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h to ruin part 8
<파멸의 길 (8) >
버크힐의 방어선이 돌파당하던 무렵, 퍼싱 60대가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 추가로 도착했다.
하지만 도착하고 보니 이미 영국은 패망 직전이었고 연합군은 퇴각하기 바쁜 상황.
온갖 고생을 하며 바다를 건너온 퍼싱을 도로 배에 실어서 보낼 수도 없었다.
당장 전선에는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할 전차가 필요했고, 가까운 아이슬란드로 병력과 피난민들을 태워 나르는 게 우선이었다.
영국에 도착한 퍼싱들은 독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즉시 열차에 실려 최전선으로 향했다.
최전선에 도착한 퍼싱은 각 주요 지역마다 배치되어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1시 방향에 적 전차! 거리 720, 철갑탄!”
"장전 완료!"
“조준 완료!"
전차장의 입에서 발사 명령이 떨어지자, 포수는 발사 페달을 힘껏 밟았다.
날이 잔뜩 선 쇳소리가 울리고, 전면장갑에 구멍이 뚫린 헷처에서 전차병이 꾸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헷처는 무게 대비 장갑과 화력이 뛰어난 편이었지만, 내부가 좁아 승무원들이 밀집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적탄에 관통당하면 승무원들이 그대로 몰살당하는 일이 흔했다. 장갑을 관통한 철갑탄에 의해 조종수, 포수, 탄약수가 몰살당하고 전차장만 살아서 탈출한 것이었다.
헷처의 75mm 주포는 퍼싱의 전면장갑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퍼싱의 탄약수는 적탄이 전차의 장갑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다음 포탄을 장전했다.
"장전 완.."
철갑탄을 약실에 밀어 넣고 폐쇄기가 닫히려는 것을 확인하는 찰나 전차에 충격이 전해졌다.
불꽃과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자욱한 연기가 전차 내부에 가득 찼다.
“크하악!"
“탈출, 탈출해!"
만신창이가 된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조종수와 전방사수는 포탄이 장갑을 관통하자마자 즉시 사망한 탓에 전차에서 나오지 못했다.
“명중!"
“한 대 잡았다!”
정면에서 퍼싱을 격파한 판터의 승무원들이 만세를 불렀다.
같은 75mm 구경이어도 판터의 주포는 퍼싱의 차체 전면을 1km 거리에서 관통하는 게 가능했다. 티거도 500m 안까지 접근하거나 경심철갑탄을 사용하면 퍼싱의 장갑을 충분히 뚫을 수 있었다.
-콰아앙!
“놈을 잡았습니다!”
전면장갑이 관통당하고 탄약이 유폭해 포탑이 차체와 분리된 퍼싱을 가리키며 크라머는 주먹을 흔들었다.
카리우스가 껄껄 웃으며 크라머의 공을 치하했다.
“양키들도 별거 아니구만?"
판터, 티거의 대항마로서 미군이 영국에 가지고 온 퍼싱은 고화력, 중장갑의 전차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미군에게 분명 필요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대단히 유용한 물건이었냐고 하기에 퍼싱에는 여러모로 단점이 많았다. 특히 그놈의 엔진이.
“적이 우측으로 돈다!”
“후진해!"
“더, 더 빨리!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이게 최대입니다. 중사님!”
복장이 터질 것만 같은 속도에 전차장이 조종수를 채근했다.
하지만 조종수도 할 말이 있었다. 이게 최대 속도인데 여기서 뭘 더할 수 있단 말인가?
퍼싱이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사이 퍼싱보다 기동성이 뛰어난 4호 전차는 순식간에 퍼싱의 측면으로 이동해 포탄을 날렸다.
측면을 관통당한 퍼싱은 어김없이 불을 내뿜으며 주저앉았다.
장갑과 화력 모든 면에서 4호 전차는 퍼싱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기동성을 이용해 측면을 노린다면 퍼싱이라도 격파할 수 있었다.
전차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전차를 모는 전차병들의 실력도 전차전에선 상당히 중요했다.
제아무리 훌륭한 전차를 타도 전차를 모는 승무원들이 경험과 훈련이 부족하면 전차의 성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반면, 전차의 성능이 다소 떨어져도 승무원들의 기량이 높다면 성능의 차이를 뒤집을 수 있었다.
1940년과 1941년의 독일군 전차병들은 적보다 뒤떨어지는 성능의 전차를 타고서도 기량으로 싸워 승리를 쟁취했고, 1944년 아라쿠르 전투에서 셔먼에 탑승한 미군 전차병들은 햇병아리 독일군이 모는 판터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
특히나 독일군의 장기는 기갑전력을 이용한 기동전.
미군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독일군의 포위망에 갇혀 사방에서 공격당하다가 괴멸하거나 전차를 유기하고 도주했다.
퍼싱이 기동 중에 엔진이 고장 나 멈추면 전차병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차를 버렸다.
느긋하게 엔진을 수리할 시간도 없었고, 본토의 훈련소에서 간단한 정비 몇 개만 배운 전차병들에게 미완성품이나 다름없는 엔진의 수리를 맡겨봤자 의미 있는 결과를 거둘 수 없었다.
물론 엔진에 이상이 생겨 전차가 버려지는 경우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엔진이 멀쩡하고 연료와 탄약이 충분해도 밀려나는 전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멀쩡한 전차들이 버려지는 일도 많았다.
원칙상 전차를 유기할 경우 적군이 노획해서 사용할 수 없도록 파괴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멀쩡한 전차도 버리고 퇴각하는 병사들에게 그런 원칙이 지켜질 리가 없었다.
“이거 좀 봐라. 양키들이 또 우리에게 선물을 놔두고 갔어.”
“병신 새끼들. 전쟁하러 온 놈들 맞아?”
미군이 유기하고 간 전차, 트럭, 화포, 탄약무더기와 마주칠 때마다 독일군은 큰소리로 웃으며 미군을 비웃었다.
그들은 인물은 인물은
1943년 8월 19일
영국 포트윌리엄
포수 조 에킨스 하사의 파이어플라이는 과수원에 매복하고 있었다.
아군의 좌측을 담당한 캐나다군과 폴란드군은 한참 전부터 전투 중이었다.
우악스러운 포성과 다다다다 울리는 총성이 전투의 격렬함을 증명해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킨스는 자신의 중대가 고기 방패로 내던져졌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퇴각하는 아군의 후미를 보호하고 적의 진군을 막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최후방에 저지선 하나 없이 퇴각하다간 추격하는 적군에게 따라잡혀 학살당하기 딱 좋을 테니까.
이미 전쟁에서 졌다는 기류가 파다하게 돌고 있는 탓에 병사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도 옆 중대에서 2명의 탈영병이 발생했다. 심지어 한 명은 대위였다. 병사들을 지휘해야 하는 장교가 탈영하다니.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대영제국의 군대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여기서 할리우드 영화처럼 기적적인 승리를 낸다고 하더라도 결과를 뒤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자신이 여기서 임무를 포기하고 도망친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기에 그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의 앞에도 독일군의 전차가 나타났다.
올 것이 왔군."
전차장 고든 하사의 말에 에킨스도 덩달아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에 나타난 놈은 악명 높은 티거. 작전계획에 따라 근처에 매복한 11중대의 셔먼들이 일제히 발포했다.
그러나 티거는 75mm 포탄과 76mm 포탄에 난타당하면서도 끄떡없다는 듯 거대한 궤도를 굴리며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전진했다. “지금이다. 발사!"
고든 하사의 구령에 맞춰 에킨스는 발포했다. 17파운더 철갑탄이 티거의 차체 측면을 때리자, 엔진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명중입니다!”
“한 발 더 쏴!”
탄약수가 포탄을 장전하면 에킨스는 장전이 끝나는 대로 바로 주포를 쏘았다.
엔진에 난 화재는 서서히 커져 어느새 전차 전체를 뒤덮었다. 최후의 한 발이 작렬하자 해치가 날아가면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타이거 격파.”
기뻐할 틈은 없었다. 한 대의 티거를 격파하기 무섭게 곧바로 다른 놈들이 나타났으니.
뒤에 나타난 놈들은 숲 언저리에 자리 잡은 셔먼들과 거리를 두고 포격을 퍼부었다.
몇 대의 셔먼에 88이 명중하여 폭발이 일어났다. 어느 76mm 셔먼은 포탑에 직격당해 포수와 전차장의 상체가 하체와 분리되었다.
에킨스가 매복한 과수원에도 포탄이 날아들었다. 사과나무가 포탄을 맞고 부서지면서 에킨스가 탑승한 파이어플라이의 포탑을 때렸다.
가지들에 매달려 있던 사과들이 와자작 부서지고 나뭇잎과 가지가 관측창과 포수용 조준경을 가렸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조종수! 뒤로 후진해!”
후진하여 자리를 빠져나오자 시야를 가렸던 나뭇가지들이 전차에서 떨어지며 다시 시야가 트였다.
“우측으로 이동한다! 서둘러!”
“우측으로 가면 적들에게 훤히 보일 텐데…………”
에킨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고든 하사의 결심은 확고했다.
“여기 계속 있어봤자 죽도 밥도 안 돼. 제리들 시선이 다른 곳에 팔렸을 때 최대한 빨리 기동해서 놈들의 후면으로 이동한다.” 조종수는 전차장의 지시대로 우측으로 이동했다. 셔먼과 티거들이 포화를 주고받으며 장갑을 뚫고 뚫리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
"살려줘!" 끼아아아아아-!!!!"
에킨스의 등은 땀으로 축축해졌다. 자신도 저 많고 많은 비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자신이 저 괴물들을 잡지 못하면 저 괴물이 자신을 잡아먹을 터.
죽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살기 위해선 죽음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정지!"
고든 하사의 예상은 적중했다. 독일군은 정면의 셔먼들과 싸우느라 후방경계를 게을리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에킨스의 조준경에는 티거들이 가득 찼다.
“맨 왼쪽에 있는 놈부터 처리한다! 철갑탄 장전!"
탄약수가 철갑탄을 밀어 넣자 철커덩 소리와 함께 폐쇄기가 닫혔다.
"조준 완료!"
“발사!"
에킨스가 쏜 포탄은 티거의 차체 후면에 명중. 엔진을 망가뜨려 전차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후방에서의 공격을 눈치챈 티거가 황급히 포탑을 돌렸다. 하지만 티거의 포탑은 회전 속도가 느렸고, 설상가상으로 엔진이 박살 나 차체를 회전시킬 수도 없었다. "장전 완료!"
“한 발 더! 이번엔 포탑을 노려라!”
“알겠습니다!"
에킨스는 고든 하사의 지시대로 티거의 포탑 측면을 노렸다.
이제 힘껏 페달을 밟으려는 그때 우측에서 날아온 포탄 한 발이 그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잘했다, 볼. 조금만 늦었어도 우리 전우들이 골로 갈 뻔했어.”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비트만이 파이어플라이의 출현을 조금만 늦게 알아차렸어도 큰일이 날 뻔했다. 뒤에서 파이어플라이가 튀어나올 줄 예상이나 했을까.
아군의 정신이 정면에 팔린 틈을 타 고속으로 기동해 후면을 잡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반대로 영국군도 측면 경계를 게을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실수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포탑이 날아가 차체만 덩그러니 남은 에킨스의 파이어플라이 옆으로 독일군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
1943년 8월 20일
영국 라우드햄
런던을 함락시킨 후 독일군은 서둘러 북으로 진군하느라 후방의 정리는 동맹군에게 맡겼다.
추축군은 후방에 주둔하며 레지스탕스들의 습격으로부터 철도, 다리 등 중요거점들을 방어하고, 진격과 포위, 섬멸의 와중에 운 좋게 떨어져 나와 섬멸되지 않은 영국군 잔당들의 소탕을 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게는 소대, 크게는 대대 단위의 영국군이 영국 전역에 흩어져 추축군과 술래잡기를 벌였다.
그레이엄이 속한 증대도 혼란의 와중에 용케 짱박히는 데 성공한 부대 중 하나였다.
독일군이 런던에서 버밍엄으로, 버밍엄에서 맨체스터로, 맨체스터에서 글래스고로 쭉쭉 밀고 나가는 동안에도 중대는 독일군의 눈을 피해 시골구석에 조용히 짱박혀서 지냈다.
이따금씩 역과 철로, 다리 등은 주요 목표물들에 대한 기습공격도 감행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나거나 미미한 성과만 냈다.
전투를 벌일 일을 최대한 피하다 보니 탄약 자체는 크게 부족함이 없었지만, 식량은 얘기가 달랐다.
다행히 처음 한동안은 인근 주민들의 지원으로 크게 곤란하지 않았지만, 주민들도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이내 지원은 끊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추축군의 보급행렬을 습격했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지 곧 추축군의 호위병력이 강화되면서 엄두도 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독일군은 스코틀랜드 끝자락에 다다랐다고 한다. 정부는 이미 캐나다로 도주했다고 하며 처칠은 독일군에게 생포되었다.
처칠이 독일군의 포로가 된 현재 지금은 부총리였던 애틀리가 ‘영국’의 총리였다. 오타와의 방송국에서 애틀리는 대영제국은 결코 독일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힘을 모아 대반격에 나서 영국을 탈환할 것이라는 성명문을 발표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드물었다.
당장 지금 있는 이 땅도 지키지 못해 멀리 캐나다까지 도망친 주제에 탈환은 무슨 탈환이란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원.
추축군은 사흘에 한 번꼴로 삐라를 뿌리며 아직 투항하지 않고 숨어있는 영국군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전쟁은 끝났다. 의미 없는 저항을 멈추고 항복하라. 그래야 고향에 돌아갈 수 있지 않겠나.
고향. 그 두 글자가 그레이엄의 마음을 송곳처럼 후벼팠다. 그의 고향인 리버풀에선 격전이 일어나 도시가 초토화됐다고 들었다.
그레이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가족들이 무사히 피난을 갔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것뿐이었다.
당장이라도 가족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는 군인이었기에 꾹 참고 명령에 복종하며 기약 없는 도망자 신세를 이어나갔다.
그들은 희망을 안고 버텼다. 미군이 독일군을 물리치고 반격을 가해 브리튼 섬에서 몰아내리라는 희망을.
그러나 이제 그 희망이 사라져 버린 지금 그에겐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레이엄은 마지막으로 총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입대할 때, 교관이 했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총을 자신의 신체처럼 소중히 여겨라. 어떠한 경우에라도 총을 놓치지 마라.
“살다 살다 이런 순간도 오는군요.”
총기를 분해해 부품 하나하나씩 조각내며 홉킨스가 뇌까리듯이 말했다. 그레이엄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이 총을 잡을 날이 올는지 모르겠네.”
“매국노처럼 들릴지 몰라도 저는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에 전쟁은 한 번이면 충분하거든요.”
홉킨스가 말했다. 그레이엄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 끝났으면 나가지."
그레이엄은 미리 준비해둔 하얀 식탁보를 나무막대에 묶어서 만든 백기를 들었다. 백기를 들고 걷는 그의 뒤로 마흔 명의 병사들이 일렬로 늘어졌다.
**
1943년 8월 24일, 최후의 영국군 잔존병력이 투항함으로써 브리튼 섬에서의 전투는 완전히 종료되었다.
이날, 국방군은 ‘영국 전역’의 종료를 선언했다.
영국에서의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 윌리스와 영국 망명정부의 총리 애틀리는 이것이 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독일과의 전쟁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고, 실제로도 대서양에서 독일 해군과 연합군 해군 사이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영국에서의 참패로 미국 전역에 만연한 반전 분위기가 더욱 거세게 타오른 것 또한 사실이었다.
시위대는 영국이 저리된 마당에 언제까지 전쟁할 생각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백악관은 강화조약 체결을 주장하는 시위대의 목소리에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언제까지고 같은 전략으로 밀고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독일의 도시들은 축제 분위기나 다름없었다.
가장 강력했던 적 영국을 드디어 꺾었다는 기쁨, 그리고 이제 전쟁은 끝났다는 안도감에서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독일 깃발을 흔들며 승리를 마음껏 즐겼다.
“지크 하일!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승리의 기쁨에 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독일인의 노래를 부르자 모든 사람이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곧 베를린 시민 전체가 독일인의 노래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독일, 세계 위에 군림하는 독일.
방어와 공격을 할 때도 형제처럼 함께 서 있다네. 마스에서 메멜까지
에치에서 벨트까지!
독일, 세계 위에 군림하는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부르는 독일인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노랫소리는 서서히 작아지다가 곧 가위로 잘라낸 것처럼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이고, 처음 뵙겠소이다.”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마주 앉은 남자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눈빛 좀 봐라. 부모의 원수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는 쳐다보지 않을 거다.
“아이고, 무서워라………… 고 할 것 같소? 내가?”
내가 이죽거리자 안 그래도 붉은 처칠의 얼굴이 더욱 붉게 변했다. 이마에도 핏줄이 불거져 나왔고.
그런데 이걸 어쩌나. 하나도 안 무서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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