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Clouds part 4
< 먹구름 (4) >
쿨리크의 계획에 반란은 존재하지 않았다.
NKVD 체포조가 그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체포조를 처형한 뒤 쿨리크는 머리를 굴렸다. 일단 당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있기로 했지만, 이것이 오래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쿠이비셰프에선 앞서 보낸 체포조가 연락 한 통 없는 것을 수상히 여기고 곧 다음 체포조를 보내거나 노보시비르스크의 군 병력과 연락을 시도할 것이었다. 쿨리크 일당에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사흘에서 나흘 정도.
쿨리크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병력과 물자부터 헤아렸다.
소련군 대다수 병력이 새로 형성된 자유 러시아와의 국경에 몰려있었기에 후방인 시베리아에는 병력이 얼마 없었고, 넓이가 넓이인지라 가장 가까운 부대 사이의 거리가 몇십km나 되었다. 무장은 전장에서 도태된 구형 무기들이 대다수고 신형 무기는 드물었다.
차량도 부족해서 일부 부대는 트럭이 한 대도 없고 말들이 끄는 썰매만 있었다.
그러나 이들 외에 쿨리크가 가진 패는 없었다.
그리고 제아무리 무장이 형편없는 수준이라 해도 10만 명이 넘는 병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제압할 수 없다.
무기가 제아무리 낡았다고 한들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은 아니었고 전차와 항공기 전력도 미약하게나마 있으니 잘만 활용한다면 충분히 제값을 할 수 있을 터였다.
동시에 쿨리크는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에서 일어나는 소수민족들의 사보타주에 집중했다.
자신이 반란을 일으키고 여기에 소련 체제에 불만이 많은 소수민족까지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서기장이 보낸 진압군과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계산을 마친 쿨리크는 ‘시베리아 혁명정부’의 수립 및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적백내전이 끝난 지 20년 만에 러시아에서 다시 내전이 일어났다.
***
1943년 10월 28일
소련 쿠이비셰프
“쿨리크! 쿨리크! 이 이 망할 개새끼가아!!!"
스탈린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록 처형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한때나마 그가 가장 믿었던 쿨리크가 감히 반란을 일으키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먼저 그를 배신한 것은 자기 자신임에도 스탈린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맹세코 이놈만큼은 절대로 편하게 죽이지 않겠다고.
태어난 것을 후회할 만큼, 최악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제발 살려달라고가 아닌,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그런 다음 전 인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몸으로 교수형에 처해버리겠노라고 스탈린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그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가장 먼저 시베리아에서 일어난 쿨리크의 반란을 진압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자면 당연히 병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소련과 국경을 접한 자유 러시아, 정확하겐 자유 러시아 뒤에 있는 독일이 걱정이었다.
시베리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국경에 배치된 정예사단들을 뒤로 빼는 순간 독일은 소련을 공격할 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선 장군들도 스탈린과 의견을 같이했다. 독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국경에 배치된 정예사단들만큼은 가장 나중에 움직여야 한다.
우선은 후방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단들부터 움직여야 한다.
동시에 스탈린은 자신이 가장 믿을만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히 유능한 이에게 반란 진압을 맡기고자 했다.
가장 유능한 이들은 정예사단들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국경에 있어야 했다.
말리놉스키, 바투틴, 추이코프, 안토노프 등이 그랬다. 이들을 제외하고 남는 사람들은………….
‘하필이면 이 인간들뿐이군.”
보로실로프와 부됸늬로 좁혀지자, 스탈린은 인상을 썼다.
둘 다 직급만 높았지, 실력은 1943년 기준으로 일선 사단장 수준에 불과했다. 적어도 스탈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실력과는 별개로 이 둘은 스탈린이 가장 믿을만한 자들이었다.
보로실로프는 스탈린의 몇 안 되는 절친이었고 부든늬는 대숙청 시기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할 뻔한 적이 한 번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에게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이며 그가 하는 말에 철저히 복종했다. 동시에 보로실로프처럼 스탈린의 얼마 없는 친구이기도 했다.
이들이라면 쿨리크에게 붙어 자신에게 칼끝을 겨누지는 않을 것이다.
스탈린은 다소 떨떠름한 심정으로 이 둘을 반란 진압군으로 임명했다.
“보로실로프 동무가 진압군 총사령관, 부든늬 동무가 부사령관을 맡으시오."
“예, 서기장 동지!”
“반드시 저 반역자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목을 가져오지 말고 반드시, 반드시 생포해서 내 앞에 데려오시오. 죽이는 건 어쩔 수 없을 때의 일이오.”
스탈린은 절친들의 아부성 멘트에 짜증을 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아부가 아니라 결과였다.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결과.
“이번에는 반드시 본인들의 가치를 입증해주길 바라오. 그걸 위해서 동무들을 뽑은 것이니. 아시겠소?”
“예.”
“명심하겠습니다.”
스탈린의 경고에 보로실로프와 부됸늬는 얼음처럼 굳었다.
만약 쿨리크에게 패배하거나 그를 놓친다면 그들 역시 티모셴코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지 몰랐다.
그래도 스탈린은 시베리아로 가는 두 절친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약속했다.
“극동에 있는 사단들도 반란 진압에 투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2차 대숙청으로 생겨난 빈자리들을 메꾸기 위해 상장으로 진급한 말리놉스키가 말했다.
말리놉스키의 두꺼운 손가락이 만주국과 몽골 인근을 가리키자, 스탈린이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사단들은 일본을 막기 위해 배치된 사단들이 아닌가?”
“맞습니다. 하지만 서기장 동지. 지금 일본은 태평양에서 미국과 싸우기 바쁩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선전했던 중국에서조차 장제스의 군대에 밀리고 있죠. 지금 우리가 만주 국경에 배치된 사단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뺀다고 한들 일본은 감히 우리를 공격 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옆집을 도둑질하려는 인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말리놉스키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일본이 정말로 소련을 공격할 생각이 있었다면 독일군이 모스크바에 입성했을 때 블라디보스토크를 폭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러지 않았고, 극동에서 어떤 불온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일본의 상황이 대단히 나쁘다는 말이기도 했다.
스탈린은 말리놉스키의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국경 순찰 및 일본군 감시에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하고 전 병력을 시베리아에 투입하기로 했다.
극동에 배치된 사단들은 구식 병기로 무장하고 있지만, 이는 쿨리크의 반란군도 마찬가지이니 크게 문제가 될 리 없지 싶었다.
마지막으로 독일.
시베리아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독일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반란은 독일도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당장은 이렇다 할 계획이 없겠지만 반란 진압이 늦어질수록 독일이 소련을 공격할 가능성은 커질 것이었다.
“서부 국경에 배치된 전 병력에 비상 경계령을 내리시오. 국경 너머에서 적군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된다면 바로 보고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
1943년 10월 29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소련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반란을 일으킨 당사자는 쿨리크.
똥별 중의 똥별이자 실제 역사에서 스탈린의 뒷담을 하다가 걸려 숙청된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나는 대단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웃집에 반란이라는 큰일이 났는데 이웃된 노릇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
나는 즉시 비상 회의를 열었다.
동부전선 방비를 책임지는 만슈타인과 프랑스에 있던 룬트슈테트까지 독일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은 모두 참석했다. 그리고 다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총통 각하.."
“지금 당장 소련을 공격해야 합니다.”
“소련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소련을 공격하면 국방군은 우랄산맥까지 진격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빨갱이들을 유럽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겁니다!”
나는 대답 대신 동석한 샤흐트의 표정을 살폈다.
“샤흐트 장관의 생각은?"
“끄응………….”
경제회복이 먼저라며 전쟁은 결사반대했던 샤흐트조차 이번에는 표정이 달랐다.
소련을 멸망시킬 절호의 기회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아무리 경제가 우선인 그조차 무조건 반대만을 외치기 힘들 터.
토트와 슈페어조차도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소련을 완전히 끝장낼 기회가 오겠냐며 찬성했고 풍크도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면 자신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미리 말해두는데 나도 경제회복이 최우선과제라는 샤흐트의 주장에는 적극 동의한다.
소련이 몰락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군을 축소하고 그 유지비용을 민간경제에 돌려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말에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경제가 중요하다곤 하나 독일의 최우선 주적을 멸망시키거나 최소한 유럽에서 완전히 몰아낼 기회가 있다면 마땅히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만큼 경제회복을 늦어질 테고, 더군다나 소련으로부터 공급받는 원자재와 아직 한참 남은 배상금은 한 푼도 못 받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소련의 멸망 혹은 후퇴는 독일의 안전을 위해서 꼭 필요했다. “브라우히치 원수. 지금 우리가 소련을 공격한다면 우랄산맥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겠소?”
당연히 나는 독일의 인력만으로 소련 전역을 장악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 러시아를 비롯해 추축국들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드넓은 소련의 아시아 영토들까지 모조리 다 점령하는 건 명백히 무리다.
이 점은 장군들도 동의하는 바.
따라서 나는 국방군의 진격 목표를 우랄산맥까지로만 세웠고 이에 맞춰 계획이 수립되었다.
카이텔과 브라우히치는 밤새도록 소련 침공 계획을 수립하느라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씌웠다.
그러나 일생일대의 목표인 유럽 통일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목소리에선 힘이 넘쳐흘렀다.
“지금 자유 러시아에 배치된 국방군 및 무장친위대 사단, 그리고 자유 러시아군과 추축동맹군 전체 병력을 모두 동원한다면 60일 이내에 우랄산맥까지 도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방금 나눠드린 계획서를 보시면-” 브라우히치가 말한 60일이라는 추정치는 소련군의 결사 항전 및 보급의 지체, 그리고 소련의 겨울까지. 모든 점을 고려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이 모든 악조건 및 돌발상황까지 가정하면 두 달로는 무리고 그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지 않겠나 싶었지만, 유럽 러시아의 완전한 장악이 아닌 우랄산맥까지의 도달을 목표로만 잡으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배포된 계획서에는 우랄산맥까지의 진군 외에도 이후의 작계도 적혀 있었다.
우랄산맥까지 진군해 유럽 러시아를 완전히 장악한 후 소련과 강화하되, 소련이 강화를 거부할 경우 중앙아시아로 진군한다.
이란과 협력해 남쪽에서도 공세를 감행, 최종적으론 중앙아시아에서 소련군을 완전히 몰아낸 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처럼 친독 괴뢰국을 설립한다.
중앙아시아인들이 현재 지속적으로 소련의 통치에 저항하는 바, 국방군의 진주(進走)를 환영할 것이며 이들에게 독립을 약속하고 정부수립을 지원하면 주민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중앙아시아 공략 후 시베리아 진군까지 계획에 잡혀 있었지만, 이 경우 독일의 보급능력이 한계에 도달할 게 명백했기에 장기간의 휴식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브라우히치는 내다보았다.
중앙아시아 공략 역시 독일의 보급능력 밖의 일이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성공 가능성이 있는 것에 비해 시베리아는 누가 봐도 무리였다.
그러나 중앙아시아까지 넘어간 시점에서 소련이 협상을 거부하고 전쟁을 택할 리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개전 시기에 대해 의논하려는데 회의가 시작된 이래로 그답지 않게 조용하던 만슈타인이 별안간 손을 들었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얼굴이었다.
“만슈타인 원수. 말씀하시오."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배포된 계획서에는 열흘 내로 자유 러시아군 및 아군의 1차 준비가 완료된다고 적혀 있는데 그럼 그때가 개전일이 되는 겁니까?”
“그렇지 않겠소?”
“열흘이라는 시간도 촉박하지만, 그때까지는 최전선의 소련군도 아군의 공격에 대비해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을 겁니다. 적들이 우리에 대한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질 즈음에 공격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최소 2주에서 3주가량은 적들이 아군의 공격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을 시기이니 뒤로는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하되, 국경에서의 움직임을 최대한 피하고, 적들이 안심하고 전방의 병력을 빼서 후방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투입하는 그 시기에 맞춰 공격하자.
는 게 만슈타인의 주장이었다.
또, 그가 보기에 반란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날 가능성이 작다고 한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공산당에 의해 억압받고 유배된 소수민족들이 이번 반란을 보고 덩달아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니 그들이 모두 봉기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공을 개시하는 것이 최선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전략이라고 만슈타인은 주 장했다.
“적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을 시기를 피하고 적의 긴장이 풀어질 즈음에 공격하자는 것이로군. 흐음………….
“총통 각하. 하지만 이 경우 적들이 반대로 아군의 공격에 더 대비할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본인이 세운 계획보다 만슈타인의 주장에 더 신경 쓰자, 브라우히치는 기분이 상했는지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브라우히치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만슈타인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고, 다른 장군들도 만슈타인의 주장에 공감했다.
기갑총감 구데리안이 절친 만슈타인의 주장에 가장 먼저 지지를 보냈고 룬트슈테트도 만슈타인의 주장을 적극 지지했다.
“솔직히 말해서 소련을 침공할 만반의 준비를 하는데 열흘만으로는 부족하지. 만슈타인 원수의 말이 맞는 것 같소만..
“공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랄산맥까지 진격하려면 공군의 도움이 필수적일 텐데 열흘 내로 모든 준비를 마치는 건 힘듭니다. 24시간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 해도 말이죠.”
“뭐, 개전 시기가 언제든 간에 우리 해군은 딱히 할 일이 없으니………….”
화룡점정으로 샤흐트와 풍크도 소련을 공격하기 전에, 소련이 보내오는 원자재와 배상금은 최대한 땡겨서 받는 게 좋다며 사실상 만슈타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브라우히치를 지지하는 이는 그와 함께 작전계획을 세웠던 카이텔, 파울루스와 요들뿐.
그리하여 소련 침공 계획 ‘청색 작전’의 개시일은 연기되었다.
원래라면 올여름에 진행되었을 청색 작전은 소련과의 강화가 이루어지면서 실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소련이 분란에 휩싸이면서 청색 작전이라는 명칭은 부활할 수 있었다.
나는 기왕이면 쿨리크가 더욱더 날뛰어서 스탈린의 속을 박박 긁어놓길 바랐다.
물론 쿨리크의 능력을 생각하면 쉽지 않겠지만, 그가 하루라도 더 버틸수록 소련은 점점 약화될 것이고 아군의 진격속도는 빨라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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