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ege of london part 2

 런던 공방전 (2) >

1943년 6월 21일

독일 베를린 신 총통관저

브리튼 섬에 소련제 전차라.

흔한 소식은 아니긴 하다.

자본주의자, 제국주의자들이 사는 나라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경멸해 마지않는 시뻘건 인민들이 만든 전차가 굴러다닌다니.

그렇다고 해서 이게 막 호들갑 떨 정도의 소식이라고 하냐면, 글쎄올시다?

영국과 소련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긴 해도 독일 앞에 손을 잡은 건 모두가 아는 사실.

지금은 스탈린이 먼저 게임에서 탈주하는 바람에 다시 예전처럼 으르렁대는 사이로 돌아오긴 했지만, 둘의 사이가 공동교전국이던 시절에 T-34의 설계도가 소련에서 영국으로 전해졌고, 이를 토대로 영국인들이 만들었다고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미국, 영국이 소련을 돕는 대가로 소련도 자국산 무기 설계도나 실물을 미국과 영국에 연구용으로 쓰라고 보내줬다고 들었다.

내가 역사를 틀어도 제대로 비틀어놓았으니, 역사에선 없었거나 논의만 되다 끝났던 일들이 여기서는 현실이 되었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T-34는 어차피 우리 독일제 전차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 T-34/85라면 4호 전차에는 다소 위험한 상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판터, 티거, 티거 II라면?

전차 성능도 성능이지만 지금 우리 측 전차병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훈련을 받고 수년간 전장에서 몸으로 구른 베테랑들.

반면, 영국군은 병사가 부족하다 못해 여자, 노인, 아이들까지 총 쥐여주고 전선으로 보내는 형편.

이 중에서 뽑은 전차병들이 동부전선에서 로스케들과 씨름하다 온 게르만 위버멘쉬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고 말고.

영국에서 토미들이 소련제 전차를 끌고 나왔다가 통구이가 됐다는 소식보다도 나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촛불잔치에 더 관심이 갔다.

아니, 촛불잔치가 아니라 쥐불놀이라고 해야 하나? 미국 상황은 개판 그 자체다.

과장 조금 보태서 남북전쟁 터지기 바로 직전의 상태라고 할까나.

………이건 너무 멀리 갔나? 생각해보니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확실한 건 지금의 미국은 기존에 알던 1943년의 미국과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뉴욕에서 제시 오언스가 총을 맞고 즉사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던 흑인들의 여론이 대폭발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아주 화려하게 말이다.

미개한 흑인들 사정 따윈 내 알 바 아니다로 일관하던 백인들조차 ‘이건 해도 해도 너무 나갔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 피해자들인 흑인들의 반응은 어느 정도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제시 오언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뒤,

흑인 파시스트 반군(Black Fascists Rebel)이 결성되어 활동을 개시했다.

흑인 파시스트 반군이라니.

이 무슨 따뜻한 냉커피, 차가운 핫초코, 맵지 않은 불닭 같은 소리냐고? 나한테 따지지 마라. 실제로 이름이 저런데 뭐.

제3제국의 국가사회주의 이념을 추종하는 이 친구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말살하려 드는 미 정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최종 목표는 흑인들을 억압하는 현 정부를 타도하고 미국 영토 내에 흑인들을 위한, 국가사회주의 성향의 신(新)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란다.

BFR 친구들은 흑인 시위대를 진압하러 온 경찰 및 주방위군에게 소총과 기관총을 쏘고 수류탄과 화염병을 던져대는 것으로 첫 활동을 시작했다.

곧 미국 전역에서 BFR의 이념을 따르거나 아예 BFR의 일부임을 선언하며 활동하는 무장단체들이 빠르게 늘었다.

이들은 경찰서를 불태우고 경찰, 주방위군과 총싸움을 벌이거나 잘 사는 백인 부촌을 습격해 약탈과 방화, ‘제시 오언스를 위한 피의 보복'을 감행했다.

BFR의 습격으로부터 집과 가족, 고향 마을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남부의 골수 인종차별주의자들, KKK단도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억울하게 죽은 백인들의 복수를 한답시고 멀쩡히 잘 사는 흑인들 집에 쳐들어가 몽둥이로 두들겨 패 죽이거나, 아예 집째로 불태우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피가 도처에서 흘렀다.


미국은 사상 최악의 위기에 봉착했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는지, 루즈벨트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BFR과 KKK단 둘 다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진압대상이라고 발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열심히 치고받고 싸우면서 자기들 분풀이를 해댔다.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들은 그래도 질서가 유지되는 편이라지만 남서부 시골 마을 같은 곳들은 지옥도가 따로 없다고 한다.

이러한 대환장 파티에 신이 난 장군들은 이참에 미국에 있는 SD 요원들로 하여금 판을 더 키워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씹창인데 여기서 더 날뛰었다간 진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리고 혹시 아나? 일이 잘못되면 루즈벨트가 이 모든 게 다 독일의 조작이라면서 미국인들을 일치단결시킬 수도 있네. 내부 혼란을 수습한 미국이 진심으로 달려들면 순식간에 우리는 프랑스까지 밀려날 걸세. 그리되면 당연히 로스케들도 가만있지 않을 테고.”

이대로만 내버려 둬도 미국이 저 혼란을 모두 수습하려면 최소 2년은 걸릴 거다.

그보다 더 길 수는 있어도 짧은 건 힘들 테고. 지금까지 미국 사회에서 차별이란 차별은 죄다 받고 살던 흑인들에게 지금처럼 분노를 마음껏 표출할 기회는 흔치 않다.

생체실험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흑인이란 이유로 총 맞고 죽었는데 이걸 참아?

만약 이걸 그냥 넘긴다면, 앞으로 차별이 더 심해졌으면 심해지지 결코 나아질 리 없다는 걸 본인들도 알고 있을걸?

KKK 같은 골수 인종차별주의자들 역시 사회 혼란 방지 및 안정화라는 이유로 흑인들에게 대놓고 폭력을 저지를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결코 스스로 가만히 있으려고 하지 않을 거다.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즐거워하며 와인을 홀짝이던 괴링이 불현듯이 물었다.

“총통 각하. 만약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흑사병 작전은 영원히 개시하지 않으실 예정이셨습니까?"

“그래."

두말하면 잔소리고 말고, 미국이 굳이 우릴 적대하지 않는데 괜히 벌집을 들쑤실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미국이 아니면 누가 일본을 참교육하고 고통받는 우리 민족을 해방해주겠어? 영국? 중국? 프랑스? 소련은 내가 사양이다. 소련 치하의 한반도란, 교도소 담장을 넘어서 다른 교도소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우리 군을 저 먼 극동으로 보내 일본을 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기엔 명분이 다소 부족하다.

물론 폴란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명분이야 만들어내면 그만이긴 한데, 독일에 의해 일제에서 해방된 한반도에 미국식 민주주의 정권이 세워질 확률이 높을까, 해방자 독일을 추종하는 매콤한 파시즘 정권이 세워질 확률이 높을까.

일제나 빨갱이 치하보단 낫지만, 21세기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산물을 마음껏 누렸던 나로서는 파시스트 한국이 그렇게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이 일본을 쳐부수고 한반도를 해방하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최고의 엔딩일 터.

그러자면 최소한 미국이 일본과 싸울 힘이 있어야 한다.

물론 2차 남북전쟁이라도 터지지 않는 한, 진주만의 원한을 기억하는 미국이 일본과 테이블에 앉아 협상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길어져도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스탈린이 유럽에서의 실패를 극동에서 만회하려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 나라 전쟁 끝내는 것도 힘들지만, 남의 나라 전쟁 끝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

영국의 명물이자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며 영국 국왕 일가가 거처하는 곳으로 유명한 버킹엄 궁전도 2차대전의 불길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처음에는 꽃과 나무로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에 V2가 떨어져 엉망이 된 수준에 그쳤다.

엉망이 된 정원을 두고 조지 6세는 심란해했지만, 엘리자베스 왕비는 이제 폭격에 희생된 국민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 있게 됐다며 그를 위로했다. 그러나 바다사자 작전이 시행되고 독일 포병의 런던 포격이 시작되면서 더 이상 버킹엄 궁전도 예전처럼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을 수 없게 되었다. 루프트바페의 폭격기가 투하한 폭탄과 육군 포병의 야포탄에 맞아 허물어진 버킹엄 궁전에선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위엄을 찾을 수 없었다.

천장에 난 구멍으로 햇빛이 들어와 궁전 내부를 훤히 비추었고, 유리창이 깨진 자리에는 임시로 나무판자를 덧대어 달아두었다.

국왕 부부도 궁전 내부의 침실이 아닌 지하벙커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푹신하고 두툼한 이불이 깔린 침대에서 자다가 좁고 눅눅하며 갑갑한 느낌을 주는 작은 방의 침대에서 자려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국왕 부부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참고 버텼다. 독일군이 런던 코앞에까지 진격했는데도 국왕 부부가 도시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런던에 남겠다고 선언하자, 런던 방어군과 시민들의 사기는 대폭 상승했다.

그러나 사기가 곧 결과로 이어지는 법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독일군은 영국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전진하며 서서히 목을 조여왔다.


-쾅!

“됐다. 다시 전진!"

“대독일의 아들들이여, 최후 승리가 눈앞에 있다!”

“총통께서 우릴 지켜보고 계신다! 가자!!"

리-엔필드 소총과 화염병으로 무장한 영국군을 돌격소총과 판처파우스트로 무장하고 티거와 슈투카의 지원을 받는 독일군이 무참히 때려잡았다.

기관총 진지에 판처파우스트가 날아들어 늙은 홈가드 대원 2명을 피떡으로 만들었다.

장애물이 사라진 독일군 분대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튕겼다!”

“벌써 세 번째입니다! 후퇴해야 해요!"

“입 닥쳐! 앞에 제리들을 놔두고 어딜 도망가! 야! 거기 안 서!"

철갑탄을 연거푸 3발이나 전면에 명중시켰음에도 끄떡도 하지 않는 티거를 본 대전차포병들이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뭔 수를 쓰더라도 저 괴물을 격파할 수 없다는 생각에 멘탈이 박살 난 병사들이 무기를 내팽개친 채 도주하고 이를 저지하던 하사는 티거가 발사한 유탄에 산산이 조각났다. “뒈져라, 이 씨발놈아!”

영국군 참호에서 50m 거리까지 다가온 티거를 향해 어느 홈가드 대원이 죽기살기로 PIAT를 발사했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PIAT의 탄두는 티거의 포탄 측면에 명중, 장갑을 뚫고 파편과 화염을 뿌리며 전차 내부의 전차병들을 살상했다.

무적으로 여겨지던 티거가 불과 연기에 휩싸이자, 영국군 진영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티거 한 대가 격파당했다고 해서 독일군의 공격이 멈춘 것도 아니었다.

모렐 알약을 먹어 공포와 자제심이 없어진 독일 병사가 돌격소총을 난사하며 달려와 두 번째 탄두를 장전하던 홈가드 대원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이윽고 살라만더가 다가와 참호에 화염을 쏟아부었다.

전우들이 화염에 산 채로 타죽는 것을 직관한 병사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얌전히 두 손을 들었다.

병사 개개인의 투지와 용기 따위론 전황을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영국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

이번에도 폭탄이 벙커 가까운 곳에 떨어지자, 벙커 천장의 전구가 깜빡거렸다.

“제기랄."

수프를 떠먹던 조지 6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불이 다시 들어온 전구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여보."

“미안하오. 나는 그저…………”

조지 6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다시 숟가락을 들고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고 왕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지금 남편의 심정이 어떤지.

전쟁에선 지고 있고 독일군은 런던에까지 진군했다.

불과 몇 km 밖에서 독일군은 포탄을 쏘아대는 중이고 아군이 필사적으로 저항 중이지만,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머잖아 곧 독일군의 장갑차가 버킹엄 궁전에도 도달할 것이다.

어쩌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독일보다 더 많은 인구(식민지 포함), 더 많은 자원, 더 넓은 영토를 보유한 대영제국이

어째서 25년 전의 패전국을 상대로 이 지경까지 몰렸단 말인가.

독일의 병사들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적인 괴물들이어서 그런가?

그건 아니다. 저들도 인간이고 인간은 총에 맞으면 누구나 죽는다.

그렇다면 대체 어째서 여기까지 몰린 것일까.

이 전쟁은 시작부터 승산이 없던 싸움이었던 걸까?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결정을 뒤집는다고 해도 오늘을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조지 6세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처칠이 핼리팩스를 공격해 그를 사임하게 만들었을 때, 혹은 독일과 맺은 조약을 깨고 두 번째 선전포고를 감행했을 때,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정치에 개입해서 그래선 안 된다고 해야 했나?

“폐하. 처칠 총리가 알현을 요청해왔나이다."

이 무슨 기막힌 운명인지. 처칠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직접 이곳으로 왔다.

조지 6세와 만난 처칠은 조지 6세가 입을 떼기도 전에 고개를 숙이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폐하. 부디 런던을 떠나십시오."

“그, 그 답은 이미 일전에 그대에게 저, 전했을 텐데.”

“폐하. 죄송하지만 런던이 함락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길어봐야 일주일이 한계입니다. 대단히 불충한 말이지만 만약에 폐하와 왕비 전하께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신다면은 대영제국은 그날 로 끝입니다. 히틀러는 분명 폐하와 왕비 전하의 목숨을 인질로 대영제국 전체를 독일에 복속시키려 들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런던을 떠나 캐나다로 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국민에게 런던에 남아 싸우겠다고 마, 말했소. 그런 말을 해, 해놓고 캐나다로 도망친다면 어느 누, 누가 내 말을 믿고 따르려 하겠소?"

“물론 어느 정도의 반발은 있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폐하의 피난을 변호해 줄 것입니다. 지금 욕을 하는 이들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

“폐하.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폐하의 목숨은 폐하의 것이지만, 대영제국의 것이기도 합니다. 폐하께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신다면 대영제국은 존속할 수 없게 됩니다. 독일군은 분명 폐하 를 포로로 잡은 것을 선전하며 영국에 항복을 요구할 것이고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입니다.”

국왕 부부가 런던에 남는다고 했을 때 처칠은 안도했다. 국왕이 수도에 남는 한 병사들의 사기는 추락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다.

하지만 기적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화나 신화에서 흔히 나오는, 국왕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감동한 국민이 일치단결해 침략자들을 물리쳤다는 결과 대신 독일군의 런던 입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처칠은 똥줄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다. 정말로 국왕 부부가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면 영국은 그날로 패전 확정이었다.

물론 캐나다로 도망친다고 해도 일이 다 잘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국왕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으니, 국민의 사기는 떨어질 것이고 반전주의자, 친독파들은 더욱 기고만장해질 것이다.

겨우 유지되고 있는 군율이 완전히 붕괴해 독일군이 단숨에 글래스고까지 치고 올라갈 수도 있다.

또 조지 6세에겐 국민을 속이고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면서 정작 본인은 도망친 최악의 군주라는 오명이 씌워질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왕실에 대한 폐지 여론까지 나올 것이다. 국민을 버리고 도망친 왕에게 왕의 자격이 있다는 말에 찬성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조지 6세는 런던을 떠나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처칠도 국왕이 피난을 거절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나, 나는 저, 절대로 런던을 떠, 떠나지 않을 것이오. 피, 필요하다면, 나, 나도 초, 총을 들고 싸, 싸울 것이오."

“저도입니다. 총리, 우리는 우리의 책무를 다할 테니 그대도 얼른 자리로 돌아가 책무를 다하십시오. 이럴 때일수록 이성을 유지하고 마음을 굳게 다잡아야 합니다.”

처칠은 끝내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

그리고

“버킹엄 궁전입니다!"

“잘 봐둬. 저게 우리가 보는 버킹엄 궁전의 마지막 모습일 테니?

“폭탄 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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