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h to ruin part 2
<파멸의 길 (2) >
영국에는 두 명의 총리가 있었다.
글래스고에 한 명.
그리고 런던에 한 명.
클라리지스 호텔 스위트룸을 개조한 집무실에서 새로운 영국의 총리 오스왈드 모슬리는 서부전선 총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가 보낸 영국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독일의 도움으로 신(新) 정부의 총리직에 오른 모슬리에게 허락된 일은 독일군이 보내오는 문서에 서명하고, 독일의 선전방송에 출연해 자국민들이 독일군에게 전적으로 협조할 것을 호소하는 방송을 내보내는 일뿐이었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만족해했다.
그는 영국인들이 자신을 가리켜 히틀러에게 빌붙은 매국노라 욕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지지자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전쟁에 지치고 승리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 현실에 체념한 사람들은 신임 총리 모슬리 내각에서 내리는 지시에 순응했고, 전쟁 이전부터 모슬리와 BUF에 지지를 보내던 사람들은 새로운 영국 정부를 격하게 반겼다. 전쟁광 처칠의 무능과 아집에는 질릴 대로 질렸다. 이제 남은 건 독일과의 협력뿐.
독일의 지시에 순응하고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만이 영국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모슬리와 그에게 충성하는 지지자들은 방송에 나와 열성적으로 떠들어댔다.
이 주장에 열정적으로 호응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지지층이 전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주민들이 모슬리의 주장을 비웃거나 부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모슬리와 BUF가 아무리 싫어도 처칠의 독단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제리들 따까리 노릇이나 하는 모슬리와 BUF도 별로지만, 처칠은 더 싫다.
전쟁하자고 선동할 때는 언제고 국민을 내팽개치고 자신들만 후방으로 도망친 파렴치한들. 이것이 대다수 영국인의 속마음이었다.
모슬리와 BUF는 이러한 영국인들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처칠과 그 떨거지들을 보라. 자기들 멋대로, 누구도 원하지 않던 독일과의 전쟁을 일으켜 나라를 패망시키지 않았나.
심지어 처칠은 런던을 떠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런던이 위기에 빠지자, 국민과 한 약속을 저버린 채 줄행랑쳤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이미 이 전쟁의 승패는 정해졌습니다. 독일은 승리할 것이고 유럽은 독일이 정한 질서 아래 새롭게 개편될 것입니다."
대영제국이 영원토록 존속하기 위해선 독일의 도움이 필수입니다. 히틀러 총통은 제게 프랑스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영국인들도 독일에 도움을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독일은 마땅히 영국을 새로운 우방으로 대우해 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전쟁광 처칠은 여러분께 대영제국의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들을 전쟁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처칠이 약속한 찬란한 미래가 겨우 이런 것이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처칠에게 속고 계십니다. 처칠은 제 권력을 위해서 영국의 아들들을 사선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이 나라의 영광이 아닌 그들 자신의 권력일 뿐입니다.
더 이상 놈에게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노예도 가축도 아닙니다. 전쟁광 처칠과 그 똘마니들을 몰아내고 스스로 자유를 쟁취합시다. 독일과의 연대는 이 나라에 더욱 많은 혜택과 발전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신 영국, 신 유럽, 신 질서를 위해 우리 모두 단결합시다!"
자신의 호소가 국민의 마음에 얼마나 들었을지 모슬리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꾸준히 선전방송에 나가 연설하고 국민에게 독일과의 연대를 호소했다.
“이걸 룬트슈테트 원수에게 가져가게.”
“예, 총리 각하.”
더 이상 당수님이나 준남작이 아닌 총리 각하로 불리는 것에 모슬리는 자부심을 느꼈다.
물론 정통 영국 정부와 대영제국의 구성국들은 모슬리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모슬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현 직위는 독일과 추축국 전체가 인정하고 있으니 곧 망할 옛 정부의 인정 따윈 전혀 알 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제는 내 눈치를 봐야지. 앞으로 런던에서 영원토록 기능할 정부는 바로 자신이 세운 정부일 테니 말이다.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지?"
“루돌프 헤스 장관과의 오찬이 예정되어 있고 이 뒤에는 영국 자유군단의 사열식이 잡혀 있습니다.”
영국 자유군단(Britisches Freikorps)은 영국인 지원자들로 구성된 무장친위대 소속 외인부대였다.
이름만 군단이지 실제로는 사단 규모에 불과했고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도 실제 전투보단 후방 치안유지가 전부였지만 모슬리와 BUF는 영국 자유군단을 새로운 영국의 완전무결한 새로운 군대라며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피곤하군. 이만 자야겠어."
하루 종일 업무를 보느라 모슬리는 피곤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그가 머무는 클라리지스 호텔을 덮쳤다.
***
1943년 8월 3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이거 참……… 역사의 아이러니가 따로 없군.”
아군이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진폭탄 레제는 본래 실제 역사에서 영국이 개발한 톨보이를 본떠서 만든 물건이다.
여기서도 영국은 지진폭탄을 개발했고.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진 바 없지만, 예상컨대 톨보이가 맞을 것이다.
현재까지 보고된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이놈이 아니고선 다른 놈이 없거든.
이번 공습에 사용된 영국의 지진폭탄이 아군의 레제를 보고 만든 물건인 게 분명하다는 보고서의 내용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사실은 그 반대인데. 여기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걸 모르겠지.
런던의 서부전선 사령부와 영국 신 정부를 노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번 폭격으로 발생한 사상자는 무려 700여 명.
폭격기 9대 중 2대는 런던 상공에 도달하기 전에 되었지만 7대는 살아서 런던 상공에 도달했다.
이놈들도 아군 Me262 슈발베와 He 219 우후에 의해 격추되었지만 이미 폭탄은 투하된 뒤였다.
700명 이상이 이번 공습으로 죽었으니 거의 폭탄 한 발당 100명이 죽거나 다친 셈이다.
하지만 이건 토미들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공습으로 발생한 사상자의 절반은 그들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BUF와 하등관계가 없는 일반 시민들이었다.
7대의 랭커스터가 투하한 톨보이는 사보이 호텔과 클라리지스 호텔을 맞추지 못하고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착탄했다.
비록 제공권 자체는 아군이 꽉 붙들고 있다고는 하나 만약을 대비해 등화관제가 철저히 이루어졌고 사령부 인근에 즐비한 대공포들의 위협 때문에 조준이 흐트러진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지진폭탄 자체의 위력이 어마무시한 위력에 빗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파로 호텔의 모든 유리창이 깨지고 벽과 기동에 금이 가는 등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룬트슈테트는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고 모슬리는 관자놀이에 파편이 박혔지만,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두 호텔 모두 건물 붕괴의 위험성 때문에 입주한 인원 모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폭탄이 떨어진 곳 중에 아군 병사들이 막사로 사용하는 학교와 부상병 및 전투로 피해를 본 영국 민간인들을 치료 중인 병원도 있었다.
당연히 살아남은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토미들이 이제 갈 데까지 간 모양입니다. 세상에, 자기네 국민을 자기들 손으로 죽이다니. 물론 우리로선 아주 좋은 선전거리가 생겼지만요.”
괴벨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별안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 폭탄이 떨어진 곳 중 한 곳이 병원이랬지? 그렇다는 것은-“크흐흐, 하하하하! 이야하하하!!"
“총통 각하?”
내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리자, 옆에서 실실 쪼개던 괴벨스가 당황했다.
“괴벨스 박사. 방금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네.”
"그게 무엇입니까?"
“가까이 와보게.”
내가 머릿속에 든 생각을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자, 이번에는 괴벨스가 박장대소했다.
"하하, 하하하하!!!"
“어떤가? 영국인들이 아주 껌뻑 죽겠지?”
“정말이지, 총통 각하의 혜안은 세계의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겁니다!"
★★★
1943년 8월 5일
영국 글래스고
아서 해리스가 직접 계획한 작전은 실패라는 허무한 결말로 끝났다.
독일군의 피해가 없지는 않았지만, 목표였던 독일군 수뇌부와 모슬리를 제거하지 못했으니, 작전은 실패였다.
겨우 얻은 소득이라면 영국이 레제를 본떠 개발한 톨보이의 위력이 아주 끝내준다는 사실.
톨보이를 설계한 반스 월리스의 본래 목표는 레제보다 훨씬 큰 폭탄, 그러니까 중량 10톤의 초대형폭탄을 개발해 독일의 도시들을 폭격하는 것이었지만, 망해가는 전황과 부족한 물자는 월리스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당장 영국에 있는 모든 중폭격기를 다 뒤져도 중량 10톤의 폭탄을 운반할 수 있는 기체가 없고, 또 그것을 사용할 환경이 안 되는데 그런 물건을 어디에다 쓰겠는가.
현실의 벽에 굴복한 월리스는 하는 수 없이 레제와 비슷한 톨보이를 만드는 선에 만족해야 했고, 이조차 자원 부족 및 전세 악화로 극소량밖에 제작할 수 없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완성한 귀중한 톨보이들은 런던의 제리들과 매국노들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 투입되었지만……… 작전은 실패했다.
더군다나 작전에 투입한 9기의 랭커스터와 조종사들 모두 귀환하지 못했다.
작전 실패를 보고받은 월리스는 조용히 담배만 피웠다. 돌아오지 못한 조종사들 때문에 속이 쓰려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작전이 성공해 제리들과 놈들의 항문을 핥아대는 BUF 똘마니들을 죽일 수 있다면 그는 영국 공군에 남은 모든 폭격기 조종사를 쏟아부을 자신이 있었다. 도살자 해리스(Butcher Harris)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조종사들의 피해에 무관심했던 그에게 조종사들의 목숨 따윈 총알과 폭탄 같은 소모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종사들을 쏟아붓고 귀중한 폭격기도 날려 먹었는데도 작전은 실패했다. 귀중한 톨보이가 헛되이 소모된 것은 덤이다.
빌어먹을. 9기 중 단 한 기도 목표물을 맞히지 못하다니……… 해리스는 열불이나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제 영국의 수중에 남은 톨보이는 없다. 만들려면 만들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전황으로는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다.
전투기와 전선에 보낼 포탄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한데 폭격기에 한 발만 탑재할 수 있는 폭탄을 만든다?
제정신이냐고 욕만 푸짐하게 얻어먹겠지.
“제기랄. 제공권만 있었어도…….”
제공권을 독일군에게 빼앗기지 않았다면 전쟁은 지금과 정반대로 되었을 것이다.
프랑스를 탈환하고 지크프리트선을 넘어 라인강까지 진격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런던에 하켄크로이츠기가 휘날리는 일은 없었겠지. 그렇고말고.
"각하, 공습입니다!"
"빌어먹을. 또야!"
공습경보가 울리자, 해리스는 넌더리를 내며 중요문서가 든 서류가방을 들고 방공호로 이동했다.
독일군은 주로 밤에만 공습을 가해왔지만, 이제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에도 주기적으로 공습을 가해왔다.
잉글랜드의 비행장에서 출격한 독일 전투기들은 스코틀랜드의 도시들을 폭격하러 가는 폭격기들을 연합군 전투기들로부터 지켜냈다.
연합군 조종사들은 교전이 시작되면 폭격기들을 격추하는 것보다 적 전투기에 격추되지 않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독일군의 제트기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아무리 경험이 많은 조종사들조차 제트기와의 승부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군이 신형 제트기를 투입하기 시작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정체불명의 신형 제트기와 마주한 조종사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가오리 형상을 한 전투기를 보았노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아직 연합군에게는 Me262와 대등한 성능의 전투기가 없었다.
미국에서도 제트기를 연구 중이고 영국도 글로스터 미티어라는 이름의 제트기를 개발 중이지만, 현재까지의 성능은 스핏파이어보다 못한 성능이었다. 명색이 제트기라는 녀석이.
이마저도 제공권이 독일군에게 넘어가 시험비행 중이던 녀석이 Ta152의 기습을 받고 격추되는 일도 있었다.
영국 본토에서의 연구 및 시험이 위험하다고 판단된 정부는 남아있는 프로토타입과 기술자들을 전부 캐나다로 보내 그곳에서 연구를 계속하게 했다.
제공권이 적에게 있는 상황에서는 현명한 판단이었는지 반대로 말하자면 곧 영국 전역이 함락될 예정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기도 했다.
폭격이 계속되는 동안 방공호에선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육군이나 해군, 민간인들이 들어찬 방공호에선 어김없이 자국 공군에 대한 욕설과 성토나 이어졌지만, 욕을 먹는 대상인 공군에서는 따로 욕을 할 대상이 독일군 외에는 없었다.
첫 공습 때, 사람들은 제리들을 욕하며, 언젠가 놈들의 거만한 면상을 군홧발로 걷어차 주고 히틀러의 초상화에 다트를 던지며 놀자고 희망에 찬 농담을 나누곤 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시체들처럼 입을 굳게 잠그고 공습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공습이 끝나고 굳게 닫힌 방공호의 철문이 도로 열렸다.
"......???"
방공호에서 나온 사람들이 본 것은 폭탄에 맞아 무너지고 불에 타고 있는 건물들과 하늘로 치솟는 회색 기둥들, 그리고 거리를 뒤덮은 삐라들이었다. “제리들은 종이가 남아도는 모양이구먼. 이런 쓸데없는 낭비를 하는 것을 보면.”
저마다의 속마음을 감춘 채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번에는 적들이 무슨 말을 하나 궁금해하며 삐라를 주웠다.
예상대로 삐라에는 전쟁의 승패가 정해졌으니 얼른 투항하라는 괴벨스의 말이 적혀 있었다.
한 장의 인쇄된 사진과 함께.
"...!?"
"이, 이게 뭐야."
"신이시여."
사진 속에는 처참한 상태의 시신 두 구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흑백사진이라 참혹함은 덜하지만 그럼에도 두 시체의 상태가 대단히 좋지 않음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사진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의 시신.
삐라를 쥔 해리스의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던 그는 곧 삐라를 갈기갈기 찢어 날려 보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망할 제리들이 역겨운 거짓선동을 하는 것이라고 해리스는 믿고 싶었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이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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