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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7 - 27. 협상테이블
“차라도 내어드릴까요?”
케런과 학장을 안내한 하녀가 묻자, 데이우스는 손짓으로 그녀를 물러가게 했다.
“괜찮다, 대접할 손님이 아니다.”
대놓고 불청객이라는 말에 학장은 얼굴 피부가 꿈틀거리는 걸 이를 으득 물며 억지로 참아냈다.
그 역시 아카데미의 학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남자.
감정이 격해지고,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더라도 이렇게 미리 준비된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남자였기에.
“미안합니다, 데이우스 교수.”
바로 공손하게 숙이며 시작했다.
“교수의 파면은 굉장히 부당했고, 또한 제대로 된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소문에 치중되어 사실관계를 건너뛰었습니다.”
이는 에리카와 기드온이라는 믿음직한 교수들의 증언이 뒷받침되었기 때문도 있었다.
애초에 고작 초빙교수.
그것도 에리카의 연줄이었는데 그녀가 내쳤으니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 가볍게 쳐낸 것도 좀 있었다.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무감정하게 툭 내뱉은 데이우스. 그는 정말로 아무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제 행동에 대한 의문이 이제는 해소가 되셨을지. 그것부터 여쭙고 싶군요.”
다 알고 있으면서.
케런은 일부러 데이우스가 저런 문답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학장의 입장에서는 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쪽은 절대적인 을의 위치였으니까.
“예, 아카데미를 나도는 악령들의 해결을 위함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
“저, 저희 역시 그러한 존재들이 처음인지라 대처에 미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악령.
한 마디로 귀신.
참 신비로운 존재이지 않은가 싶었다.
흑마법사들 중에는 시체를 다루어 언데드로 부리는 존재들이 있다.
이런 자들을 시체술사라고 부른다.
그들은 시체를 사용하는 거지 그 안에 담겨 있던 영혼까지는 다루지 못한다.
그렇기에 흑마법사 중에서도 영혼을 다루는 사령술사는 더욱 귀한 존재였다.
여기서 케런이 나섰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데이우스 경.”
얘기치 않은 간섭에 학장은 당황했으나 데이우스는 자연스럽게 학장에서 케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엇입니까.”
“저 역시 수많은 사선을 넘어오며,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사령술에 관한 것 역시 있었지요.”
계속해보라며 데이우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영혼이 사망 이후 안식에 들어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된다고. 그러나 개중에서도 원한이 짙거나 에고가 강한 이들은 혼이 되어 깨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데이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다는 소리였다.
“그러한 영혼들은 대부분 저희가 보거나 만질 수 없고, 간섭 또한 할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힐끔.
케런은 다리우스와 데이아를 한 번씩 눈을 훑으며 자연스럽게 반응을 살핀다.
“사령술사 정도만이 가능하겠지요.”
꿈틀.
데이아는 평정심을 유지했으나 다리우스 쪽에서 살짝 흔들렸다.
‘사령술사 가능성 50%.’
케런은 속에서 확률을 올리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비밀리에 사령술사를 불러들였습니다.”
헛숨을 삼키는 다리우스와 데이아. 뿐만 아니라 그런 걸 왜 말하냐며 학장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목석처럼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저 남자에게 약간은 흔들림을 주고 싶었다.
‘자, 반응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으나.
“어?”
역으로 데이우스의 표정을 보고, 케런이 당황스런 숨을 토해냈다.
왜냐면.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더없이 인상을 구긴 채로.
검은 머리칼에 가려진 하얀 이마에 핏줄이 툭 튀어나올 정도로.
“한심한, 짓거리를.”
숨을 토해내듯 툭 내뱉은 데이우스. 다리우스와 데이아가 한 걸음 물러나게 할 정도로 현 데이우스의 반응은 매서웠다.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냉랭하다는 수준을 넘어선 한기가 방안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그것이 데이우스라는 남자 때문이라는 걸 이 자리의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내가 분명 편지를 써뒀을 겁니다. 8번에 뭐라고 적혔는지 무시한 겁니까?”
“……8번, 8번! 그게 바로 당신이 말했던 누락된 번호였습니다!”
그러자 이번만큼은 데이우스도 살짝 눈가가 떨렸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숨을 내쉬었고 다시금 아까와 같은 무감정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랬군. 그래서 이렇게까지 상황이 커졌군.”
혼자 무언가를 납득하는 데이우스. 케런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도대체 8번에 뭐가 적혀 있던 겁니까.”
“…….”
슬쩍 케런을 바라본 데이우스는 이제는 아무 상관도 없어졌다고 툭 던지듯 내뱉었다.
“그들을 함부로 자극하지 말 것 이라고 적어뒀습니다.”
“아.”
“사령술사를 불러들인 이후, 사태가 더 심각해졌겠군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학장이 냉큼 대답한다.
“마, 맞습니다! 지금 그것 때문에 학생들도, 교수들도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특히나 기숙사 2층에 지내던 수많은 학생들은 지금 혼수상태에 빠져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데이아는 감정이 누그러진 듯 숨을 삼키며 슬쩍 데이우스를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학생들에게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건 안타까웠다.
하지만 데이우스는 냉정하니 선언했다.
“그런 감성팔이는 됐습니다. 슬슬 사담은 끝내고, 시작하죠.”
“끄음.”
학장은 나름대로 회심의 전략으로 학생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데이우스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단언했다.
케런이 가방에 가지고 온 계약서를 꺼내서 데이우스에게 내민다.
잠시, 그는 면밀하게 계약서를 훑더니 슬며시 내밀며 답했다.
“제가 생각하는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군요.”
“예? 예에?”
두꺼비처럼 입을 떡 벌린 채로 말도 안 된다며 목소리가 커진 학장.
“아, 아니! 정말 최고의 교수들이 받는 수준입니다! 아직 데이우스 경은 연차도 쌓이지 않은 신임 교수입니다!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그렇다면 돌아가시죠.”
일절 협상이 없다는 식으로 답한 데이우스를 보며 학장은 속이 타들어가는 듯 했다.
지금 그를 잡지 못한다면?
벌써부터 아카데미에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원성과 비명. 그리고 뒤따라올 학부모들이 따지고 드는 책임소재.
왕실의 지원이 끊기는 것까지.
아찔함에 학장은 덜덜 떨리는 입술로 물었다.
“그, 그럼 얼마나 더 원하시는 겁니까? 액수를 말씀해주시면 최대한 맞춰보겠습니다.”
“2억, 딱 2억 골드로 합의 보겠습니다.”
“아…….”
이 미친놈이 지금 뭐라고 말한 거지?
창자가 뒤틀리는 것만 같은 상황. 땀은 이미 닦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비를 맞은 듯 축축하니 전신을 적시고 있었다.
케런에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슬쩍 보낸다.
아무래도 용병 일을 하면서 보수 관련해서 밀당을 많이 해본 베테랑이지 않은가.
지금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머리만 굴려온 학장보다는 산전수전 겪어온 케런이 더 나을 듯했기에.
결국 케런도 슬며시 앞으로 나서며 끼어든다.
“아무리 그래도 2억은 너무 많습니다. 데이우스 교수님, 솔직히 까놓고 저도 연봉 7천입니다. 초임이신데 너무 과한 욕심 아닐까요.”
“흠.”
“최소한 1억 5천 정도까지로 타협을 해주셔야…….”
“시장판 협상을 할 생각이면 돌아가시죠.”
데이우스는 책상위에 손을 얹고 깍지를 끼며 케런의 말을 끊었다.
그는 조금의 물러남도 없었다. 태산처럼 굳건하게 있는 데이우스는 상대방에게 묘한 갑갑함을 선사했다.
그의 한 마디가 튀어나올 때마다 학장은 거의 실신할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니, 안 된다고요! 2억? 2억 말입니까? 그게 무슨 억지입니까!”
“흠.”
거의 울 것처럼 빌고 있는 학장에게 데이우스는 옆에 있는 깃펜을 들어 계약서에 뭔가를 추가로 적어 넣었다.
“추가로 연간 연구기재 지원.”
“이, 이 무슨!”
방금 자신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나?
학장은 뻘뻘 흐르는 땀이 자신의 눈물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조, 조금만 타협의 여지를 주십쇼. 2억은 너무 많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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