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acy of the Empire part 1
<제국의 유산 (1)>
1945년 1월 1일
일본 도쿄 연합군 최고사령부
다사다난했던 1944년이 끌나고 새해가 시작되었다.
1년 전에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아서 그런지 새해가 되어서도 흥겨운 기분이 덜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새해를 맞이하는 장병들의 얼굴에선 기쁨과 흥분이 넘쳐홀렀다.
비록 고향에서 가족, 연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땀내 나는 남자틀끼리 모여서 새해를 맞이했지만 더 이상 죽을 염려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장병들은 대단히 기렸다.
갓 입대한 병사들이 아닌, 이전에 입대해 전장에서 싸운 병사들은 대부분 올해 안으로 제대하여 고향으로 톨아가게 될 터였다
그 힘든 전쟁도 끝났는데 새해를 일본에서 보내게 된 것이 무슨 대수냐! 살아남았으면 됐지!
해피뉴 이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표지판을 본 맥아더는 열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옳겼다
*부관. 커피 좀 내오게. 아주 뜨걸게."
"예. 각하."
히로히토를 천황의 직위에서 끝어내리고 재판에 회부한 미국은 일본인들의 강한 반발을 우려해 40만 명이나 되는 미군을 일본 전역에 배치했다
미군 외에 영연방군, 국민혁명군, 프랑스군, 네덜란드군까지 다 합치면 그 수는 무려 50만 명에 육박했다.
그런데 막상 반란은커녕 시위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자, 미국은 역으로 당황했다
이게 그 일본이 맞나? 항복을 거부하며 포로가 될 바에는 할복하거나 카미카제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전슬로 연합군을 층격에 빠뜨린 그 일본이 막상 이럴게나 암전할 수 있다니.
블론 히로히토를 폐위하고 재판에 회부한 것에 대한 함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체포대상에서 제외된 하급 장교들과 관료들이 천황 폐하를 보위하지 못했다며 스스로의 배를 가르고 맥아더에게 재판의 부당함과 천황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투서 수만 장이 날아들었다.
맥아더 본인도 천황을 굳이 사형에 처하는 것보다 살려서 꼭두각시로 쓰는 것을 더 선호했기에 정부의 방침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라교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쳤으면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애초에 일본이 내건 조건도 천황제의 유지이니 약속을 어긴 것도 아니었다.
일본이 내건 항복조건 어디에도 천황 히로히토에 대한 처벌 면제 조항은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히로히토를 사형에 처하든, 종신형을 선고하고 평생동안 감옥에 가두든 일븐에 천황제가 유지되는 한 미국은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일본도 그걸 알기에 반란 같은 적극적인 저항 대신 할복이나 투서 같은 소극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리라.
당연하지만 일본인 몇 명이 죽는다고 해서 미국이 히로히토에 대한 처벌을 철회할 일은 없었다.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미국 청년 2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와 실종자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늘어나고.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겨우 일본인들의 집단자살 쇼에 히로히토를 풀어준다? 상식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을뿐더러 그런 짓을 했다간 백악관이 분노한 시민들의 손에 의해 불타오르리라. 미국 시민 전체의 몇 %가 히로히토에 대한 기소가 옳은 것이냐는 물음에 찬성을 표했는지 알게 된 맥아더는 더 이상 히로히토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백악관의 주인 자리를 자신의 인생 최후의 목표로 노리고 있는 그는 매 순간 발언에 신중함을 기울였다.
히로히토를 살려둬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가 국민의 반감을 사면 자신만 손해다.
어떤 국민이 자신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한 이에게 표를 주겠는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이제부터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는 현재 미국인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해군은 공은 자신들이 세우고 막상 언론과 국민의 주목을 사실상 독차지한 맥아더에게 단단히 화가 났고, 틈만 나면 열심히 씹어댔지만, 맥아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해군 물개들이 육군인 자신을 시기하는 것엔 이미 익숙해진 터였다. 질투하려면 마음껏 질투하라지.
능력 면에선 리히와 니미츠는 맥아더에게 전혀 꿀리지 않았지만 둘은 임팩트가 부족했다.
반면, 언론플레이에 능했던 맥아더는 필리핀에서의 고군분투와 뉴기니 방어선 사수, 필리핀 탈환과 최종적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자신의 공적을, 언론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대중들에게 맥아더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반면 맥아더처럼 정치에 대한 야망이 있는 아이젠하워는 사실상 미국인들에게 잊힌 상태였다.
그가 지휘를 맡았던 유럽전선은 미군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완전한 압승이라는, 미국 입장에서는 신통치 못한 결과로 끝맺어졌다.
자연스레 유럽전선에선 최고 지휘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대중들에게 패장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그가 얼마나 노력했고 어떤 마음고생을 했는지는 대중들은 알지 못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관심 밖의 일에 대해선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법이다.
“아이크. 불쌍한 친구 같으니.”
지포 라이터로 시가에 불을 붙이면서 맥아더는 조용히 뇌까렸다.
아이젠하워가 능력에 비해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저조한 것과 심지어는 그가 무능력한 군인으로 인식되는 것이 맥아더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아이젠하워를 부관으로 두면서 오랜 시간 동안 그를 지켜봐 온 맥아더는 아이젠하워가 국민의 인식과 달리 대단히 능력이 뛰어난 군인임을 알고 있었다(정작 아이젠하워는 맥아더의 부관으로 계속 있어야 했던 것에 넌더리를 쳤지만). 단지 상대가 너무 강력했을 뿐.
오히려 아이젠하워니까 그만큼 버틴 것이지 아이젠하워가 아닌 다른 장군이 유럽을 맡았다면 영국은 더 빨리 무너졌을 것이다.
나라면 결코 영국을 나치들에게 내주지 않았겠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 맥아더는 그렇게 확신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한 곳은 일본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이 벌어졌던 아시아 각지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인도.
영국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식민지이자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가장 넓은 땅덩어리와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는 전쟁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게릴라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본토가 점령당하고 왕실과 정부가 캐나다로 피신한 와중에도 영국은 끝까지 인도를 포기하지 못했다.
나치가 세운 괴뢰정부의 총리 모슬리는 인도의 독립을 허용했지만, 인도 총독부는 자신들은 런던 괴뢰정부가 아닌 토론토의 망명정부의 지시만 듣는다며 이를 무시했다. 다시 말해 인도는 결코 독립시켜 줄 수 없다. 이 말이었다.
가뜩이나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인도인들은 독립 따윈 꿈도 꾸지 말라는 말에 격분했고, 게릴라에 협조하는 인도인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인도에서 늘어만 가는 게릴라들과 싸우기 위해 영국은 전쟁이 끝난 지금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젊은이들을 인도로 보내고 있었다.
방금 맥아더도 영국군 지휘부와 회의를 마치고 은 길이었다.
“자기들은 인도에 가야 하니, 자기들 몫까지 우리가 맡아 달라고? 참나.”
아무리 함께 싸운 동맹군이라곤 하나 맥아더는 영국군의 이러한 행보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역겹기까지 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식민지에 집착하는 꼴이라니. 영국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 못 한 것은 아니었다. 독립하는 즉시 인도가 추축국에 가입하여 미국과 적대하는 입장에 들어서리란 것은 명백했다.
그렇기에 미국도 영국의 행보를 굳이 막지는 않았다.
중국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인 인도가 추축국이 되면 독일은 인도양과 아시아로 진출할 수 있는 단단한 발판을 얻게 된다.
독일 해군의 잠수함들이 대서양을 넘어 인도양으로,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쏟아지는 것을 막으려면 반드시 인도가 필요하다.
'자기들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말이지'
이러한 영국의 논리에 백악관은 인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수수방관했다. 맥아더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제아무리 총칼로 막는다고 해도 인도의 독립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2억 5,500만 인도인들을 모조리 다 죽이고 빈 땅만 남겨놓을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교전을 멈추고 인도에서 철수해야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인도는 틀림없이 독일과 손을 잡을 터이니 각종 지원을 미끼로 동맹을 맺거나, 최소한 중국처럼 미국에도 우호적인 국가로 남을 수 있도록 미국이 개입해야 했다. 그런데도 멍청한 대통령은 ‘우리 영국 하고 싶은 거 다 해!'만 반복하고 있으니.
맥아더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었다. 영국을 내버려 둘수록 인도의 반영, 반미 감정만 증폭된다는 것을 어째서 모르는 건가!
3월부터 대통령이 될 예정인 듀이만큼은 윌리스와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이 독일과의 냉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
“커피입니다.”
"고맙네.”
***
식민지라고 해서 모두가 인도와 같은 신세가 된 것은 아니었다.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가 해냈습니다!”
“우아아아아!!!"
“아웅 산! 아웅 산!"
아웅 산은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의 뒤에선 자랑스러운 버마의 국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인도처럼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는 인도를 중시한 영국에 의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인도 유지에 필요한 병력도 빠듯한 마당에 버마까지 손댈 여유가 영국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독립하는 조건으로 버마 내 항구와 기지를 영국군이 사용하는 것에 일절 토 달지 않는다는 계약을 했지만, 그래도 꿈에 그리던 독립을 이뤄냈으니 아웅 산은 만족했다.
버마 외에도 독립의 행운을 누릴 수 있던 국가는 여러 개 있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인도네시아.
실제 역사에서 인도네시아는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4년 동안이나 자신들을 통치하려는 네덜란드인들에게 맞서 싸워야 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본토가 독일에 점령당하고 네덜란드 정부는 캐나다에서 더부살이하는 덕택에 인도네시아는 5년 일찍 독립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국민 여러분, 먼저 국민의례를 진행하겠습니다.”
“독립 만세!"
“수카르노! 수카르노!”
네덜란드 망명정부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본토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캐나다로 도망칠 때 따라온 병력과 포로 신분에서 해방된 네덜란드 동인도군만으로는 드넓은 인도네시아를 재정복하고 이를 유지할 수 없었다. 애초에 미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당신네 식민지를 다시 정복할 수 있게끔 우리더러 도와달라?”
“가뜩이나 인도 문제로 머리 아픈데 당신들까지 이럴 거요?”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정당한-"
“듣기 싫소. 그런 소리나 할 거면 나가시오.”
인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은 네덜란드의 요청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기껏 해주고 있는 지원도 재고하기 전에 네덜란드령 기아나와 서뉴기니에서 만족하라고.
자유 프랑스의 처지도 네덜란드와 다르지 않았다. 아프리카 식민지는 모두 본토에서 통제 중이고 유일하게 자유 프랑스가 닿을 수 있는 인도차이나는 이미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로 찢어지고 말았다. “썩을 양키 놈들.”
영국에 이어, 캐나다에서 더부살이 중인 드골은 속이 타들어갔다.
왕국으로 독립한 라오스, 캄보디아와 다르게 베트남은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다.
공산주의자 호치민이 베트남 독립을 선언하는 광경을 촬영한 필름을 보며 드골은 얼마 피우지도 않은 장초를 잿떨이에 거칠게 비벼껐다.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의 태평양, 아시아 진출을 발판이자 알제리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다.
그런데 멍청한 양키들은 프랑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미개한 식민지인들이 위대한 프랑스의 품에서 벗어나 멋대로 설치도록 방치했을뿐더러 심지어 빨갱이들이 정부를 세우도록 후원까지 했다! 호치민과 미국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태평양 전쟁 동안 미국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 미국 전략사무국)은 일본에 대항한다는 명목하에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을 지원했고 미국이 지원한 무기와 의약품은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이 일본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이 항복하자 공산주의자들은 일본이 세운 괴뢰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들만의 새 정부를 세웠다. 당연히 여기에 프랑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프랑스의 영토에 빨갱이들이 설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모자라 제 놈들과 손을 잡다니!”
윌리스와 만난 드골은 격하게 항의했다. 기관총마냥 쉬지 않고 말들을 쏘아대는 드골을 뚱한 눈으로 쳐다보던 윌리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언성을..
"......예?"
“언성을 높이지 마시오. 드골 장군.”
월리스는 일부러 장군에 힘을 주어 말했다.
“프랑스가 미합중국의 동맹이지만 프랑스만 미합중국의 동맹인 것도 아니오.”
“아니 뭔………….”
“베트남인들도 미국의 동맹이오. 그런데 어째서 동맹국이 동맹국을 공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이오?”
윌리스의 말을 들은 드골은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콧대 높은 프랑스인인 드골에게 월리스의 말을 듣고 버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이 베트남을 장악하도록 놔두자는 말씀입니까?”
“안 될 거 뭐 있소? 미국은 독일, 일본과 싸우느라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소. 다가올 독일과의 대결에 집중하려면 먼 극동 촌구석에서 낭비할 여력 따윈 없소.”
“지금 실수하는 겁니다. 대통령! 저 비열한 빨갱이들이 베트남에만 있는 줄 아십니까? 머잖아 전 세계에 암약한 빨갱이들이 들고일어나 온 세상을 빨갛게 물들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도-”
“그만. 장군에게 들을 얘기는 다 들은 것 같소. 이만 나가주시구려.”
그때의 굴욕을 떠올린 드골은 주먹에서 피가 날 정도로 세게 탁자를 내리쳤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역시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아군은 없었다. 동맹도 어디까지나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제 밥값을 충분히 할 수 있을 때만 동맹이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말만 동맹이지 식충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비록 본토는 독일에 점령당했어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같이 세계 곳곳에 위성국이 있는 영국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자유 프랑스는 알거지나 다름없었다.
수중에 남은 판돈이라곤 기아나와 남태평양 여기저기에 있는 자잘한 섬들이 전부.
미국은 노골적으로 자유 프랑스를 하대했고 히틀러에게 조종당하는 페탱의 프랑스를 프랑스 유일의 합법 정부로 인정했다.
자유 프랑스를 그나마 챙겨주는 나라라곤 같은 처지의 망명정부들뿐.
“위대하지 않은 프랑스는 프랑스가 아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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