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Chapter 25 - 25. 동이 트기 전까지






끼이익.




불꽃이 튀며 타닥거리는 소리만이 남아 있는 지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작은 등불 빛이 쭉 뻗으며 내부를 비춘다.




그것이 끝에 있는 푸른 불꽃으로 이루어진 소녀에게 닿자, 땅을 내려보고 있던 소녀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맞은 에밀리에게 핀덴아이는 웃으면서 물었다.




“분은 조금 풀렸니?”




[…….]




핀덴아이의 물음에 소녀는 자신의 손을 살짝 내려다본다. 사령술사의 불꽃은 영원에 가까운 고통을 줄 수 있다 생각했으나.




소녀의 원한과 합쳐진 결과일까, 의외로 며칠가지 못하고 마알크스의 영혼은 완전한 소멸을 이루었다.




[복수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느긋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며 핀덴아이가 부드럽게 묻자, 에밀리는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 숨을 고른다.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에밀리의 마음이 불안정하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연구소장이 제 손아귀에서 고통에 부르짖고, 용서를 구하고, 사죄하는 모습은 분명 통쾌했지만.]




“…….”




[그렇지만 그가 완전히 소멸한 이후에도 제 안에 응어리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




이해하고 있다며 핀덴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쩍 바깥을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 주인놈이 너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놨는데, 가보지 않을래?”




[……그게 정말 맞을까요?]




에밀리의 질문에 핀덴아이는 소녀와의 질의가 즐겁다는 듯 웃어주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지금 제가 간다면 디트로스 베르디에게도 같은 고통을 줄 수 있겠죠.]




“맞아, 마알크스랑 똑같이 네 앞에서 비명을 지르고, 무릎을 꿇으며, 사죄할 거야.”




[그랬다가 그가 마알크스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소멸을 이루면요?]




소녀가 걱정하는 건 단순히 복수를 하고 싶다 같은 게 아니었다.


이미 마알크스를 소멸시킨 그녀는 그것이 생각 이상으로 허탈했으며.




또한 그렇게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안에 있는 응어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디트로스 베르디도 소멸했는데, 저는 아직도 원한을 가지고 남아 있으면요? 그러면 저는 또 누구에게 이 분노를 풀어야 하는 거죠?]




“…….”


소녀의 분노는 정당하다.


허나, 그 분노가 아무리 쏟아내도 끝이 나지 않는다면.




[그럼 제가 또 다른 괴물이 되는 게 아닌가요?]




바스러진 인골충의 잔해를 내려다보는 에밀리. 그녀의 목소리와 말투, 떨림에서 두려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혹여나, 자신 역시 감정과 복수에 사로잡힌 괴물이 되지 않을까.




이 감정을 원하는 대로 쏟아낼 수 있을까.




“걱정 마.”




하지만 그런 소녀의 걱정을, 마치 우문이라 답하듯 핀덴아이는 씨익 웃어주었다.




“우리 주인놈은, 더럽게 재수 없지만 말이야.”




[…….]




“매우 특별한 사령술사니까.”




핀덴아이가 슬며시 몸을 틀어 문 옆으로 비켜선다. 이제 에밀리의 앞에는 밖으로 향하는 문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절대로 네가 괴물이 되지 못하게, 악령이 되지 못하게. 그 사람이 막아줄 거야.”




[아.]




탄식을 내뱉은 에밀리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상태였다. 바깥에서는 악령들의 비명소리가 울려온다.




본능처럼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에 휩쓸렸다.




“그러니까 가시죠. 베르디 가문의 하녀 핀덴아이가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인 핀덴아이를 보며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슬며시 웃으며 핀덴아이는 앞장서서 걷는다. 계단을 올라, 지하를 벗어나 1층에 도달해 저택의 입구에 섰다.




저택의 정문에는 집사장과 하녀장이 함께 서 있었는데, 둘은 동시에 예를 차려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귀빈을 뵙습니다.”




“귀빈을 뵙습니다.”




정문이 열리고.




어두운 새벽하늘을 헤집고 다니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


데이우스 베르디의 굿이 단순히 저택과 묘지의 영혼만을 불러낸 게 아니라, 주변을 배회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또한 많은 영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평범한 사람들도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영역(靈域)이라 하여 로베른 아카데미처럼 영혼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기현상이었다.



[아.]



그리고 문 앞에 늘어진 수많은 사용인들. 일정 간격을 두고 서 있는 그들은 하나의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직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으나, 이 끝에 누가 있을지 잘 알고 있었기에.



에밀리는 어렵지 않게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귀빈을 뵙습니다.”



사용인들을 지나칠 때마다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니 에밀리를 향해 인사한다.



베르디 가문이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우를 차리는 중이었다.



그때, 근처를 거닐던 한 영혼이 에밀리가 걷는 길 위에 내려앉으려 했으나.



후웅!



검이 휘몰아치며 바람을 일으킨다. 영혼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는 없으나 형상 자체를 일그러트릴 수는 있었다.



길을 튼 남자는 다름 아닌 현 베르디의 가주, 다리우스 베르디였다.



그는 묵묵하니 길 위에 서서 에밀리를 한 번 바라보곤 천천히 몸을 틀어 길을 터주었다.



“미안하다.”



짧은 묵념.



에밀리는 그것을 받으며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섰다.



“길 터! 함부로 몰려오게 만들지 마!”



“공동묘지 부근 지켜! 촛불 꺼지면 안 된다!”



점점 길의 끝에 도달할수록 거센 목소리가 울려왔다.

고철상의 멤버들이 관련 없는 영혼들이 함부로 공동묘지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중이었다.



핀덴아이는 소란스러움이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 인상을 찌푸렸으나, 에밀리는 그것이 자신을 위한 노력임을 알았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쿵!



북소리가 울려온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에밀리의 심금을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길의 끝.

검은 머리의 여인, 데이아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공동묘지 안으로 손을 내밀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핀덴아이의 안내를 이어받은 데이아가 조심스럽게 몸을 틀었고.



그러자 핀덴아이와 다른 사용인들이 몸을 틀어, 마지막으로 에밀리의 가는 길을 배웅한다.



“부디, 평안히 가시길.”

[…….]



쿵!



데이아와 함께 북을 치고 있는 노인을 지나쳐 묘지로 들어서자.



그곳에서는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악령들이 서로를 물어뜯어대고 있었다.



[죽어어어어어어!]



[눈알을 파먹어주마! 네가 했던 것처럼! 네 눈알을 파먹어주겠어!]



[끄아아아아!]



[안식? 안식? 내가 원한에 타들어가며 베르디를 방황하는 동안 네놈은 평안히 눈을 감았단 말이냐아아!]



자신의 몸은 전혀 돌보지 않고, 오롯이 상대에게 상처 입히고, 원망하고, 소리 지르는.



어찌 보면 일종의 지옥.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데이우스 베르디가 서 있었다.



그의 앞까지 안내한 데이아는 깊게 고개를 숙이고는 뒷걸음질 치며 그대로 물러났다.



이제는 두 사람의 시간이었다.



“어떠했지?”



데이우스는 하늘에서 휘몰아치듯 서로를 물어뜯는 악령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은 조금 풀렸나?”



콕콕 찌르는 듯한 그의 말에 잠시 머뭇거린 에밀리는 솔직하니 답했다.



[……아뇨.]



“그래.”



예상했다는 듯 데이우스는 차분히 질문을 이어갔다.



“저 끝에 있는 남자가 보이나?”



수많은 악령들의 이빨에 전신이 뜯기고 있었으나, 손과 발을 분주하게도 움직이며 발버둥치는 남자.



[예.]



“저 남자가 디트로스 베르디. 너와 네 가족 그리고 동포들을 모조리 몰살시킨 남자이다.”



묵묵하니 에밀리는 그 남자를 눈으로 쫓는다. 아직 그는 에밀리가 이곳에 온 걸 모르는 듯 했다.



“디트로스 베르디에게 똑같은 고통을 준다면 후련하게 한을 풀고 잠들 수 있겠나?”



[……모르겠어요.]



에밀리의 목소리에는 먹먹함이 묻어나왔다. 그녀는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숨을 토해냈다.

[복수는 하고 싶지만, 정말로 제 안에 있는 원한이 사라질까요? 저는 연구소장에게 쉬지 않고 고통을 가했지만.]



“…….”



[좋았던 건 처음뿐이에요. 그 뒤부터는 오히려, 허망함만이 자리를 잡았고, 제 안에 있는 원한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이제야 데이우스의 시선이 에밀리에게 향했다. 에밀리 역시 조심스레 그와 눈을 맞춘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말에 데이우스는 잠시 에밀리를 바라보더니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많은 이들이, 원한을 풀기 위해서 복수를 한다고 말한다.”



[…….]



“실로 많은 이들이, 죽어서도 자신의 한을 풀어내지 못해서 안식에 들지 않고 떠돈다.”



수많은 죽음과 그들의 원망을 들어왔던 데이우스였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그들 중 태반은 어떠한 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떠돌다, 제풀에 지쳐 안식에 들게 된다. 한은 깊은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어느 날인가 기적처럼 찾아올 복수의 순간을 꿈꾸며 눈을 감겠지.”



그리고 그걸 이루어준 게 바로 지금의 광경이었다.



“복수의 시간이 왔다. 에밀리, 과연 무엇을 해야만 너의 한이 풀릴까.”



[……저는.]



데이우스의 지팡이 끝이 디트로스 베르디를 가리킨다. 그는 이제 수많은 영혼들 밑에 깔려 짓눌리고 있었다.



“디트로스 베르디에게 끝없는 고통을 주어 결국에는 완전한 소멸을 시키는 것? 아니면 마알크스를 어떻게든 다시 소생시켜 그에게 또 한 번 바닥을 기며 빌게 만드는 것?”



입을 다문 에밀리는 답을 요구하듯 데이우스를 바라본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그 무엇도 자신의 한을 풀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데이우스 역시.



“에밀리, 안타깝지만 원한이라는 건 소모되는 감정이 아니다.”



지팡이를 내린 데이우스가 다시금 에밀리를 바라본다.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두 눈을 응시하며.



“원한을 푼다는 말은 잘못됐다. 에밀리, 그건 상처다. 절대로 지울 수 없으며, 떠올리면 계속된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짙은 흉터.”



[아…….]



불꽃이 아니었다면 에밀리의 양쪽 눈에서는 지금 눈물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지금 데이우스가 한 말은.



자신에게는, 어떠한 구원도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었으니까.



“고작 원흉에게 고통을 준 걸로, 비명을 지르게 한 걸로, 살려달라는 애원을 들은 걸로. 너 자신의 인생과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을 망친 이를 용서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 죠.]



이미 마알크스를 소멸시킨 에밀리였기에 깊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고작 그딴 행위로 자신의 안에 있는 한은 사라질 수 없었다.



툭.



데이우스의 손이 에밀리의 머리에 닿는다. 불길은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으나, 주인인 데이우스를 알아봤는지 따스하게 감싸줄 뿐이었다.



“대부분의 산자들은 죽은 자에게 무엇도 줄 수 없다. 죽은 자를 위한다는 말은 결국 스스로의 위안이자 자기만족일 뿐이지.”



하지만 하고 뒤에 덧붙인다.



“나는 사령술사다. 공교롭게도 ‘대부분’에는 들어가지 않는 부류이지.”



스윽.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제는 다시는 느낄 수 없을 줄 알았던 감정과 온기가 데이우스의 손바닥을 통해 느껴진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이별선물이다.”



[…….]



에밀리의 전신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푸른 불꽃은 묘지에 있는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거대했다.



“후회는 남을 수밖에 없으나, 동이 트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서 발버둥 쳐라.”



굿은 축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옛날에는 굿을 벌이는 무당이 있으면 옆 동네 사람들까지도 전부 모여 그것을 함께 즐겼다는 얘기도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이곳엔 노래를 대신해서 서로를 향한 원망과 비명만이 가득하다.



춤을 대신하여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귀기어린 광경만이 펼쳐지고 있다.



무악은 조촐하여 단순히 운율에 맞춰 북을 두드리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마음껏 춤추고 노래해라. 지쳐 쓰러져, 자연스럽게 눈을 감을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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