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ce of hypocrisy

 <위선의 대가>

1943년 8월 25일

독일 베를린 프린츠 알브레히트가 8번지 게슈타포 본부

프리덴탈 특무대에 의해 생포된 처칠은 곧장 독일로 이송된 뒤 독일 최고의 의사들에게서 정성스러운 치료를 받았다.

애당초 부상의 수준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가 아닌지라 현재 처칠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다. 정신적인 건강은 그 반대겠지만.

처칠의 망연자실한 얼굴을 보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더 큰 재미를 위해서 꾹 눌러 참았다.

그 대신에 처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게슈타포 본부 지하실에 처박아두고 24시간 내내 철저히 감시하라고 단단히 일러뒀다.

프린츠 알브레히트가 8번지에 자리한 게슈타포 본부 지하실은 ‘유보트’라는 은어로 불렸다.

물이 항상 고여있어서 축축한 데다 지하실이란 특성상 자연적인 빛은 전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또 바닥과 벽이 고무로 되어있기 때문에 벽이나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자살을 기도할 수도 없었다.

지하실에 갇힌 처칠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초췌해 보였다.

하기야 그토록 증오하던 독일군의 포로가 됐으니,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겠지.

내가 지하실 안에 들어섰을 때, 처칠의 양손은 의자에 결박되어 있었다.

그의 뒤에는 서슬 퍼런 눈빛을 한 건장한 체격의 게슈타포 요원 두 명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하일 히틀러!"

“지크하일."

처칠은 나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이내 표정을 바꿔 죽일듯한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다른 건 몰라도 깡다구 하나는 인정해줘야 할 것 같군. 내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런 표정을 지어 보일 수 있다니.

괜히 실제 역사에서 그 많은 실책을 저질러놓고서 총리직을 두 번이나 해먹은 게 아닌 모양이다.

“허허.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오겠소.”

통역을 맡은 게슈타포 요원이 영어로 통역해서 처칠에게 들려줬다. 처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영국 총리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자네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나가 있게.”

“예, 총통 각하.”

통역을 제외한 전원이 방으로 퇴장하자 처칠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무슨 속셈이냐고 묻고 싶은 표정인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하고 싶은 말이 제법 많은 것 같은데.”

"......"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오. 여기까지 왔는데 기왕이면 서로 속 편하게 말해봐야 미련이 없지 않겠소?"

“...... 당신은.."

"오....

드디어 입을 열었군.

하기야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고 주적으로 삼았던 대상이 자기랑 얘기 좀 해보자는데 이대로 입만 꾹 닫고 있는 것도 힘들었을 테지. 이때가 아니면 언제 나랑 대화해볼 수 있겠냐 싶기도 할 테고.

“당신은 어째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어째서 전쟁을 일으켰냐니.”

“말 그대로요. 당신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알고 싶어서 묻는 말이오.”

“질문이 잘못된 것 같군. 나는 결코 전쟁을 먼저 일으키지 않았소. 폴란드가 도발해오지 않았다면 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요.”

내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처칠은 발끈했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당신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폴란드를 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해오지 않았소!" 처칠의 목소리가 커지자, 그의 통역 겸 감시를 맡은 게슈타포 요원의 얼굴도 덩달아 험악해졌다.

도끼눈을 뜬 게슈타포 요원이 자신을 노려보자, 처칠은 잠시 흠칫했지만, 질문은 철회하지 않았다.

“뭔가 오해가 있구려. 나는 결코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소."

“그럼 폴란드 침공 전에 보인 급격한 군사력 증강은 대체 뭐요?”

“그야 당연히 폴란드와 프랑스의 공격으로부터 독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소. 그러는 영국도 영독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급격히 군사력을 증강하지 않았소? 피차일반인 것 같소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네 독일이 먼저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니 그런 것이오.”

“말이 안 되는군. 우리도 폴란드의 선제공격 징후가 포착되었기에 우리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한 거요. 당신네 영국이 하면 정당하고 우리 독일이 하면 안 된다는 말 아니오. 말을 할 거면 하나만 합시다.

그리고 폴란드가 독일을 선제공격했다는 사실만큼은 당신도 보고받아서 잘 알 텐데? 설마 이것까지 부정하는 거요.”

“포, 폴란드 정부는 자신들은 결코 독일에 선제공격한 적이 없다고 했소.”

처칠이 말했다. 말을 더듬거린 것을 보니 자신도 자신이 한 말에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야 당연하겠지! 그치들이 스스로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하겠소? 폴란드가 먼저 독일을 공격했고, 독일은 폴란드의 공격으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했을 뿐이오.” 

“폴란드를 합병하고 폴란드인들을 독일인들의 노예로 만든 것이 필요한 조치란 말이오???"

처칠이 반론했지만, 그 반론에 대한 파훼법은 생각해둔 지 오래다.

“그렇소.”

“아니 그 무슨-”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그렇다면 내 반대로 묻겠소? 우리 독일이 폴란드를 합병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여기면서 영국은 왜 아일랜드를 수백 년간 지배했던 것이오? 인도, 버마, 아프리카는 또 어떻고? 그리고 지나가는 폴란드인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시오. 우리 독일은 당신네 영국인들이 아일랜드인들이나 인도인들에게 대하던 것보다 훨씬 인도적으로 폴란드인들을 대우하고 있으니 말이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일까. 처칠은 애써 코웃음을 치며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척을 했다.

다 티 나, 이 인간아. 어디서 되지도 않는 구라를 치고 있어. 딱 봐도 제대로 긁혔구만.

“그리고 나는 독일의 적이 폴란드지, 어디까지나 영국과 프랑스가 아니라고 여러 차례 말했소. 우리가 먼저 제안한 강화협상을 단칼에 거절한 게 누구더라? 설마 이제 와서 그건 체임벌린과 달라디에의 짓이라는 변명은 하지 않길 바라겠소.”

"......."

말을 못 하는 것을 보니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강화협상을 무시하고, 중립국이었던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선제공격한 것도 모자라 전임자였던 핼리팩스가 겨우 맺은 강화조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도 당신의 짓이 아니었소? 덕분에 자칭,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은 멸망해버리고 말았지. 내 장담하건대 영국이 다시는 이전과 같은 힘을 가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오.

바로 처칠, 당신 덕분에 말이지.”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늙은 불독 같은 처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내 하나만 물어봅시다. 당장 아시아에서 일본과 전쟁을 하기도 바쁠 텐데, 어째서 독일을 공격하기로 한 것이오?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지. 심지어 영국이 공격을 감행했을 무렵에 국방군은 모스크바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소. 누가 봐 도 전쟁의 흐름이 우리에게 흐르고 있었는데 왜 그런 상황에서 참전을 결행한 것이오?”

“몰라서 묻소? 당신네 독일인들이 러시아인들까지 쓰러뜨리고 나면 유럽에서 독일을 대적할 나라는 영국밖에 남지 않잖소. 당신네가 정말로 소련을 점령하여 힘이 더 커지기 전에, 우리가 전쟁에서 이길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있을 때가 바로 그때라서 참전 한 거요. 당신이 모스크바를 점령해 스탈린의 항복을 받아낸 후라면 너무 늦을 테니까.”

그랬던 것이었군. 내가 잠자코 있자 처칠은 이때다 싶었는지 참았던 말들을 쏟아냈다.

“우리 대영제국은 예로부터 유럽의 질서와 균형을 수호해왔소. 그랬기에 나폴레옹이 부상했을 때는 프랑스에 맞서 싸웠고, 카이저의 군대가 벨기에 국경을 넘었을 때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지.

반대로 묻겠소. 당신의 독일이 러시아까지 집어삼켜 유럽을 손에 넣은 상태에서 영국을 가만히 놔둘 것 같소? 어림없는 소리. 틀림없이 체코슬로바키아에 그랬던 것처럼 복종과 공물을 요구했겠지! 그런 미래가 뻔히 보였기에 나는 전쟁을 결행한 것이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나는 결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소.”

또 구라치고 있네. 얼굴에 후회가 가득하구만 이제 와서 무슨 헛소리야. 허세도 적당히 부려야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소만 그래도 전쟁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독일의 지배에 순응하는 것이 영국과 영국인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였을 텐데. 그리고 스탈린의 항복을 받아낸 후에 나는 귀국에 강화를 제안했소. 그런데도 당 신은 한사코 내 제안을 거절했지. 그 결과는 말할 필요가 딱히 없을 테고.

적어도 당신의 결정으로 전쟁터에서 죽어간 당신네 병사들과 국민에게 일말의 죄책감은 없는 거요?”

“.………그들의 희생은 대영제국의 번영과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소. 내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해서 그들의 희생을 헛수고로 만들었다는 것뿐이지.”

아이고, 그러셨습니까?

“말은 잘하는군. 당신네 국왕과 왕비를 죽인 것도 영국을 위해서였다고 말할 생각이오?”

“..………지금 놀리는 거요?”

“그렇소. 놀리는 거 맞소만?”

"Ol. O...!"

그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기 전에 나는 먼저 선수를 쳤다.

“국왕과 왕비가 참 안 됐소. 다른 것도 아니고 믿었던 자기 국민의 손에 죽게 되다니. 허 참. 내 살다가 찰스 1세보다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영국 국왕과 왕비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소.”

“……………겨우 전쟁에서 한 번 이긴 걸로 너무 자만하는군. 착각하지 마시오! 대영제국은 결코 한 번의 패배로 영원히 추락하는 나라가 아니니. 비록 지금은 독일의 지배를 받아도 언젠가 당신네를 우리의 영토에서 몰아내고 유럽과 세계의 질서를 주름잡는 날 이 올 것이오. 반드시!”

“아, 그러시오? 그거참 기대되는군. 그날이 빨리 찾아오기를 당신과 영국인들을 위해 기도하겠소.”

내가 이죽거리자, 처칠은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거 아시오? 우리가 전쟁에서 질뻔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 말이오. 국방군이 폴란드를 공격하고 있을 때, 그리고 폴란드를 정복한 1939년의 겨울에 독일은 아직 영국, 프랑스와 일전을 치를 준비가 되지 않았지. 만약 그때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지크프리트선으로 밀고 들어왔다면 국방군은 금방 라인강까지 밀려났을 거요.

하지만 당신네는 그러지 않았지.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만약 당신네 장군 중 한 명이라도 선제공격을 주장했다면 나는 꼼짝없이 총통관저에서 내 머리에 스스로 총알을 박아넣어야 했을 거요.”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처칠에게 당시 국방군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처음에는 내 말에 관심 없는 척을 하던 처칠은 설명이 끝나고 나자, 얼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소.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지. 그때 프랑스군이 철군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대로 베를린으로 밀고 들어왔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말이오." “퍽이나 자랑스럽겠군. 할 말은 그것뿐이오??

“아니. 아직 더 있소?"

“멋대로 떠드시오. 더 이상 당신이 하는 자랑에 관심 있는 척하는 것도 이젠 힘드니까.”

“그렇소? 허어, 그래도 영국의 총리였으니 영국을 어떻게 처리할지 미리 귀띔하려고 왔는데……….”

“뭐, 뭐요?"

쉽다. 쉬워. 의도가 빤히 보이는 도발에도 바로 넘어가고, 내가 아는 처칠이 맞나 싶을 정도다.

“왜? 조금 전까지 내가 하는 말에 관심 없다고 본인 스스로 말하지 않았소?”

"..."

처칠은 증오 반, 애원 반이 섞인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이렇게 알기 쉬워서야 원.

여기서 그를 더 놀려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 이상 놀리다간 처칠이 화병으로 쓰러질지 모를 일이었다. 아직 남은 일이 많은데 벌써 그렇게 되면 안 되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아시오?”

“……………나를 바보로 아는 거요?”

처칠은 지금 장난하느냐는 식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그 말에 숨은 의미를 짐작하곤 얼굴이 굳었다.

“서, 설마·····…?”

처칠의 표정이 굳어져 가는 것을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정답. 당신이 오헝제국을 해체한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의 나라를 조각조각 나눌 생각이오. 인도는 독립할 것이고 영국이 가진 아프리카와 아시아 식민지들은 추축국들에 적당히 배분될 거요. 북아일랜드는 원래 아일랜드인들의 땅이었으니 아일랜드 몫으로 돌아갈 거고 브리튼 섬에는 4개의 나라가 들어설 것이오.”

"잠깐, 잠깐.4개라니? 그, 그게 무슨 말이오, 대체?"

나는 손가락을 쫙 펼친 다음 하나씩 접어가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는 병아리반 선생님처럼.

“첫 번째로 잉글랜드 공화국. 수도는 런던이고 독일의 절친한 친구인 모슬리에게 수장을 맡길 생각이오. 두 번째는 스코틀랜드 공화국. 잉글랜드와 분리된 자신들만의 나라를 가지고 싶은 스코틀랜드인들을 위한 나라요. 세 번째는 웨일스 공화국. 스코틀랜 드의 경우처럼 독립된 웨일스를 원하는 웨일스인들을 위해 만들 생각이오.”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처칠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외계어라도 되는 것마냥 처칠의 눈에는 물음표로 가득했다.

“대부분 솎아내긴 했지만, 아직도 독일에는 카이저 시대에 향수를 가진 친구들이 적지 않아서 말이오. 그런데 독일에는 더 이상 왕족이 필요하지 않단 말이지. 맞지 않소? 할 줄 아는 게 왕족이랍시고 꺼드럭거리고 다니는 것들이 제3제국에 무슨 도움이 되 겠소이까?"

“잔말 말고 얼른 얘기하시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거, 성질 급하기는. 아무튼, 요약하자면 30년 전처럼 카이저가 다스리는 나라를 원하는 치들이 많다 이거요. 그렇다고 독일을 다시 군주정 국가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 꿩 대신 닭이라고 콘월에 1914년의 독일을 그대로 만들기로 했소. 이름은 호엔촐레 른 왕국과 콘월 왕국 둘 중에 하나로 할 생각이오.”

“뭔 개 같은.."

“뭔 개 같은 논리냐고 하겠지.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오. 콘월에 사는 영국인들 중 신생 독일계 왕국에서 살겠다고 희망하는 자들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잉글랜드 공화국으로 옮긴 후, 독일에서 지원자들을 받아 콘월로 이 주시키면 되니까.

그리고 한동안 영국의 관리는 스칸디나비아와 아일랜드, 인도인들에게 맡길 생각이오. 그 친구들이 영국에 쌓인 게 하도 많은지라 몸이 근질근질하거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딱 당신네 영국인들이 했던 것까지만 할 생각이니-" 

“마, 말도 안 돼! 저, 정말로 당신은-

이성을 잃은 처칠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통역이 처칠의 목을 잡고 손에 힘을 줬다.

순식간에 목이 졸린 처칠은 말은커녕 호흡조차 힘든지 연신 켁켁거렸다.

“그쯤 해두게. 안 그래도 불쌍한 양반인데.”

“알겠습니다.”

손에 힘이 풀리자 처칠은 참았던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얼굴의 절망만큼은 그대로였다.

“저,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이오? 정말로 대영제국을 갈가리 찢어놓을 생각이란 말이오?”

“그렇소. 안 될 거 뭐 있소? 연합국도 전쟁이 끝난 후에 오헝제국을 퍼즐처럼 찢어놓지 않았소. 영국이 예외가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으로 걸어갈 때까지 처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머리가 이상해지기라도 한 걸까? 하긴 그럴 만도 하겠지. 특히 그 누구보다 대영제국에 몰입했던 처칠이라면 충격이 남들의 몇 배는 클 것이다.

“그래도 너무 심란해하지는 마시오. 나중에 영국인들이 잘 반성하는 것 같으면 60년이나 70년 뒤에 다시 통일시켜주라고 유언장에 남길 테니 말이오. 물론 그 반대라면………… 더 잘게 쪼개는 수밖에.”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처절한 절규가 들렸다.

처칠은 이제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 동안 죽음보다 더 끔찍한 절망 속에서 살아갈 것이었다.

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실현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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