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g of war part 8
< 줄다리기 (8) >
힘러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유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힘러 개인의 권력욕도 그렇지만 전형적인 몽골리안의 외형을 가진 그가 나치당에서 그 누구보다 금발벽안의 순수 아리아인 혈통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SS와 사이가 좋지 않은 국방군은 물론이고 나치당과 심지어 SS 내부에서 조차 비웃음거리였다.
2차대전이 발발하고 SS가 전선 각지에서 전공을 세우면서 덩달아 힘러의 입지 또한 커졌지만, 여전히 그를 아니꼽게 보는 시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중에는 힘러가 직접 발탁한 인재, 금발의 짐승 하이드리히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하이드리히는 독일에서 가장 힘러를 아니꼽게 여겼다.
툭하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이니 순수 아리아인의 혈통을 유지해야 하느니 뭐니 하면서 자신은 거울 하나 제대로 보지 않는 얼간이 같은 놈.
친위대는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임무완수를 위해 냉혹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막상 자신은 총살집행 장면을 보곤 놀라서 실신 직전까지 가기만 한 놈이 무슨 SS 제국지도자란 말인가. 저런 놈팽이에겐 SS 제국지도자는커녕 SS 소위 직함조차 아까웠다.
그것이 하이드리히의 힘러에 대한 평가였다.
하지만 힘러는 계급상으로나 서열상으로 하이드리히가 감히 어떻게 못 하는 위치에 있었고, 힘러에 대한 총통의 신임도 확고했다.
물론 총통조차도 힘러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려고 하면 바로 컷하고 그를 인정사정없이 야단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러는 총통의 측근 직위를 유지했다.
하이드리히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러만큼이나 권력을 향한 관심과 욕심이 가득한 하이드리히에게 힘러의 존재는 자신의 출세를 방해하는 장애물이자 반드시 치워버려야 하는 눈엣가시였다.
하이드리히는 모든 일에 신중했지만, 스탈린처럼 신중함이 다소 지나친 나머지 일을 그르치는 성격도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한 번 결심한 일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전쟁도 거의 끝나가고 있겠다, 여기서 더 망설인다면 힘러의 위상만 올라가고 그를 제거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으니, 놈을 죽이려면 지금이 적시일 터. 힘러가 당장 죽는다고 쳐도 SS 수장 직위가 하이드리히에게 바로 돌아갈 확률은 낮았다.
비록 명예직이긴 하나 SS 제국지도자 직함을 달고 있는 베르히톨트와 마우리스가 있으며 영국에서 제7군 사령관으로 있는 하우서도 있다.
하지만 하이드리히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 전쟁에서 자신과 SD가 세운 공이 얼마나 되는데(그 공 상당수가 총통이 알아낸 정보에 의한 것이지만) 마땅히 자신에게로 오지 않겠는가. 자신이 아니면 이 방대한 SS 조직 전체를 이끌고 나갈 여력이 다른 이들에게는 없다고 하이드리히는 단언했다.
설사 하우서나 다른 이에게 55 수장 직위가 돌아간다고 한들 55에서 본인의 입지와 권한이 대단히 커지리란 사실은 뻔한 일
그리고 하우서는 나이가 많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머잖아 은퇴하여 고향으로 톨아갈 나이.
디트리히는 계급은 높지만, 군사학에 무지한 싸움꾼에 불과하고 아이케 역시 디트리히보다 조금 뚝뚝할 뿐 SD와 게슈타포를 손에 진 자신만큼의 정보력이 없고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즉, 자신이 차기 SS 수장이 되는 건 명백한 운명이다.
SS 수장이 된다는 것은 곧 차기 총통 후보직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의미했다
이미 총통은 차기 총통으로 괴링을 지명했고 괴링 외에도 괴벨스, 헤스, 토트, 리벤트로프, 프리크 등 쟁쟁한 상대들이 많지만 하이드리히는 자신도 이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혹시 아는가.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예를 들면 점령지의 게릴라나 반나치주의자들의 사보타주라던가-스스로의 실수로 총통의 신임을 잃는다면 틀림없이 자신에게도 순서가 울 것이다.
당장 SD는 정보 수집을 맡아 전쟁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니 말이다.
제3제국 총통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그것이 하이드리히의 최종 목표였다
그러자면 우선 저 추잡한 힘러부터 제거해야 한다.
"준비는 다 된 것이겠지?"
"물른입니다."
하이드리히의 물음에 그가 신임하는 부관 플루트카르트 SS 대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확신하나?"
"그 몽골리안은 루턴에 도착하기 전에 하느님을 먼저 만날 겁니다."
"좋아. 아주 좋아."
하이드리히는 소리 없이 웃었다.
***
힘러는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총룡처럼 담배를 지득하리만큼 험오했고 체질이 허약해 술도 잘 마시지 못했다.
어쩌다 솔을 마시기라도 하면 설사를 해서 도수가 가장 낮은 술을 한두 잔만 마셨다.
그런데 또 정작 고대 게르만 인들이 즐겨 마셨다는 벌꿀솔에 대해선 관심이 많아 SS 전체에 벌꿀술을 많이 마실 것을 장려하기도 했다.
제7군 사령부 인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힘러는 독일 최고의 벌꿀술 장인들이 만든 벌꿀술들을 통에 가득 담아 수송기에 실었다.
작전을 세우는 것에 집중해야 할 장교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힘러는 별로 줄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계도 마구 돌리면 고장이 나듯이 사람에게도 실 름을 줘야 했다.
이 벌꿀술틀은 업무에 피로감을 느끼는 장교틀에게 좋은 선불이 될 것이다.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나?"
"5분 후에 루턴에 도착합니다, SS 제국지도자님."
"금방이겠군."
국가방위군에서 퇴역한 하우서를 SS로 데리고 온 이는 힘러였다.
병정놀이나 한다는 육군의 비웃음을 의식한 힘러는 SS 전투부대의 육성을 위해 국가방위군에서도 실력 있는 장군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하우서에게 SS 가입을 권유했다.
힘러의 권유를 받아들인 하우서는 브라운슈바이크 sS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무장친위대의 전신이 되는 SS 전투부대의 훈련을 교육했다.
하우서의 지도 아래 허우대만 멀쩡한 어증이떠증이 집단이라는 평을 받았던 SS는 국방군과 구별되는, 특일에서도 손에 꼽히는 정예부대로 재탄생했다.
오늘날 무장친위대의 명성은 사실상 하우서 혼자서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힘러는 무장친위대를 국방군을 뛰어넘는 독일 최고의 정예부대로 육성한 하우서를 극찬하면서도 자신과 같은 SS 제국지도자로 진급한 그를 경계했다.
오늘 제7군 사령부 방문도 하우서가 자신의 하급자이며 sS 수장은 바로 자신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힘러와 하우서의 관계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제 실력만 믿고 오만방자하게 구는 하이드리히 놓과 비교하면 하우서는 선녀 그 자체였다.
하우서도 힘러의 계획에 반기를 든 적이 여러 번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엄연한 상급자로 대우하고 하이드리히처럼 노골적으로 권력욕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SD와 게슈타포를 틀어진 하이드리히의 오만방자함은 이제 하늘을 찔렀다.
심지어 그는 엄연한 자신의 상급자인 힘러도 무시하고 총통에게 직통으로 보고를 울리기까지 했다.
힘러가 이에 대해 불평하면, 사안이 심각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말로 힘러를 조룡하기까지 했다.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총통께서도 그놈이 어떤 놈인지 확실하게 아셔야 하는데 이거 참.
Ju252의 바퀴가 활주로에 닿았다. 활주로 밖에는 하우서와 디트리히, 그리고 제7군 사령부 소속 참모들이 힘러를 마중 나와 있었다.
문이 열리고 이등식 계단이 설치되었다. 수송기에서 내리는 힘러에게 하우서와 제7군 참모틀이 오른손을 틀어 경례했다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
지금쯤 그 역겨운 몽골리안은 다진 고기조각이 되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겠지.
팔자 좋게 하품하다가 영문도 모르는 사이에 저승문 앞으로 배송되었을 힘러가 저승에서 당황해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총통 각하한테서 훈장이라도 받았어요?"
“그런 건 아냐. 하지만 그보다 더 기쁜 일이야."
“당신이 그러니까 저도 기대가 되는데요?”
하이드리히는 리나의 도움을 받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샬롱 키티를 방문해 창녀들과 침대 위에서 질펀하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하이드리히지만 아내 리나와의 관계는 좋았다. 하이드리히 이상의 바람둥이인 괴벨스가 아내 마그다와의 관계가 최악인 것과 정반대였다.
“아빠, 아빠!”
"출근해요?"
“그래, 아빠 출근한다.”
하이드리히에겐 4명의 자식이 있었다.
클라우스, 하이더, 질케, 마르테. 독일의 적들로 판단된 자들에겐 한없이 사납고 냉혹한 하이드리히였지만, 그도 가족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쏟았다. 클라우스와 하이더는 하이드리히에게 같이 공놀이를 하자고 자주 졸랐다.
하이드리히가 조만간 휴가를 내서 가족 모두 놀러 가자고 말하자 둘은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기뻐했다.
“이만 가볼게. 잘하면 오늘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수고해요. 얘들아,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다녀오세요!”
"그래. 엄마 말 잘 듣고 나중에 돌아오면-"
하이드리히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고성능의 폭약이 든 폭탄이 폭발해 그를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덩달아 그의 가족들도 함께.
***
1943년7월 20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하이드리히가 내 뒤를 캐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부터 나는 녀석을 언젠가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똑이나 충성심도 의심스러운 녀석이라 언제까지 써먹어야 하나 생각해왔는데 선까지 넘으니 더더욱 살려둘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전시라 블필요한 사태를 일으켜 지휘 상의 공백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니 하이드리히의 제거는 전쟁이 끝난 뒤로 미를 생각이었다.
녀석이 험러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힘러를 수송기째로 날려버리고 이를 연합군의 소행으로 위장하는 것이 하이드리히의 계획이라고 플루트카르트가 내게 말했다.
힘러가 죽고 공석이 된 sS 수장 직위가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놈이 강력하게 확신하고 있다는 정보와 함께.
어처구니없는 녀석 갈으니라고.
힘러가 내게꼭 필요한 인재라고 하면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오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
힘러가 알게 된다면 참으로 섭섭해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사실인데 뭐.
그래도 그간 함께해온 짬밥도 있고 망상병 환자였던 원본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건설적으로 변했으니 계속 데리고 있을 뿐이지.
물론 이놈도 하이드리히처럼 선을 넘는다면 언제든지 내칠 수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듯이, 하이드리히가 힘러를 죽이는 것을 내버려 둔다면 녀석은 분명 자신의 총통직 승계에 방해가 되는 다른 경쟁자들까지 죽이려 할 것이다.
끝에는 나까지도 죽이려 들지 모르지.
고로 하이드리히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무장친위대 1개 증대를 동원해 하이드리히 녀석의 저택을 포위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근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플루트카르트가 멋지게 녀석과 녀석의 가족들까지 해치워버렸으니.
하이드리히 저택으로 출동한 Ss의 수색 결과 하이드리히와 하이드리히의 가족 전원이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시체가 여러 조각으로 나뉜 탓에 신원 확인에 다소 애를 먹었다고 한다.
미리 준비해둔 각본에 따라 하이드리히의 죽음은 독일 내에 암약한 무정부주의자의 소행으로 발표되었다.
"그간 고생했네. 플루트카르트 SS 대위. 하이드리히를 감시하고 녀석의 눈을 피해 내게 보고를 올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녀석이 모아둔 자료들은 어디에 있나?"
"여기 있습니다, 총통 각하"
플루트카르트가 내민 노란 파일에는 하이드리히가 그간 수집한 나와 내 주변인물틀에 관한 자료들이 틀어 있었다.
"그 독사 같은 놈이 예비용으로 놔둔 파일돌도 있율지 모르니 잘 찾아보게."
"알겠습니다. 하일 히틀러!"
표면상으로 하이드리히는 숙청된 것이 아닌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로 죽었으므로 한등안 당과 국방군, SS 고위직들에겐 안전에 유의하라는 지령이 전해질 것이다
하이드리히가 자기 저택에서 죽었으니 몇몇은 거처를 옮기거나 고용인들을 의심할지도 모르겠군
엉뚱한 피바람이 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하이드리히의 저택에 고용된 하인들 전원이 순수한 득일인이며 이들에게서 어떤 험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발표문까지 미리 준비해뒷다.
죽어도 싼 건 어디까지나 주제도 모르고 날뛰던 하이드리히지, 돈 벌러 독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니니 말이다.
***
1943년 7월 24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히틀러의 하수인 하이드리히가 자기가 살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산산 조각난 소식은 기쁜 일이었다.
전임자 루즈벨트 못지않게 반독성향에 반파시스트이며 친소파인 월리스는 하이드리히가 독일의 이름 모를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직 이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남아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하이드리히의 죽음은 전선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연합군은 퇴각을 거듭하여 어느새 잉굴랜드의 절반을 독일군에게 내주고 말았다.
미 육군황공대와 RAF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도시들은 루프트바페의 공습으로 하나둘씩 불바다로 변했고 미국과 영국 전차들은 독일 전차들 앞에선 무력했다.
"제리들이 굴리는 제트기는 사기입니다, 사기! 속도가 너무 빨라서 조준할 수가 없어요!"
"전차는 또 어떨고? 우리 병사들이 쓴 포탄이 그대로 팅겨 나오는데, 저놈들은 왔다 하면 명증이오."
"유보트에 격침당한 수송선이 지난주만 해도 몇 척이나 되는지 아시오?"
장군들과 제독들은 영국에서 몇 대의 전차가 고철 더미가 되고 몇 대의 전투기들이 격추당했으며 몇 명의 조종사들이 포로가 되고 대서양에서 몇 척의 수송선들이 격침당해 몇 톤의 화물이 해저로 가라앉았는지 떠들어댔다. 영국의 패튼은 아이슬란드에 있는 아이젠하워에게, 아이젠하워는 워싱턴의 마셜에게 영국에서 아군이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현상유지를 위해서 많은 병력과 탄약, 연료, 차량, 전차와 야포를 요구했고 마셜은 이들의 우는 소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월리스의 앞으로 가져왔다.
월리스는 고심했다. 루즈벨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예고도 없이 대통령을 맡게 된 그는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 그럭저럭 일을 잘 수행해나갔다.
평소 흑인 민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월리스는 흑인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겠노라고 다짐했고 이를 선언하여 흑인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동시에 정부의 발표를 불신하며 무장투쟁을 계속하는 BFR 같은 무장단체들은 연방군과 주방위군을 동원해 가차 없이 때려잡았다.
KKK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남부 분리주의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덕분에 미국 국내 상황은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지만 이와 별개로 유럽전선의 전황은 여전히 암울했다.
버밍엄을 함락시킨 독일군은 재충전을 마친 뒤 이번에는 리버풀과 맨체스터로 돌진할 것이다. 그다음은 글래스고와 에든버러가 될 테고, 미국은 영국에서 완전히 쫓겨나고 말 것이다. 월리스는 침울한 눈으로 탁자 위의 지구본을 응시했다. 미국이 영국에서 쫓겨나면 이제 미국에 남은 유럽은 아이슬란드 하나만 겨우 남는다.
공화당과 국내의 반전주의자들은 이제라도 가망 없이 영국에서 손 떼고 태평양에 전력을 집중하자고 입만 열면 떠들어댔다.
월리스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지만, 전황이 글러 먹었다는 말만큼은 그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프랭크. 어쩌자고 내게 이 많은 짐만 남겨두고 가셨소……….”
히틀러는 이전에 미국에 평화협정을 제안한 적이 있다. 현재까지도 이 제안을 따로 철회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유효하지 않을까?
"..."
그는 파시스트들과의 타협을 원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이 땅에서 모조리 쫓아내길 바랐다.
허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큰 법. 스스로가 하려는 짓에 월리스는 지독한 회의감을 느끼면서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이건 결코 항복이나 굴복이 아니다.
미국이 유럽에서 완전히 쫓겨나지 않으려면, 그리고 우리 병사들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타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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