옮겨놓은 것을 도로 갖다 놓으라고 하기에도 뭣했기에 괴링의 주장대로 넬슨 기념비를 2차대전 승전비로 바꿔 베를린에 세우기로 했다. 넬슨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는 국가수리 동상을 새로 올려서. 여기까지 설명해주자 아데나워는 묘한 얼굴이 되어 나를 흘끗 쳐다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1945년 3월 25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 궁전

2차대전 중 가장 큰 우여곡절을 겪은 나라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프랑스였다.

2차대전이 시작될 당시에는 연합국이었다가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추축국이었으니.

4주 만에 전쟁에서 패하고 알자스-로렌과 해군 전력을 독일에 넘기고 막대한 배상금까지 물어야 했던 프랑스에 미래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게 웬걸. 추축동맹에 참여한 프랑스는 동부전선 파병과 영국 본토 전역에 대한 참전의 대가로 패전국이 아닌 독일의 동맹으로 대우받기 시작했고 전후 영국이 가진 아프리카 식민지들까지 배당받았다. 패전국에서 승전국으로의 지위 상승이라는 대역전극을 이뤄낸 것이다.

그랬기에 영국이 항복했을 때 프랑스인들은 진심으로 ‘승전’을 축하했다. 더 이상 프랑스는 패전국이 아니게 되었다면서.

비록 알자스-로렌은 영원히 독일 땅으로 남게 되었지만, 패전국 딱지를 가릴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프랑스가 꿈꾼 장밋빛 미래는 절대 이뤄지지 않았다.

아프리카에 자리 잡은 영국령 식민지들은 에드워드 8세와 오스왈드 모슬리의 괴뢰정부가 아닌 캐나다의 망명정부를 지지했고, 독일이 약속한 배당금을 챙기기 위해 국경을 넘어 진격해오는 프랑스군과 격전을 벌였다. 여기에 더해 일본이 패망한 후에도 인도차이나는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는 각기 독립된 새 정부가 세워졌고 프랑스는 여기에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피는 피 대로 흘리고도 정작 보상은 하나도 받지 못하자 페탱은 그제야 자신이 독일에, 히틀러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이 흘릴 피를 덜기 위해 프랑스 청년들을 대신 끌어들였다. 아프리카 식민지라는 달콤한 미끼를 내걸어 프랑스가 자발적으로 전쟁에 뛰어들게 했다.

노원수는 손을 떨림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1차대전으로 프랑스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 560만 명이 넘는 프랑스 젊은이들이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 죽거나 다쳤다.

그로 인한 피해가 회복세에 접어들기도 전에 재차 전쟁이 터졌고 프랑스는 패배했다.

2차대전에서 입은 피해는 앞서 1차대전에서 피해보다 적었지만, 그 대신 프랑스는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노원수는 프랑스에 부과된 짐을 줄이고 프랑스의 상처 난 자존심을 봉합하기 위해 독일과 손을 잡았다.

그것이 프랑스를 위한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과거의 적과 손을 잡아서라도 그는 프랑스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프랑스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프랑스는 약속한 대가를 받지도 못했고, 수십만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밀어 넣었다.

아프리카에서 치르고 있는 전쟁은 진전이 없었다. 라발이 독일로 날아가 리벤트로프와 만나 독일의 지원을 부탁했지만, 독일은 그건 프랑스의 일이지 독일의 일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자신의 손으로 프랑스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자괴감에 페탱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역시 보슈 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습니다.”

국방장관 욍치제는 분에 겨워 씩씩거렸다. 독일의 승리를 위해 프랑스군 수만 명이 러시아와 영국에서 죽거나 다쳤다.

그러나 독일은 프랑스가 아프리카의 영국 식민지를 차지하는 것에 어떤 군사적 도움도 주지 않았다.

그나마 무기는 팔아주었기에 프랑스군도 독일제 병기로 무장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프랑스 정부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순 날강도들 같으니…………!”

“더욱 큰 문제는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지에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는 겁니다.”

라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재떨이에 쌓인 꽁초 더미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위태했지만 라발은 기어코 꽁초 하나를 더 쑤셔 넣었다. “인도 독립에 자극받은 식민지인들 사이에서 자기네들도 독립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본거지인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에서도 독립 여론이 확산되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독립하자는 주장이 터져 나온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로 볼 때 언제 그런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망할 아랍 놈들. 프랑스에 입은 은혜도 모르고 이제와서 뒤통수를 치려고 하다니.”

욍치제는 이를 갈았지만 페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군 중에서 식민지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 작지 않았다.

프랑스군 전체 병력의 40% 이상이 식민지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분쟁에서도 식민지인 부대들이 주로 투입되었다.

당연히 사상자 대부분은 식민지인들. 대우는 시원찮고 자신들처럼 같은 식민지 신세였던 국가들이 연이어 독립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자, 지금까지 차별 대우에도 프랑스의 지배를 묵묵히 받아들였던 식민지인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페탱도 이러한 점을 꿰뚫어 보았다. 식민지인들의 반발을 억지로 찍어누르려고 하다간 영국이 인도에서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될 뿐이다.

인도차이나도 잃은 마당에 기존의 식민지들까지 모두 잃게 된다면 프랑스는 완전히 열강의 대열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것만큼은 기필코 막아야 했다.

“욍치제 장관.”

“예, 각하."

“현재 교전 중인 전 부대에 교전 중지와 철수 명령을 내리게.”

페탱은 결심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라도 지키기로. 그것만이 프랑스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었다.

“이미 우리는 인도차이나를 잃었네. 여기서 아프리카까지 잃으면 끝장이야. 일단 식민지인들의 마음을 돌리는 게 우선일세. 입에 뭐라도 쑤셔 넣어서 독립 생각을 못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욍치제는 충격받은 얼굴이 되어 부르르 떨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저들에게 어디까지를 허용해주실 생각이십니까?"

라발이 조심스레 물었다. 라발의 질문에 페탱은 심사숙고하다가 이내 억지로 토하듯이 말했다.

“우선은 식민지인들의 의견부터 들어봐야겠지. 나는 프랑스를 유지하기 위해선 뭐든지 할 생각이네. 독립만 하지 않겠다면, 들어줄 수 있는 것들은 들어줘야겠지.”

페탱은 미개한 식민지인들이 독립해 자신들만의 국가를 가지는 것보다 위대한 프랑스의 깃발 아래 있는 것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나은 선택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참으로 프랑스 중심의 꽉 막힌 사고방식이었지만, 최소한 그는 다른 프랑스인들과 다르게 식민지인들의 생각은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독립하는 것보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게 더 낫다고 여기게끔 생각의 전환을 유도해야지. 총칼을 이용해 억지로 누를 생각부터 하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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