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ege of london part 4
<런던 공방전 (4) >
1943년 6월 23일
영국 런던 전쟁청 지하벙커
“아직도, 아직도 소식이 없단 말인가?"
“잔해들이 통로를 모두 막은 데다가 적의 포격과 공습이 계속되고 있어서-"
“변명은 그만! 국왕 폐하와 왕비 전하의 생사가 달린 문제란 말이네!”
대영제국의 총리 처칠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버킹엄 궁전이 폭삭 주저앉은 것도 모자라 국왕과 왕비의 생사조차 불명이다.
영국 역사상 초유의 상황에 다들 어쩔 줄 몰랐다.
당장 구조팀이 급파되었지만, 독일 놈들이 떨어뜨린 초대형 폭탄 때문에 모든 통로가 막히고 말았다.
급히 통로를 가로막은 잔해더미들을 치우고 있지만, 독일군의 지속적인 포격으로 구조가 지연되고 있었다.
중장비를 동원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마당에 포격까지 더해지니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턱이 없었다.
워낙 상황이 급하다 보니 다이너마이트로 통로를 가로막은 잔해더미를 날려버리는 것까지 고려되었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렇다가 곡괭이로 한세월 걸려 잔해더미를 치울 수도 없는 노릇.
좆되도 제대로 좆된 상황이었다. 처칠은 시야가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국왕 폐하가 거처하고 있는 버킹엄 궁전이 무너지는 것을 병사들과 런던 시민 모두가 목격했다.
지금도 병사들과 시민들 사이에선 무수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분노로 투지를 불태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절망하며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거나 적에게 투항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국왕 부부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독일군이 브릭스턴까지 밀고 들어왔다.
처칠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제 길어야 이틀이 한계였다.
“각하, 더는 무리입니다. 지금이라도 런던에서 탈출하십시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난 끝까지 런던에 남을 거라고! 국왕 폐하께서 살아계시는지조차 모르는데 어찌 런던을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각하. 심정은 이해하지만, 각하께서 만약 나치들 손에 죽거나 포로로 잡히신다면 군과 국민은 싸울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 겁니다.”
“지금이라도 런던을 떠나야 합니다! 당장!”
처칠은 몰랐지만, 이미 본인의 임무를 져버리고 런던을 떠나 도망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단지 버킹엄 궁전 붕괴의 혼란에 묻혔을 뿐.
“각하, 이대로 독일 놈들 손에 돌아가실 겁니까? 각하마저 독일 놈들에게 죽는다면 우리 국민과 병사들은 싸울 희망을 완전히 잃게 될 겁니다.”
"oog!"
주변의 집요한 설득에 처칠의 철옹성 같던 결심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왕 폐하의 생사조차 모르는 마당에 자신만 도망친다면, 그는 평생토록 이 나라의 수치로 남을 터였다.
세상에 누가 국민에게 한 약속도 저버리고 심지어 국왕조차 내버려 두고 도망친 총리를 따르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때였다.
묵직한 진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천장이 갈라지면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무너져 내린 천장의 조각들은 그대로 벙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덮쳤다.
"...!!!"
벙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연기를 마신 사람들이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연기와 먼지들이 휘날려 사람들의 시야를 차단했다.
“총리 각하! 총리 각하!”
“각하! 괜찮으십니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먼지구름 속에서 각료들은 처칠을 찾기 위해 소리를 질러대며 뛰어다녔다.
먼지가 가라앉아 겨우 앞이 보였을 무렵,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처칠이 보였다.
“초, 총리 각하!"
“의사! 의사를 불러!".
***
“계속 쏴라!”
“평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다! 멈추지 말고 계속 쏴!”
영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광경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독일의 전함이. 템즈 강을 거슬러 올라가 런던 시내를 향해 포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
이 역사적인 광경에 런던에 남아있던 영국군 병사들과 런던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독일군과 추축군은 환성을 질렀다.
“더 빨리, 더 빨리 쏠 수 없겠나?”
“뭣들 하나! 원수 각하께서 속도를 더 내라고 하지 않느냐!”
레더는 심장이 터지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평생 꿈꿔왔던 소망이 드디어 실현되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린데만 함장도 평소의 그답지 않고 주먹을 마구 휘두르고 호통을 치며 병사들을 닦달, 아니 독려했다.
템즈 강을 통해 런던까지 올라간 세 전함,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 샤른호르스트는 380mm 주포와 128mm 부포를 마구 쏘며 폭격과 포격으로 상처 입은 런던 시가지를 완전히 초토화했다. 제공권을 아군이 장악한 관계로 쓸모가 없어진 대공포들도 지상을 공격하는데 가세했다.
런던 시내에 배치된 포와 전차들이 육중한 전함을 막아보기 주포를 발사해보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육중한 전함의 함포탄을 방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함의 측면장갑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버터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것처럼 고스란히 튕겨 나왔다.
- 쿠아아앙!!!!
380mm 함포탄이 명중하자 셔먼과 크롬웰 3대가 동시에 분해되었다.
전차들을 노리고 쓴 것이 아니라 함포탄을 쏜 방향에 전차들이 있었던 것이었지만 단 한 발의 함포탄으로 전차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게 독일이다! 이 좆같은 토미 새끼들아!!"
"끼얏, 호우!"
전함의 승조원들은 쉬지 않고 포탄을 장전하느라 온몸의 근육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지만, 조국의 숙원이자 영국의 수도 런던에 자신들의 손으로 불의 비를 퍼붓는다는 쾌감에 고통도 잊은 채 기계처럼 움직였다. 포슬장이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병사들은 1초라도 더 빠르게 장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좋아! 다들 잘하고 있어! 이대로만 계속 가자고!”
***
1943년 6월 24일
영국 런던
“국왕 폐하 만세! 덴마크 만세!”
“역겨운 영국 놈들에게 죽음을!”
비록 그 수는 소수에 불과했지만, 덴마크군과 노르웨이군의 전투력, 특히 영국을 향한 증오심만큼은 결코 독일군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중립을 표방한 조국을 다짜고짜 공격하더니 폭격으로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 죽인 영국에 대한 분노와 혐오로 똘똘 뭉친 이들은 지휘관으로부터 공격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돌격을 감행했다.
홈가드 대원들이 루이스 경기관총과 맥심 기관총으로 저지를 시도했지만, 덴마크군은 무수히 쏟아지는 총탄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격해왔다.
“죽어라, 개새꺄!”
“씨발, 뒈져!"
“커읍…………!”
건장한 체격의 덴마크군 상병이 휘두르는 카라비너 소총의 개머리판에 맞은 홈가드 대원의 입에서 이빨이 튀어나오고, 총검에 찔린 노병이 입에서 왈칵 피를 뿜어댔다.
조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만큼은 진심이지만, 나이가 들어 육체가 노화된 홈가드 대원들은 젊고 팔팔한 덴마크군과의 백병전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노르웨이군도 이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듯 맹렬히 공격을 가해왔다.
독일군이 노르웨이군에게 맡긴 것은 어디까지나 측면의 보호였지만 노르웨이군은 독일군의 측면 보호라는 본래의 임무에서 그치지 않고 저돌적으로 영국군을 공격했다. 측면을 위협할 영국군을 사전에 싹 쓸어버린다면 될 일이 아닌가.
노르웨이군의 4호 전차 G형이 주포와 기관총을 갈기며 달려오다가 지뢰를 밟고 정지했다.
그러나 지뢰로 궤도가 망가진 상태에서도 전차는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주포가 멀쩡하고 탄약이 남아있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싸울 생각이었다.
측면에 자리 잡은 대전차사수가 킹스 대전차소총을 발사해 포탑 측면에 구멍을 냈다.
장갑을 관통한 총탄에 의해 전차장이 사망하자 포수가 전차장 역할을 대신 수행했다.
“저놈 아직도 안 죽었어. 한 발 더 먹여!"
“제발 좀 뒈져라. 씨발."
두 번째, 세 번째 총탄이 날아들어 4호 전차의 측면을 강타했다. 총탄이 장갑을 관통당하면서 생긴 파편에 포수가 상처를 입고 주포가 망가져 사격 불능 상태에 빠졌지만, 무전수는 계속해서 MG34를 난사해 영국군을 괴롭혔다. 영국군의 박격포탄이 전차의 상부를 때려 내부의 탄약을 유폭시킨 후에야 4호 전차를 완전히 침묵시킬 수 있었다.
노르웨이군의 저돌적인 공격은 영국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안겼지만, 필요 이상으로 전진한 바람에 역으로 영국군에게 포위당한 형세가 되고 말았다.
영국군은 이때다 싶어 노르웨이군의 머리 위로 박격포를 날려댔고 노르웨이군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포탄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전멸 위기에 처한 노르웨이군 증대를 구원한 것은 독일군의 브룸베어였다.
노르웨이군으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은 독일군 제216돌격전차대대에서 예비용으로 놔둔 브룸베어 1대를 노르웨이군 소대에 달려 보냈다.
"장전 끝!"
“목표, 정면! 발사!"
15cm 유탄에 맞은 건물이 폭삭 주저앉으며 노르웨이군이 대피할 시간을 벌었다.
영국군이 노르웨이군을 집중공격하는 사이 우회한 덴마크군 소대가 영국군의 박격포 진지를 급습했다.
수류탄 서너 발이 동시에 던져져 영국군을 박격포, 박격포탄과 함께 날려버렸다.
덴마크군, 노르웨이군 말고도 스웨덴군도 전투에 열심이었다.
이들의 전체 규모는 모두 합쳐도 3개 사단을 넘지 못했지만, 전투력만 따지면 2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만큼 스칸디나비아인의 영국을 향한 증오는 상상 이상이었다. “항복! 항복하겠다!”
"쏘지 마라! 항복-컥!"
물론 높은 전투력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법은 아니었다.
이들의 전투력에 질린 영국군들이 두 손을 들고 나왔지만, 피에 흥분한 스칸디나비아 병사들은 기관단총을 난사해 투항병들까지 쓸어버렸다.
스칸디나비아 군대에 파견된 독일군 연락장교들이 급히 저지했지만, 이미 포로학살이 이루어진 뒤가 부지기수였다.
스칸디나비아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프랑스군과 스페인군도 나름대로 열심히 전투에 임했다.
특히 이들은 파병 병력의 절반 가까이가 본토의 백인이 아닌, 모로코와 알제리 같은 북아프리카에서 징집한 아랍인들이었다.
“앞을 가로막는 건 전부 죽여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스페인 내전에서 국민파의 선봉을 맡아 대활약을 펼친 모로코인 부대 레굴라레스는 높은 전투력과 더불어 각종 잔혹 행위로 이미 영국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다.
모로코 병사들의 돌격을 본 영국군은 겁에 질려 도주하거나, 혹은 이를 악물고 싸웠다.
그나마 얌전히 항복해서 포로가 된 병사들은 대체로 무사할 수 있었지만, 싸우다가 포로가 된 병사들의 끝은 대체로 좋지 못했다.
영국군 병사들은 대체로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영국 군복을 입은 모든 이들이 제 몫을 다한 건 아니었는데, 전투가 시작되기 무섭게 백기를 올리거나, 아예 전투 시작 전에 탈영해서 투항하는 이들도 있었다.
“독일 친구들, 항복하겠소!"
“독일 만세! 히틀러 만세!”
영국을 향한 충성심보단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입대한 인도인들은 독일군과 싸우지 않고 대체로 항복을 택했다.
이들은 어설픈 독일어로 히틀러 만세, 독일 만세를 외치며 자신들의 '무고함'을 입증하려고 애를 썼다.
독일군에게 투항한 인도인들은 영국 군복을 그대로 입은 채 독일군의 선전에 동원되었다.
그들은 힌디어, 영어, 벵골어, 구자라트어와 펀자브어 등으로 영국군에 속한 동포들에게 투항을 종용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형제들! 영국은 이제 망했소! 전쟁에서 졌단 말이오! 히틀러 총통은 인도의 독립을 약속했지만, 영국인들은 인도를 계속해서 지배하길 원하오. 영국인들 밑에서 영원히 하인으로 남을 바에는 독일의 품에 안겨 자유를 누리는 것이 인도의 미래를 위해서 옳 은 길이오! 그러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시오!”
“저 반역자 새끼들!”
“이래서 인도 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독일군에게 투항한 인도군 병사들의 선전방송을 들으며 영국군 병사들은 이를 갈았다.
그러나 비단 인도인들뿐 아니라 같은 영국인들조차도 전의를 잃고 적에게 항복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 번 떨어진 사기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
“2시 방향 건물 3층 창문에 저격수다. 보이냐?”
“붉은 벽돌로 된 건물입니까, 아니면 콘크리트로 된 건물입니까?”
“붉은 벽돌.”
“확인했습니다.”
저격수의 위치를 확인한 볼은 장전이 끝나는 대로 격발기를 눌렀다. 2초 후 저격수가 숨은 층 전체가 불과 연기에 휩싸였다.
곧이어 ‘저격수였던 것'이 창문 밖으로 떨어져 바닥에 검붉은 자국을 남겼다.
본격적인 시가전에 돌입한 뒤로 철갑탄보다 유탄을 쓸 일이 더 많아졌다.
독일군 기갑부대 원칙상 전차에는 철갑탄과 유탄을 1:1 비율로 탑재했는데 시가전을 치르느라 철갑탄은 큰 변화가 없는 반면, 유탄은 빠르게 줄어 이제 재고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리히터. 유탄 몇 발 남았냐?”
“4발 남았습니다, 비트만 SS 중위님.”
본대에 보급 요청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전방의 보병들이 팔을 휘저으며 뛰어왔다.
“적 전차 출현!”
“철갑탄 장전!"
보병들로부터 전차의 출현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전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군이 보유한 전차 중 가장 중장갑인 처칠 VII였다. 전면장갑이 152mm에 육박해 티거의 88에도 어느 정도 견디는 게 가능하지만, 쾨니히스티거의 88/71 앞에선 큰 소용이 없었다.
-쾅!
철갑탄이 명중하자 처칠의 해치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어떤 전차건 간에 88/71의 철갑탄 한 방이면 속절없이 통구이 신세가 되었다.
88/71의 유일한 단점은 1.2m에 달하는 포탄의 크기와 무게였다.
선두 전차가 당하자 후속하던 두 전차가 후진했지만, 각각 2호차와 3호차에 의해 격파되었다. 세 번째 처칠은 포탄을 빗맞아 궤도만 끊어지고 말았지만, 전차병들은 전차를 버리고 도주했다. 현명한 녀석들이군. 비트만은 꽁지가 빠지도록 달아나는 영국 전차병들을 눈으로 좇으며 생각했다. 정면승부를 벌여봤자 처칠의 빈약한 주포로는 티거 II의 장갑에 흠집밖에 낼 수 없으니 말이다.
전차들을 해치운 후 전진하던 비트만은 곧 버킹엄 궁전 앞에 다다랐다.
버킹엄 궁전 인근에는 아직 영국군 수비병력이 남아있었고 독일군의 전차가 나타나자, 일제사격을 가했다.
총알과 포탄이 비 오듯이 쏟아져 전차를 두들겨댔지만, 비트만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에게 영국군이 날려대는 총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버킹엄 궁전이다.”
관측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흉물 더미가 말로만 듣던 버킹엄 궁전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국왕이 사는 바로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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