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ege of london part 3
<런던 공방전 (3) >
“버킹엄 궁전을 박살내 가루로 만들자고?”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히틀러는 리히트호펜이 농담을 하는 줄로 알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리히트호펜의 얼굴을 보곤 그것이 진심임을 깨달았다.
히틀러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굳이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버킹엄 궁은 국왕의 거처이자 런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곳을 폭격으로 때려부순다면 영국인들의 사기도 바닥을 칠 것입니다.”
“반대로 영국인들의 투지만 높이게 될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나? 그리고 궁전과 함께 국왕 부부가 죽거나 다치기라도 한다면, 우린 눈이 돌아간 영국인들과 길고 지루한 게릴라 전쟁을 치러야 할 걸세. 어쩌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히틀러는 버킹엄 궁전을 부쉈다가 괜히 영국인들의 항전 의지만 높이게 되는 것을 걱정했다.
그랬기에 그는 버킹엄 궁전을 폭격해 영국인들의 항전 의지를 토막내자는 리히트호펜의 계획을 거절했다.
그러나 리히트호펜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괴링, 케 . 베버를 · 설득 L 카이텔과 브라우히치 나이헤나우와도 -함께 밥을 먹으며 자신의 계획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생각해보십시오. 영국의 상징이 무너져내리는 광경을. 그리고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영국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하지만 총통께서도 지적하셨듯이 행여 영국 국왕 부부가 다치거나 죽는 날에는 전 영국인들이 게릴라가 되어 국방군과 싸우려 들지 않겠소?”
“영국인들에게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요. 물론 한동안은 놈들이 미쳐 날뛸 수도 있을 겁니다. 허나 놈들이 날뛰어도 끄덕도 않는 국방군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놈들이 더 악착같이 싸우려고 들까요, 아니면 현실을 자각하고 겁을 먹을까요??
“허나 그런다고 영국이 항복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반대로 버킹엄 궁전을 그대로 놔둬도 적들이 항복하지도 않을 겁니다. 어차피 항복하지 않을 거라면, 시원하게 때려 부숴도 되지 않겠습니까?”
“자기네들의 상징이 무너져내리는 꼴을 직접 봐야 영국인들은 현실을 자각할 겁니다. 이 전쟁은 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확실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독일에 저항한다면 어떤 지옥을 겪게 되는지 말입니다.”
리히트호펜의 목적은 단순히 버킹엄 궁전을 무너뜨리는 것에 있지 않았다.
버킹엄 궁전 외에도 웨스트민스터 사원, 빅 벤, 다우닝 가 10번지, 런던 탑, 대영박물관 등 런던의 모든 랜드마크를 레제로 가루가 되도록 철저히 때려 부숴 영국인들의 사기를 바닥까지 끌어내리자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리히트호펜의 주장에 설득한 원수들은 총통에게 리히트호펜의 말대로, 항복하지 않는 영국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국방군은 무적입니다. 총통 각하. 영국 놈들이 날뛰어대면 그것의 몇 배나 되는 무력으로 찍어누르면 그만입니다.”
“영국인들이 기고만장해하는 것도 아직 전쟁의 쓴맛을 보지 못해서입니다.”
"자국의 상징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분명 영국인들도 현실을 자각할 것입니다."
영국인들이 공습과 포격에도 무너지지 않은 자죽의 랜드마크를 보며 전의를 불태우고 아군을 비웃는다는 말에 히틀러의 생각에도 솔솔 변화가 생겼다
장군들의 말대로 폭격에도 끄떡없는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버킹엄 궁전을 보며 영국인들이 전의를 다졌을지도 모른다
보라, 저 응장한 버킹염 궁전을! 제리들이 백날 천날 폭격을 퍼부어도 버킹염 궁전은 무너지지 않았다!
신이 대영제국을 수호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라면서 말이다.
"풋. 영국에 갔을 때 버킹엄 궁전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싶었는데."
"하하하하..""
"하기야 버킹염 궁전의 잔해 앞에서 찍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뭐 좋소. 한 번 해보게. 대신, 확실하게 성공해야 하네. 어품잡게 빗맞아서 되려 영국 놈들의 사기만 올려준다면 루프트바페에 수치로 남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격정하지 마십시오. 공군 최고의 조종사들이 이번 일을 말을 것입니다."
1943년 6월 21일
운명의 날에 레제를 탑재한 Fw 200들이 런던을 향해 이특했다.
"버킹염 궁전입니다!"
~잘 봐뒤. 저게 우리가 보는 버킹엄 궁전의 마지막 모습일테니까.""
"폭탄 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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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6월 22일
특일 오스트마르크 빈 쉼브문 궁전
레제의 위력은 확실했다.
버킹엄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웨스트민스터 궁전, 빅 벤, 화이트홀 궁전, 세인트 조지 대성당, 다우닝 가 10번지, 런던 탑, 대영박물관 등
런던의 거의 모튼 주요 상징물들이 루프트바페의 집종 공격을 받아 무너져내렸다
허나 타워브리지는 그 유명세와 별개로 이번 폭격 대상에서 제외되었는데 그 이유는 독일군의 이동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더블어 영국군이 런던의 다리란 다리는 모두 끊어도 타워브리지만름은 그 상징성 때문에 감히 폭파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리히트호펜은 들뜬 목소리로 내게 작전 성공을 보고했다. 런던은 이제 런던이 아니게 되었노라고. 저 자존심 높은 영국 놈들의 콧대를 완전히 늘러버렸다고.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일단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번 폭격으로 영국인들의 충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그리고 생각 외로 영국인들의 저항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 리히트호펜의 장담대로 영국인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질지, 아니면 모든 영국인에게 탈레반이 빙의해서 최후까지 싸우려고 달려들지. 후자만 아니라면 더는 바랄 것도 없겠는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나야 잘 지내고 있지. 장군도 오랜만이오."
“자자, 오늘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인사들 나누시고.”
빈에선 추축국 정상들의 회담이 열렸다.
슬슬 전후 뒷 처리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차례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 하려면 일이 너무 많을 것 같으니 미리미리 처리해두면 서로 편하고 좋지 않겠나.
회담 장소로 선택된 쇤브룬 궁전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름 궁전으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 맞먹는 화려한 궁전을 짓겠다는 야심으로 건축되었다. 하지만 재정적, 기술적 문제로 당초 예상한 크기의 3분의 2 크기로만 지어졌는데 크기뿐만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베르사유 궁전보다 다소 밋밋해 보였다.
물론 건물 자체로만 놓고 보면 충분히 아름답지만.
사족으로 궁전 외벽에 칠해진 노란색 도료는 ‘마리아 테레지아 옐로우’로 불리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본인이 노란색을 좋아해서 궁전도 노랗게 칠한 것이라고 한다. 옛 여제가 만든 화려한 궁전에 추축국의 정상들이 모였다.
프랑스의 노원수 필리프 페텡.
그런 페탱의 제자이자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덴마크 왕국 국왕 크리스티안 10세.
노르웨이 총리 비드쿤 크비슬링.
벨기에 총리 레옹 드그렐.
네덜란드 총리 안톤 무세르트.
정식 국가는 아니지만 내 배려로 이번 회담에 참석하게 된 자유 인도 임시정부 초대 주석 찬드라 보스.
그리고 나, 아돌프 히틀러.
역사책에 ‘빈 회담’으로 기록될 추축국 정상들의 첫 번째 회담 참석자들이다.
***
첫 번째로 논의된 것은 전후 영국이 보유한 식민지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문제였다.
나는 페탱에게 영국이 보유한 아프리카 식민지 전체를, 프랑코에겐 영국령 서인도 제도와 기아나를 약속했다.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집트는 공화국으로 재편되어 독일의 동맹국이 될 예정입니다. 수에즈 운하의 관리는 독일이 맡을 것이고, 그리고 남서아프리카(나미비아)도 남아프리카 연방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새 정부를 수립할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나도 찬성하겠소.”
이집트는 영국의 속국이긴 하나 엄연한 독립국이고 나는 이집트의 반영주의자들에게 독립을 약속했다.
이 부분은 전에 페탱과 라발에게도 분명히 주지시켰기에 잡음이 없었다.
남서아프리카는 프랑스에 넘겨주려고 했지만, 의외로 국방군에서 반대했다.
1차대전 패배로 영국령이 되긴 했지만 지금도 남서아프리카에 사는 독일인들이 많은데 이들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들이겠냐는 것이었다.
특히 자신의 아버지가 과거 남서아프리카 총독이었던 괴링의 반대가 가장 심했다.
그래서 남서아프리카는 프랑스에 넘기지 않고 남아프리카 연방의 위임통치령에서 분리한 뒤 남서아프리카 토착 흑인들과 독일인들을 내세운 친독 괴뢰국으로 삼기로 했다.
이외 아프리카 식민지들, 나이지리아에서 탄자니아, 우간다, 케냐, 북로디지아와 남로디지아, 수단 등은 모두 프랑스에 양도가 결정되었다.
“영국령 아덴(예멘), 오만, 트란스요르단, 이라크 등 서아시아 식민지와 몰타는 독일이 관리할 겁니다.”
" 인정하겠소.."
후세이니와의 약속대로 팔레스타인은 독립시키고, 요르단은 괴뢰국으로 삼을 생각이다.
중동의 영국령 식민지들도.
물론 영국처럼 정치에 대놓고 간섭하지는 않을 거고 해방자 행세나 하면서 석유만 빨아먹고 나머지는 자기네들 알아서 하도록 냅둬야지.
영국은 필요 이상으로 현지 정치에 개입하여 현지인들의 반감을 샀다.
석유를 오래도록 뽑아먹으려면 현지인들의 환심을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법.
대충 적당히 선진적인 의료기술 정도만 전파해주고 지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면 되겠지.
몰타(316km²)가 강화도(302.4km²)보다 아주 조금 큰 수준에 불과한 크기라 독일의 해외영토로 합병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랬다간 몰타 주민들의 격한 반발이 예상되므로 형식상 독립국으로 만들어 아조레스 제도와 카나리아 제도처럼 독일 해공군의 불 침항모로 사용하기로 했다.
허울뿐인 독립국이라고 해도 주권이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의 차이는 제법 크거든.
“영국령 기아나, 영국령 서인도 제도는 스페인에 귀속될 것입니다.”
프랑코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는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당연히 독립해야지 않겠소."
크비슬링의 물음에 나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동석한 보스의 표정이 환해졌다.
“인도는 오랫동안 영국의 수탈과 폭압에 신음해왔습니다. 아일랜드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듯이, 인도 역시 독립해야 합니다. 독립한 인도는 새로운 추축동맹 가맹국으로 추축국의 인도양 및 아시아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외에도 버마, 말레이, 뉴기니 등 동남아 및 남태평양의 영국 식민지들에 대해서도 논의가 오갔다.
“어차피 그쪽 지역은 전후 미국이 꽉 붙들고 있을 텐데, 따로 의논할 필요가 있소?”
상식적으로 미국이 미치지 않는 이상, 자국 군대의 피를 흘려가며 겨우 점령한 땅들을 거저 넘겨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자 페탱이 안색이 나빠졌다.
전쟁이 끝나는 대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되찾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태평양과 극동을 장악한 미국이 이를 허용할 리 없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기억해낸 모양이다. “흠, 흠. 인도차이나는 프랑스의 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 부분에 관해선 이의 없습니다.”
“저돕니다.”
의견을 표하지 않은 보스를 제외한 나머지 참석자들이 페탱의 발언에는 동의했다. 어차피 프랑스 일이니 굳이 반대를 표할 이유가 없다.
“인도네시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무세르트가 내게 물었다. 네덜란드 본국은 독일에 점령당했지만, 남방작전 이전까지 네덜란드령 동인도, 즉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망명정부를 따랐다.
나는 그 사실을 무세르트에게 주지시키며 전쟁이 끝나더라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망명정부의 통치하에 놓이거나 미국이 독립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조용히 알려줬다. “만약 인도네시아인들이 빌헬미나 여왕의 정부가 아닌 네덜란드 현 정부를 지지한다면 당연히 네덜란드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물론 그럴 일은 전혀 없겠지만.
나는 관대하므로 콩고도 인도네시아의 경우처럼 현 벨기에 정부의 몫으로 남겨주기로 했다(점령할 수만 있다면).
“영국이 점령한 덴마크 영토,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는 모두 덴마크에게 돌아와야 합니다.”
이의 없음. 인정.
가만히 있다가 영국에게 처맞고, 최근까지도 폭격을 맞은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는 영국에 제대로 한이 맺힌 상태.
그 누구보다 더 강력하게 영국에 대한 징벌을 주장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아프리카와 서인도 제도는 프랑스와 스페인 몫으로 분배가 됐다. 따라서 덴마크에는 실론이 몫으로 주어졌다.
식민지 말고도 영국 영토에 대한 분할도 안건에 올랐다. 채널 제도는 프랑스 영토로, 노르웨이는 참전 대가로 셰틀랜드 제도가 몫으로 주어졌다.
이 자리에는 없지만, 전후 아일랜드엔 북아일랜드를 할양해주기로 했다.
사실, 거저 주는 게 아니라 아일랜드 역시 가까운 시일 내로 참전하기로 약속했기에 그 대가로 넘기는 것이었다.
아일랜드군 전력을 생각하면 전세에 큰 도움은 못 되겠지만, 아일랜드의 참전은 아일랜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내 여론과 영국군에 입대한 아일랜드인들의 동요를 가져올 터.
“북아일랜드의 영국인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야 모두 영국으로 이주시켜야지 않겠소?"
“그들이 순순히 집과 고향을 버리고 떠날까요?”
“안 떠나고 배기겠소? 그대로 있으면 아일랜드인들에게 맞아 죽을 텐데. 물론 강제로 이주시킨다면 그건 그거대로 불만이 나올테니 스스로의 의지에 맡길 거요.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라고 하면 되지.” 영국 분할 안건은 이쯤해서 끝내고 다음 안건인 전후 영국 ‘전범’들에 대한 처벌에 대해 논의했다.
“현 처칠 내각의 구성원들은 모조리 체포하고, 말단 관료와 소위 이상의 장교들 모두 싸그리 잡아 재판에 넘겨야 하오.”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결코 자비를 보여선 안 됩니다.”
“인도 통치에 관여했던 자들까지 모두 체포해서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합니다.”
이 안건에 대해선 크리스티안 10세와 크비슬링, 보스가 죽이 잘 맞았다. 3명 다 영국에게 제대로 한이 서린 사람들.
페탱은 ‘뭐 그렇게 하던가’라는 반응이었지만 다소 소극적인 이도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수뇌부들의 경우에는 마땅히 재판을 받아야겠지만, 말단 관료들과 장교들까지 재판에 넘기는 것은 다소 과한 행위가 아닙니까? 오히려 영국인들의 강한 반발을 살 수도 있습니다.”
프랑코의 말. 사형수 명단에 사형. 연기 여부를 작성하는 게 일과의 시작인 녀석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저 말 자체는 일리가 있었다.
“전범 혐의가 있는 자들에 한해서만 재판대에 세웁시다. 여기에 있는 어느 누구도 수십년 간 게릴라전을 벌이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말이오.”
스탈린도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못 일으키도록 포로로 잡은 독일군 장교 수천 명을 처형시키자고 말했다가 처칠과 루즈벨트한테서 ‘그건 좀’ 소리를 들었었지.
실제로 그랬다간 소련은 향후 10년 동안 동독에서 게릴라전을 벌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영국을 향한 크리스티안 10세와 보스의 분노는 이해가 가지만, 정의의 심판이라는 명목하에 가해지는 무분별한 처형은 영국인들의 저항 의지만 돋을 뿐 통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로 전쟁에 책임이 있는 자들만 처벌하고 나머지는 조용히 넘어가는 게 인지상정.
“영국 왕실도 재판 대상에 포함됩니까?”
“당연한 말 아니오? 왕실을 폐지해 공화국으로 만들지는 않더라도 왕실 역시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오. 제아무리 현실 정치에 관여한 게 없다지만, 반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반대하지도 않았으니 그들 역시 전쟁의 동조자들이나 다름없소.”
“맞는 말이오. 왕족이라고 해서 법의 준엄한 심판을 피해갈 수는 없소.”
영국 왕실 일원들은 캐나다로 도주한 지 오래고 영국에 남은 국왕 부부는 현재 생사불명인 상태지만, 설사 살아서 포로가 된다고 해도 좋게 대접해줄 생각은 딱히 없다.
이미 새 국왕 후보까지 정해둔 상태고, 무엇보다도 영국인들에게 침묵은 곧 동조라는 교훈을 확실하게 주기 위해선 국왕 부부에 대한 처벌이 꼭 필요했다.
교수험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최소 몇십 년은 족히 감옥에서 콩밥을 먹어야 할 거다.
왕족이라고 모든 법의 심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이제부터라도 세계에 보여줄 필요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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