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 - 26. 꽃이 피는 시기
얽히고설키는 영혼들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비명을 지른다. 그들은 마치 이 새벽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자신들의 분노를 풀어내고 있었다.
이제는 그 대상이 명확하지도 않은, 오롯이 감정을 토해내야겠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혼돈의 향연.
그 중심에는 자신의 감정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푸른 불꽃이 있었다.
소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오롯이 불꽃으로 영혼들 사이를 휩쓸고 다니는 모습.
“…….”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았던 광경이 이제 슬슬 끝을 보이기 시작한다.
“새벽녘이 다가온다.”
산맥 너머로 고개를 내밀 준비를 하고 있는 햇빛이 그 광대함을 숨기지 못하고 찬란히도 하늘을 밝혀온다.
아직 빛이 대지에 닿지는 못했으나, 금방이라도 도달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저 눈을 감고, 이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렸기를 바라줄 뿐이었다.
날이 밝아온다.
달아올랐던 흥분을 가라앉히고.
난리통에 흐트러진 몸을 추스르며.
번잡해진 주변을 정리할 때가 왔다.
축제는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않는다.
[죽어어어어어!]
[저주한다! 끝까지 네놈을 저주한다아아아!]
[끼에에에에에엑!]
악령들은 여전히 끝내고 싶지 않다며 발버둥치듯 굴고 있었으나, 그런 자들은 에밀리의 불꽃이 휘몰아치며 억제한다.
산맥 너머로 빼꼼 보이는 원형.
햇빛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하자, 고철상이 억제하던 주변의 영혼들은 한 발 먼저 물러가기 시작했고.
공동묘지에 따스한 빛이 닿자 흥분해서 발버둥치던 이들은 서서히 멈춰서기 시작했다.
새벽을 불태우며 지새웠다.
아침 해가 떠올랐으니, 이제는 잠들 시간이었다.
“이해한다, 너희의 한과 억울함은 언제까지고 풀리지 않았겠지.”
하지만 이제 알아차렸을 거다.
그건 풀 수 없는 거라는 걸.
복수란 통쾌하며, 짜릿하지만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왜냐하면.
너희는 전부 죽었으니까.
“그렇게 서로를 향해 물어뜯고, 시기하고, 발버둥 쳤으나. 막상 남은 건 무엇 하나 없다.”
광기에 미쳐 날뛰던 이들이 천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오늘의 시간을 만들어준 내게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러니 이제는 품에 안고 잠들기를 바란다.”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나를 향한 그 감정마저도 그들이 품에 안고 가야할 것이었다.
“부디, 영원한 안식을 그대들이 찾기를 바랄 뿐이다.”
흐트러지듯 사라진다.
그들 모두가, 이미 들었어야 할 깊은 잠에 빠지기 시작했고.
[……고마워요.]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은 채로, 결국엔 모든 복수를 일구어냈으나 무엇 하나 얻지 못한 상태로.
웃으며 떠나는 에밀리를 마지막으로 배웅해줄 뿐이었다.
평소였다면 새벽 공기에 코가 찌릿하게 스쳤을 터인데, 오늘만큼은 이르게 핀 꽃향기가 상긋하니 인사해왔다.
“그런가.”
2월은 북부의 추위가 높은 산맥을 넘어가지 못하고 갇혀 결정되는 시기라 불리 운다.
고이듯 남아 있는 결정추위는 날이 자연스레 따스해지면서 녹아내린다.
단단히 얼어있던 추위가 한 번에 녹아내릴 정도이니, 급격하게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지금부터가 노스웨든에서 가장 바쁜 시기였다.
“봄이 왔군.”
추위가 녹아내린다.
노스웨든에도 잠깐이나마 꽃이 피는 시기가 찾아왔다.
꽃을 좋아하는 소녀가, 웃으면서 잠들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
*
“허억! 허억!”
학장은 예전부터 북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따로 안 좋은 추억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단순히 태생적으로 추운 곳을 싫어하기에 북부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나 산?
곰을 닮은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등산도 굉장히 싫어했다.
“헤엑! 헤엑!”
거의 구토라도 할 듯이 입을 벌리고 숨을 내뱉고 있는 학장을 보며 함께 따라온 양호교수 케런은 눈살을 찌푸린 채 핀잔을 넣는다.
“운동 좀 하시죠. 복부비만에, 고혈압이랑 당뇨도 있으시죠? 특히 식사 하시는 거 보면 굉장히 짜게 드시더군요.”
“…….”
슬쩍 케런을 본 학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답한다.
“자네 정말로 양호교수였군?”
“그럼 뭐로 생각하셨어요?”
“크흠.”
지금까지는 썩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지라 사실상 단순 용병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는 애들 까진 부위에 반창고 정도 밖에 못 붙여주는 양호교수니까 나중에 쓰러지셔도 저 찾지 마세요.”
툴툴 거리며 코트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케런.
산을 넘어서자, 노스웨든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목적지가 보이는 것을 위안삼아 발을 꾸준히 움직였고 결국 해가 떨어지기 전 도착할 수 있었다.
“어이구, 손님이시구나?”
노스웨든 입구에서 한량처럼 서 있던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달려온다.
“안내원 필요 없어요.”
노스웨든 같은 볼 거 없는 산골에도 관광객이 오는 건가 싶어 케런이 손짓하며 저리 가라 했으나, 남자는 끌끌 웃으며 능청을 떤다.
“돈 안 받습니다. 저희는 영주님한테 따로 봉급을 받고 사람을 도와주는 도우미거든요.”
“도우미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학장이 되묻자 남자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러니 뭐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정 불편하시면 가시는 곳 위치만 따로 알려드릴 수도 있고요.”
그 말에 냉큼 입을 여는 케런.
“베르디 가문이 어디 있습니까?”
“으음? 백작님 손님이셨군요? 그런데 왜 마차 길을 이용하지 않으셨지?”
“마, 마차길?”
마차가 산길을 넘어올 수가 없어서 일부러 앞에서부터 걸어왔는데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남자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뒤쪽으로 마차길이 따로 있습니다. 산길을 돌아서 와야 하긴 한데, 그래도 산을 넘어 오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죠. 근방 마부라면 다 알 텐데요?”
“……저희 마부는 이쪽이 초행길이라서요.”
“아아, 그랬군요. 참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카데미 소속 마부였기에 노스웨든의 숨겨진 길 같은 건 당연히 몰랐다. 한시가 급한지라 주변에 물을 생각도 없이 그냥 바로 넘어왔다.
케런은 큰 문제없었으나, 학장은 세상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일단 가시죠. 여기서도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더 걸어야 한다는 말에 학장은 늘어지듯 숨을 내쉬었으나, 케런은 괜히 못 본척하고 남자의 뒤를 따랐다.
도시는 꽤나 분주했다.
북부라 하면 차갑고, 한적한 도시를 떠올리기 쉬우나 노스웨든은 상당히 활발했다.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마찰 탓인지 추위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나 남자와 마찬가지로 ‘도우미’라는 사람들이 이곳저곳 다니며 시민들을 돕고 있었다.
‘신기하네.’
눈 덮인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보다 불편한 게 없다.
사람의 발목을 잡는 환경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 도시는 활력이 넘쳤다.
“자아, 여기입니다.”
“헤엑! 헤엑! 만나기 전에 죽을 뻔 했군.”
“……숨을 좀 고르고 들어가시죠. 그 꼴로 가셨다가는 비웃음만 살 겁니다.”
“그, 그래. 그러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택의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학장과 정말로 아무런 돈도 받지 않고 가버린 남자.
케런이 중간에 팁을 주겠다고 했으나, 그것조차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의 뒤를 눈으로 쫓으며 케런은 학장에게 말했다.
“저 남자, 공화국 사람이에요.”
“어어?”
이미 푹 젖은 손수건으로 다시금 이마를 닦고 있던 학장은 당혹스런 눈으로 남자가 걸어간 곳을 바라본다.
“그 뿐만 아니에요. 저 남자가 지나오면서 인사했던 7명 모두 공화국 사람이었어요.”
“크, 클락 공화국? 이민족이라는 말입니까?”
“예.”
그들 특유의 억양과 독특한 기름향이 아직 빠지지 않았다. 노스웨든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거겠지.
“후.”
단련된 몸,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능글맞음, 재빠른 눈치 등.
‘레지스탕스인가.’
클락 공화국에는 워낙 많은 반란군이 있는지라 그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쩝.”
그리고 용병시절 중 공화국의 의뢰를 받아 레지스탕스를 소탕한 적 있는 케런은 괜히 찝찝한 입맛을 다시며 저택 쪽으로 몸을 돌렸다.
“들어갑시다. 얼른 돌아가야죠.”
“그래, 그래야지.”
반쯤 주저앉았던 학장도 힘을 주며 일어난다.
벌써 3월이다.
로베른 아카데미는 개강을 해버렸고 악령들은 여전히 판을 치며 돌아다니고 있다.
짐을 떠맡기듯 성직자들을 다수 두고 오긴 했으나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저택으로 들어와 사용인들에게 안내를 받는다.
생각 외로 데이우스를 만나는 건 간단했다. 그쪽은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학장과 케런을 곧장 데이우스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문이 열리고, 고풍스런 붉은 카펫과 더불어 커다란 책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상 옆에는 덩치 큰 남자 하나가 살짝 인상을 구긴 채로 당당하니 서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왜소한 체격의 흑발 여인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다리우스 베르디와 데이아 베르디였다.
그리고 커다란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꼰 채로 이쪽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흑발의 남자.
데이우스 베르디가 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걸 보는 순간 케런은 확신했다.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오는 걸 보고 받았다.
언제부터?
‘도시 안내원이었구나.’
지나치면서 몇 번이고 인사하던 동료로 보이던 자들이 이미 저택에 자신들이 왔다는 걸 알렸을 거다.
그걸 위해서 안내원이라는 남자가 일부러 길을 좀 돌아서 갔을 수도 있다.
케런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데이우스 베르디를 다시 고용하기 위한 이 협상.
절대로 쉽지 않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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