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g of war par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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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7월 15일

영국 런던

미군의 첫 공세는 아군의 강력한 방어막에 부딪혀 마흔 대가 넘는 전차와 수백 명의 전사자만 내고 종료되었다.

미군과의 첫 교전 성과로 나쁘지 않은 전과다. 패튼이 제아무리 전쟁에 미친 광전사라고 해도 첫 전투에서 이 정도 손실이면 한동안 몸을 사리겠지. “양키들이 슬슬 우리랑 싸우는 게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싶은데………… 에잉.”

“염려마십시오. 카우보이 백만 명이 몰려와도 그 백만 명을 모조리 도륙을 내버리면 정신을 차리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웃는 괴링에게 그만큼 우리 병사들도 죽지 않겠느냐고 말하려는 순간에 그가 나타났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총통 각하.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BUF 당수 오스왈드 모슬리.

“오랜만이오, 모슬리 경.”

모슬리는 그간 고생이 심했는지 전에 봤을 때와 놀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볼은 들어가도 광대뼈는 튀어나왔고 손에는 자잘한 생채기들이 있었다. 감옥에서 꽤 고생 좀 했나 본데.

“그간 고생을 제법 많이 한 모양이오."

“별거 아닙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조금 일이 있었지요.”

모슬리 뒤에는 BUF의 핵심 간부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표정을 보니 그토록 염원하던 총통과의 만남이 성사되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반응들이다.

나는 그들 한 명 한 명과 악수하며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치하했다.

“대단히 고생했소. 저 비겁하고 무능한 처칠과 똘마니들이 숱한 압력을 행사했을 텐데도 당신들은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지………… 나는 신념이 있는 자를 좋아하오. 독일인 모두가 마찬가지지.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데 제3제국은 그대들이 보여준 우 호의 모습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외다.”

모슬리와 BUF 간부들은 새삼 뿌듯한 얼굴로 내가 하는 말을 경청했다.

이들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전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전후 탄생할 파시스트 영국의 정부 구성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총리는 당연히 눈앞에 있는 이 남자, 모슬리가 맡게 될 테고 BUF 간부들의 직책에 걸맞은 직위가 주어질 것이다.

영국 국왕은 당연히 에드워드 8세의 몫이 될 예정.

런던 거리는 폭격과 포격, 그리고 격렬한 전투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여기다 런던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건물들은 죄다 레제로 때려 부쉈으니 세상 사람 아무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고 이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누구도 런던을 생각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 런던은 파괴되어 있었다.

“이거 참... - 제아무리 적국이라고는 하나 나 역시 문화 역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런던이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가 파괴된 모습을 보니 슬픔을 감출 수 없구려.” 괴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얼굴이 대단히 밝아 보이십니다만?”

“어허. 자네는 조용히 하게.”

내일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박살이 난 런던을 전쟁 전의 모습으로 재건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로 할 게 명확해 보였다.

그런데 독일의 경제는 영국의 전후 복구를 도울 만큼 넉넉하지 않다.

런던이 다시 제 모습을 되찾으려면 미국의 지원이 필수일 텐데, 그 미국이 전후 독일의 괴뢰국이 된 영국의 복구에 선뜻 돈을 보태줄까?

헨리 포드나 찰스 린드버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는 한 힘들지 않을까 싶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소리인데 미국의 대표적인 친독파 인사인 두 사람은 지금도 열심히 반전운동-독일 한정-을 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독일과 왜 굳이 전쟁하면서 애꿎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느냐는 이들의 주장은 날이 갈수록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새 미국 대통령 월리스는 그 루즈벨트조차 질색하게 만든 친소 인사답게 반전파의 끝없이 공격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유럽에서 발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영국으로 보내는 병력과 물자의 양도 전보다 대폭 늘렸고 BLR과 KKK 둘 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집단으로 간주해 과감한 토벌을 지시했다.

아직도 정부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흑인들이 다수 있지만, 월리스가 터스키기 사건과 제시 오언스 사망 사건에 관련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과 보상을 약속하자 흑인들의 시위도 점점 수그러드는 추세다.

그래도 다행인 건 독일과 싸우기 위해 유럽으로 갈 수 없다며 태평양행을 고집하는 흑인 병사들이 많다는 것과 영국행이 결정된 독일계와 아일랜드계 병사들이 탈영하여 반전파의 도움을 받아 잠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도 굳이 이들을 유럽으로 보낼 이유가 있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

나는 이 친독 반전파들이 더 열심히 떠들고 더 열심히 날뛰어 주길 바랐다.

베를린 라디오 방송에 나온 괴벨스도 열심히 이들을 추켜세우며 이 시대의 진정한 평화주의자들이자 미국의 살아있는 양심이라도 칭송해 마지않았다.

독일은 미국과 싸우고 싶지 않다! 전쟁의 원흉인 루즈벨트는 죽었는데 그대들이 왜 피를 흘려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서로 간의 오해를 풀고 마주 앉아서 유럽과 세계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고 깊은 대화를 나눠보자.

물론 우리가 자신들을 겁내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으므로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하게 나갔다.

미국의 전차, 전투기는 독일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미국이 계속해서 싸우려고 든다면 우리는 당신들의 귀한 아들들이 바다를 건너 영국에 도착하는 족족 도륙을 내버릴 것이다!

독일의 전투기와 전차가 미국이 영국군에게 공여한 전투기와 폭격기, 전차를 무참히 파괴하는 광경을 담은 기록 필름은 독일과 추축국 국민은 물론이고 적국인 영국인들과 미국인들에게도 좋은 선전거리가 되었다.

뉴스영화에서 아군에게 항복하는 영국군과 캐나다군 병사들의 처량한 모습을 삐라에 인쇄해 아직 점령되지 않은 영국 각지의 도시들에 살포했다.

영국인들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런던 거리에는 하켄크로이츠 깃발과 BUF의 깃발이 함께 휘날리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도시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런던 시민들은 여전히 점령군과는 거리를 뒀지만, 그 점령군이 배급하는 빵과 수프를 받기 위해 수백m 가까이 길게 늘어섰다.

톱밥 섞인 빵과 순무와 양배추만 넣고 끓은 수프라고 해도 식량을 구할 길이 없는 시민들에겐 이조차 귀중했다.

나는 문득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조국을 침략한 독일군을 원망하고 있을까, 전쟁을 일으킨 처칠을 욕하고 있을까. 아마도 둘 다이지 않을까 싶은데,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이 강력한 탈(脫)나치화 교육을 시행했던 것처럼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영국을 오래도록 지배하려면 이와 비슷한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제2, 제3의 처칠이 나타나 정권을 잡게 된다면 그때마다 지금까지의 일들을 계속 반복해야 할 테니, 그러기 전에 싹을 미리 잘라버려야지.

***

“하여간 무식한 양키들 같으니라고. 내가 그렇게 말렸건만.”

패튼의 공세가 보기 좋게 실패하자 몽고메리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우리 미국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벌써 나치 놈들에게 엎드려서 혀로 구두를 핥고 있었을 놈들이 기고만장해져서는!"

막대한 피해만 보고 공세가 실패했음에도 패튼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단지 저, 거만한 영국 놈의 콧대가 더 높아졌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울화통이 터질 노릇이었을 뿐.

그러나 독일군의 공세가 시작되자 둘은 내가 더 잘 낫니 네가 더 못 낫니 하며 다툴 처지가 못 되었다. 우선은 밀려드는 독일군부터 막아야 했다.

보병과 전차의 원활한 전진을 위해 독일은 공군을 호출해 전선 일대를 갈아엎었다.

자주대공포들이 힘차게 불을 뿜었지만 500대에 달하는 슈투카와 폭격기들을 막아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공군! 우리 공군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절망에 빠진 병사들은 이를 갈며 애타게 공군을 찾았지만, 그들이 찾는 RAF와 미 육군항공대는 현장에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보이는 항공기라곤 오직 독일기들뿐.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집중 포격으로 미군과 영국군의 방어선은 크게 허물어졌다.

적이 충분히 무력화되었다고 판단한 롬멜은 전차와 보병들을 투입했다.

“우리의 목표는 버밍엄이다. 다들 알고 있겠지?”

“예, 각하!"

“여름이 끝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한다.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마구 날뛰어보도록.”

공격의 선두에는 헨셸이 만든 걸작 중전차 티거 II가 위치했다.

그 뒤로 판터, 티거가 뒤따르고 4호 전차와 헷처들이 그다음, 마지막으로 하프트랙에 탑승한 보병들이 판처카일 진행을 이루며 돌격했다. “전차들이 옵니다!”

“뭐가 저렇게 많아?!"

“씨발, 우린 이제 다 죽었다."

공습이 끝나고 옷에 들어간 흙을 털어내기도 전에 연합군은 자신들을 향해 돌격해오는 거대한 강철의 폭풍과 마주했다.

독일제 강철 맹수들의 대열을 본 연합군 병사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

"어이, 어디 가!?

“자리를 이탈하지 마라! 탈영으로 간주해 총살하기 전에!”

제 혈기만 믿고 나이를 속이고 입대한 어린 병사들은 패닉에 빠져 무작정 도주했다.

불러도 돌아오지 않자, 장교들은 도주하는 병사들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후퇴하면 죽는다! 닥치고 싸워!”

죽기 싫으면 닥치고 싸워라. 싸워서 이기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란 것을 안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적 전차의 공격에 대비했다.

“사격 개시!"

“쏴!"

적 전차가 충분히 접근했다고 판단한 전차들이 일제히 포탄을 날렸지만 티거 II는 멀쩡했다.

간혹 궤도에 맞아 기동불능이 된 차량이 있지만, 전차 내부에는 어떤 충격도 전해지지 않았다.

“정면에 양키 놈들이다. 철갑탄 장전.."

“11시 방향이다. 쏴!"

티거 II의 KwK 43이 불을 뿜고 몇 대의 셔먼이 불덩이로 변했다.

조준이 잘못되어 포탄이 빗나가지 한, 전차의 장갑에 착탄한 포탄이 어김없이 전차와 함께 폭발했다.

전차 내부의 탄약이 유폭한 경우엔 전차병들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즉사했다.

해치 사이로 불길을 내뿜는 전차에서 탄약들이 폭발해 펑펑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핫하! 놈들의 전차는 깡통 수준이구만?”

“백날 천날 쏴봐라. 죄다 튕겨 내줄 테니!”

차체는 120mm 경사장갑에 포탑 정면 215mm 두께의 장갑판으로 무장한 티거 II는 6파운더, 75mm, 76mm 포탄을 죄다 튕겨냈다.

심지어 연합군 대전차포 중에 가장 강력한 17파운더조차도 티거 II의 전면장갑을 관통하지 못하고 도탄되었다.

“궤도, 궤도를 쏴라! 최소한 저놈들이 움직일 수 없게 하란 말이야!"

장갑을 아무리 쏴도 소용이 없자 포수들은 전차의 궤도를 노려 기동력을 상실시키는 것으로 목표를 변경했다.

아무리 강력한 전차여도 궤도는 약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한궤도를 저격해 적의 발을 묶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곧바로 반격타가 날아와 전차를 유폭으로 몰고 갔다.

특히 다른 대전차포들보다 훨씬 크기가 크고 포구화염도 큰 17파운더는 금방 위치가 탄로나 제압당했다.

독일군의 피해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면장갑은 두꺼워도 측면장갑은 얇은지라 해당 부분을 공략한다면 천하의 티거 II라고 해도 격파당할 수 있었다.

몇몇 76mm 셔먼의 포수들은 적 전차의 포탑이 회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적이 측면을 보이는 순간 장전해둔 철갑탄을 발사했다.

-쿠아아앙!

"명중! 격파-!"

측방을 공격하느라 포탑 측면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티거 II가 76mm 포탄을 연거푸 처맞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통신수와 조종수가 전차에서 탈출해 황급히 뒤로 도망쳤다.

그러나 해당 방법으로 적들을 막기에는 독일군의 전차가 쉬지 않고 몰려왔다.

어느새 적 전차들과의 거리가 보병들의 참호까지 좁혀지자, 보병들도 바주카를 발사하며 저항에 나섰다.

차체 하부를 노려 발사한 바주카가 명중해 티거 II가 정지하자 미군은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티거 II는 엔진이 정지했을 뿐 내부의 전차병들은 멀쩡히 살아있었고 차체 전면부의 MG40이 총알을 발사해 바주카를 든 미군을 사살했다.

전투 시작 전보다 숫자가 반으로 줄어든 연합군 전차들은 이내 진지를 버리고 퇴각했다.

퇴각하는 전차들은 급하게 연막탄을 발사해 독일군이 조준할 수 없도록 했다. 곧 보병들도 참호에서 나와 전차들을 따라 도주했다.

대전차포병들의 경우 움직일 수 없는 대전차포와 탄약을 그대로 두고 도망쳤다.

“놈들이 도망칩니다!”

“하하핫! 꼬라지들 하고선!"

“계속 쏴라. 도망치는 놈 한 놈이라도 더 죽여.”

전차병들이 도망치는 적 보병들을 향해 사정없이 총탄을 퍼부었다. 등에 총알이 박힌 병사들이 고꾸라지고 유탄이 작렬해 희끄무레한 연기 사이로 섬광을 내뿜었다. 전차들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므로 철갑탄은 쏘지 않았다. 하지만 유탄과 총알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

1943년 7월 16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전쟁 전 덴마크 영토였던 아이슬란드는 영국이 독일에 길을 빌려준 덴마크를 폭격하면서 동시에 영국군의 침공을 받아 점령되었다.

영독 강화협정이 체결된 후 영국군은 아이슬란드에서 철수했지만, 2년 만에 영국군은 아이슬란드를 재침공해 점령했다.

극소수의 독일군과 덴마크군이 아이슬란드 일대에서 연합군과 술래잡기를 벌이고 있지만, 아이슬란드의 주요 거점들은 연합군에게 점령되어 철저한 통제를 받았다.

아이슬란드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무력으로 점령한 연합군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봤지만, 직접 총을 들고 싸울 용기가 없는 한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었고, 마찬가지로 주민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았던 연합군도 식량 수 급길이 막힌 주민들을 위해 식량과 기름을 배급했다.

아이슬란드 주둔 미군에게 아이슬란드는 비록 적 점령지지만 세상 편한 곳이었다.

이곳에 영원토록 있는 한 싸울 일도 없고 매주 정기훈련 때만 땀 좀 흘리면 끝이니 이보다 더한 천국이 없었다.

그러나 미 유럽 원정군 총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주름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다. 전시 진급이긴 하나 대장 계급장을 달게 되어 뿌듯해했던 것도 잠시, 그는 곧 자신 앞에 들이닥친 산더미 같은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이토록 눈앞이 깜깜했던 적은 필리핀으로 발령받은 맥아더가 자신을 전속부관으로 데려가기로 결정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전시가 아니었고, 필리핀에서 4년간 개처럼 구른 후 맥아더는 아이젠하워의 대령 진급에 힘을 보태주기라도 했었다.

허나 여기서는 그런 것도 없었다.

리버풀은 기뢰로 봉쇄되었고 아일랜드의 참전으로 이제는 글래스고로 가는 항로조차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상황.

그렇다고 아일랜드를 먼저 공격해 점령하려면 독일군이 글래스고까지 닿을 판이고, 아일랜드를 이대로 남겨두자니 뒤통수가 근질근질했다.

미국이 영국으로 열심히 병력과 물자를 보내고 있지만, 미군이 영국에 도착하는 것보다 독일군이 영국에 도착하는 게 더 빨랐다.

설상가상으로 저들이 보유한 전투기, 전차의 성능은 전반적으로 미국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

자신의 웨스트포인트 선배이자 지금 자신의 부하로 영국에서 독일군과 싸우고 있는 패튼이 보내온 전보와 그 이전부터 무수히 올라온 보고서들에 따르면 지금 미군이 보유한 셔먼으로는 도저히 독일군의 전차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패튼은 아예 셔먼으로 독일군의 중전차와 정면에서 맞붙는 것은 자살행위라고까지 했다.

아이젠하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보고서에 적힌 내용이 전부 다 사실이라면 병기국이 그에게 했던 말이 전부 다 새빨간 거짓말이 되는 셈이었다.

독일 전차의 성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3년 전 독일 기갑사단이 서유럽을 유린할 때부터 익히 알려졌다.

이에 병기국은 아이젠하워에게 76mm 주포로 업그레이드한 셔먼이라면 독일 전차들에 충분히 맞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망할 병기국 녀석들………….”

병기국의 주장과 달리 76mm 주포는 독일 전차들을 상대로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 수많은 전차병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과 함께 산화한 수백 대의 전차들은 덤이었고, 이 사실을 3개월이라도 더 일찍 깨달았다면 병사들이 흘렸을 피를 조금이나마 더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이제라도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랄까.

“...….…역시 그놈을 데려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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